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객원 에디터 9기 / 조예서 기자] 혹시 ‘앨런 튜링’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는가? 그는 위대한 사람이지만 만약에 들어본 적이 없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것이, 사실 정부는 일부러 그가 한 일을 사람들이 모르게 했기 때문이다.
그는 뛰어난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독일을 무찌르는 것을 돕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며, 오늘날 인공지능 개념의 토대가 된 ‘튜링 테스트’를 제시한 인물이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 시스템 ‘에니그마’를 해독해 전쟁을 최소 2년 앞당겼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튜링은 동성애자였고, 1952년 당시 동성애는 혐오의 대상이었기에 영국 정부로부터 처벌을 받았다.
그가 받은 선택지는 감옥에 가는 것 혹은 화학적 거세였고, 그는 후자를 택했다. 화학적 거세란 호르몬 치료이었고 튜링은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는 후유증을 심각히 앓았다. 이러한 고통 속에서 그는 2년 후, 겨우 41세의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안타깝게도, 튜링만 처벌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무려 5만 명의 남성들이 같은 법 아래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그들 중 일부는 화학적 거세를 당했고, 또 일부는 ‘혐오 요법’이라 불리는 치료를 강제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치료는 남성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동안 전기 충격이나 약물로 인한 구토를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이것은 파블로프가 개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며 조건반사를 실험했던 것에 기반한 것이었고, 그 논리는 단순했다. 동성애와 고통 또는 구역질 사이에 정신적 연결을 만들어, 남성에게 동성에 대한 혐오감을 심고 이성애자로 바꾸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치료는 세금으로 운영되었으며, 국립보건 서비스(NHS) 병원과 의사들에 의해 실행되었고, 이는 일부 인권단체가 ‘비인간적인 의학 실험’이라 부른 치료법으로, 나치 시대의 인권 침해와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끔찍한 치료는 1972년까지도 일부 NHS 최고 전문가들에 의해 정당화되었고, 세계적인 심리학자 중 한 명은 이런 이론을 지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 같은 ‘전환 치료’는 미국 심리학회와 세계보건기구 모두가 비과학적이며 해롭다고 명시하고 있다. 심리적 외상, 우울증, 자살 위험 증가 등 부작용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사람들은 1967년에 통과된 ‘성범죄 법’으로 동성애가 영국에서 합법화된 줄 알고 있지만, 그건 엄청나게 제한된 범위였다. 차별은 계속되었고, 동성애가 완전히 비범죄화된 것은 2003년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시작되었다.
그전까지 사회는 동성애자에 대한 많은 적대심을 보였으며, 많은 동성애자 남성들은 체포, 적대, 차별, 그리고 폭력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겨야만 했다. 이러한 억압은 결국 일상 속 소외감, 관계 파탄, 고립, 알코올 및 약물 남용으로 이어졌다.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에 내면화되었던 혐오와 차별은 점차 사랑과 연대, 공동체의 힘으로 해소되기 시작했고, 앨런 튜링에게 뒤늦게나마 정의가 실현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와 함께 고통을 겪었지만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피해자들의 삶 역시 기억하고 되새기는 일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진정한 성찰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