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객원 에디터 9기 / 신승우 기자] 지난 7일,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을 바꾸며 국제 안보 무대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시작과 함께,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전면 중단했다. 이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약 1200억 달러(약 160조 원)에 달하던 지원을 끝낸 것으로, 트럼프의 “미국 우선” 정책이 본격화된 신호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문제는 유럽의 책임”이라며, 미국의 해외 군사 개입을 줄이고 러시아와의 협상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 결정은 지난 2월 28일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우크라이나 정상회담 결렬로 구체화됐다. 회담에서 트럼프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러시아와의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했으나, 젤렌스키가 이를 거부하면서 협상이 파국으로 치달았다. 이후 미국은 무기 공급뿐만 아니라 정보 지원까지 중단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첨단 무기와 위성 데이터를 활용해 러시아군을 견제하던 상황에서 큰 전력 손실을 초래했다.
미국의 지원 중단은 우크라이나 전선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 HIMARS 다연장로켓, 패트리엇 방공 시스템, F-16 전투기 등 미국산 무기와 실시간 정보가 사라지면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세에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위성 감시망이 제공하던 러시아 미사일 발사 경고가 중단되면서 민간 피해도 증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에 지원 강화를 호소했지만, 유럽 단독으로 이 공백을 메우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유럽연합(EU)은 2025년 초 500억 유로(약 72조 원) 규모의 긴급 지원 패키지를 승인하며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이는 주로 비군사적 목적에 집중된 자금으로, 미국의 군사적 공백을 완전히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영국은 “평화보장연합”을 주도하며 방공 미사일 5000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겠다고 약속했고, 프랑스는 휴전 제안을 통해 외교적 해결을 모색 중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유럽의 무기 생산 능력과 재고가 미국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입장 변화는 유럽의 안보 정책에 근본적인 재편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 냉전 시기부터 미국의 군사적 우산에 의존해 온 유럽은 이제 자율적 방위 능력을 키워야 하는 시험대에 섰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은 2034년까지 군사비를 총 8000억 유로(약 1150조 원) 증액할 계획을 세웠다. 이는 냉전 이후 최대 규모의 재무장으로, 미국의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대응책이다. 독일은 5000억 유로 규모의 방위 기금을 조성하며 자국군 현대화를 추진하고, 프랑스는 “유럽군” 구상을 재점화해 EU 차원의 통합 군사력을 강화하려 한다. 영국은 나토(NATO) 내에서 유럽 주도의 방위 체계를 제안했으며,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와 발트 3국은 자국 방어를 위한 병력과 장비를 증강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유럽이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적인 안보 역량을 구축하려는 의지의 표명이다.
유럽의 안보 정책 변화는 군사 협력과 기술 자립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차세대 전투기 공동 개발을 가속화하고, 덴마크와 체코는 포탄 생산량을 늘려 우크라이나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럽이 미국산 무기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국 방위 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보도했다. 예를 들어, 영국의 핵 억지력은 미국과 공동 관리하는 트라이던트 미사일에 의존하지만, 이를 프랑스산 M51 미사일로 대체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이 미국 없이 자력 방위를 구축하려면 최소 10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핵무기, 항공 방위, 정보 자산 등에서 러시아에 비해 열세인 유럽은 단기적으로 미국의 완전한 철수를 막기 위해 나토의 역할을 재조정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 변화는 러시아에 유리한 지정학적 균형을 만들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트럼프가 푸틴과의 협상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영토 손실과 나토 가입 연기를 조건으로 한 휴전을 추진할 경우, 러시아는 동부 점령지를 사실상 영구적으로 확보할 기회를 얻게 된다. 반면, 유럽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우크라이나 지원을 지속하며 러시아를 견제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으로 유럽의 군사적 통합과 자율성 강화는 새로운 안보 질서를 형성할 수 있다. EU와 나토가 단합된 방위 체계를 구축한다면, 러시아뿐 아니라 미국의 정책 변화에도 대비할 기반이 마련된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우크라이나의 전황 악화와 유럽 내 자원 부족으로 인한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의 우크라이나 전쟁 입장 변화는 유럽 안보 정책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했다. 미국의 지원 중단은 우크라이나에 즉각적인 위기를, 유럽에는 자율적 방위라는 과제를 안겼다. 2025년은 유럽이 미국의 패권 후퇴 속에서 스스로 안보를 책임지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유럽은 러시아의 위협과 내부 단합이라는 이중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운명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