<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객원 에디터 9기 / 정동현 기자] 사람의 건강과 질병은 어디까지 유전자에 의해 좌우될까? 최근 국내 연구진이 참여한 대규모 유전체 연구가 이 질문에 새로운 답을 던지고 있다. 한국인을 비롯한 동아시아인의 유전체를 정밀 분석한 결과, 300개가 넘는 새로운 유전자 위치가 발견되며 ‘아시아 맞춤 의학’ 시대를 앞당길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지난 5월 28일 자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따르면 한국인을 포함한 동아시아 인구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유전자 분석에서 무려 301개의 새로운 유전자 위치(loci)가 발견됐다. 연구 대상은 한국암예방연구(KCPS-II) 코호트에서 확보한 15만 3,950명의 전장유전체 데이터였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아시아인의 유전적 특성과 질병 위험 요인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단초가 되었다고 전했다.
서울대, 국립보건연구원 등 국내 연구진이 참여한 이번 연구는 한국암예방연구(KCPS-II) 코호트에 속한 15만 3,950명의 전장유전체 데이터를 분석해 진행됐다. 그 결과, 36가지 생리·임상 형질에서 신규 유전자좌, 즉 질병이나 형질과 관련 있는 유전자 변이가 나타나는 새로운 유전자 위치를 처음으로 찾아냈다. 특히 갑상선 자극 호르몬(TSH)과 관련해 CD36 유전자의 새로운 연관성이 밝혀졌다.
또한, 연구팀은 일본·대만·영국 바이오뱅크와 국제 공동 메타분석을 수행해 총 4,588개의 추가 유전자좌를 발굴했다. 유전자좌(loci)’란 특정 형질이나 질환에 영향을 미치는 DNA상의 위치를 뜻한다. 이는 기존 유럽 중심 연구에서 밝혀지지 않았던 동아시아 특이 변이를 대거 밝혀낸 성과다. 대표적 사례로 ALDH2 유전자 변이는 술을 마셨을 때 얼굴이 붉어지는 ‘아시아 플러쉬(Asian flush)’ 현상과 밀접히 관련된 변이다. 이번 분석에서도 동아시아인의 고유한 유전적 특징을 보여주는 사례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 성과가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과 맞춤형 치료 전략 수립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아시아인의 유전적 특성을 본격적으로 밝히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를 토대로 당뇨병, 심혈관질환, 갑상선질환 등 동아시아인에게 흔한 질환에 대한 정밀한 위험 예측과 맞춤 치료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보건 당국 입장에서도 ‘예방적 의료 전략’ 구축이 수월해진다. 유전적 고위험군을 조기 발견하고, 생활습관 개선 프로그램이나 맞춤 검진 정책을 설계하는 데 이번 연구 결과가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연구 범위가 동아시아권으로 확장됐다는 점은 의미 있지만, 여전히 남아시아·동남아시아 등 아시아 내부의 다양한 집단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더 폭넓은 데이터 확보와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 또한 대규모 유전체 연구가 확대되면서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활용 윤리도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다. 유전자 정보는 삭제가 불가능하고, 개인 식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데이터 보안과 투명한 활용 규정 마련이 필수적이다. 향후 연구는 과학적 성과뿐 아니라 사회적 신뢰를 쌓는 과정과 병행돼야 할 것이다.
이번 성과는 단순히 새로운 유전자를 발견했다는 의미를 넘어,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의 특성에 맞는 더 정확한 예측과 맞춤 치료로 이어질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앞으로 축적되는 데이터와 기술이 결합된다면, 맞춤형 의료가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적 의료 체계의 핵심이 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