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저장 기술: 미래의 병원은 하드디스크 대신 생명 정보를 쓴다?

<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객원 에디터 9기 / 우성훈 기자 ]  병원에서 저장해야 하는 데이터의 양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환자의 간단한 진료 기록이나 처방 정보만 저장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유전체 분석, 정밀 영상 검사, 인공지능 진단 결과 등 다양한 고용량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쏟아지고 있다. 의료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서 이 방대한 데이터를 오래 보관하고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이 병원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기술이 바로 ‘DNA 저장 기술’이다. 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담는 DNA가, 이제는 정보를 저장하는 새로운 디지털 저장 매체로 떠오르고 있다.

DNA 저장 기술은 디지털 데이터를 네 가지 염기(A, T, C, G)의 조합으로 변환해 실제 DNA 분자에 정보를 기록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 같은 데이터도 0과 1의 이진수 형태에서 DNA 염기로 바꾸면 저장이 가능하다. 놀라운 점은 DNA의 저장 밀도이다. 1그램의 DNA에 약 215페타바이트(약 2억 기가바이트)나 되는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유튜브에 올라온 모든 영상을 작은 병 하나 담을 수 있다는 뜻과 같다. 이처럼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DNA는, 기존 하드디스크나 서버보다 공간과 에너지 효율 면에서도 큰 장점을 가진다.

현재 여러 나라에서 DNA 저장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와 워싱턴대는 2016년에 처음으로 DNA를 이용해 실제 파일을 저장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독일, 영국, 중국 등에서도 관련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저장 속도와 접근성, 오류 수정 능력을 높이기 위한 기술도 빠르게 개발 중이다.. DNA에 저장된 정보를 읽고 다시 디지털 형태로 복원하는 과정이 점점 더 정확하고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병원뿐만 아니라 도서관, 정부기관, 연구소 등 대용량 데이터를 다루는 모든 곳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연구도 활발하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의 최영재 교수팀은 ‘계층적 바코드 시스템’을 활용해 저장된 DNA 정보를 파일 단위로 쉽게 불러오는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에는 수천 개의 DNA 조각 중 원하는 데이터를 찾아내기가 어려웠지만, 이 기술을 이용하면 마치 컴퓨터 폴더처럼 원하는 데이터를 빠르게 찾을 수 있다. 또 서울대학교는 ‘마이크로 DNA 디스크’를 통해 데이터 읽기와 쓰기를 반복할 수 있는 저장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렇게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DNA 저장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DNA 저장 기술이 병원에 도입되면 가장 큰 변화는 환자맞춤형 데이터 관리에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약이 특정 환자에게 잘 듣는지, 어떤 질병에 유전적 위험이 있는지 등의 정보를 DNA에 안전하게 저장해 두고 필요할 때만 꺼내 쓸 수 있다. 병원은 이런 데이터를 기반으로 더 정확하고 빠른 진단과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수십 년 전 진료 기록이나 가족력 정보를 영구적으로 저장할 수 있어, 질병 예방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저장 공간이 작고 에너지 소비가 적다는 점에서도 병원 운영에 효율성을 더해줄 수 있다. 

하지만 DNA 저장 기술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첫째, 아직은 DNA를 합성하고 읽는 데 드는 비용이 매우 높다. 둘째, 정보 저장과 복원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어 안정적인 기술 확보가 필요하다. 셋째, 의료 데이터는 매우 민감한 정보이기 때문에, 유전자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는 보안 기술도 필수적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국내외 연구팀은 오류 보정 알고리즘, 암호화 기술, 생명윤리 규제 마련 등 다방면에서 연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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