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Social] – 나는 자유민이다.

Illustration by Yoeeun Lee (NLCS Dubai Grade 9)

by Jiyun Kim (NAS Dubai Year 6)

현재 대부분의 나라들은 왕이 다스리는 전제군주제가 아니라 대통령이나 총리가 통치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의견 차이로 인해 분열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에서 조 바이든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트럼프와 그의 추종자들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시위를 하며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천부인권 사상에서 탄생했고, 공화를 위해 많은 사람들의 용기와 희생이 필요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군사쿠데타를 일으키며 장기 집권을 하였고, 전두환 전 대통령도 군부 독재 정치를 이어갔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의 항의와 시위를 했고, 이로 인해 1997년 민주주의를 되찾았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시작은 왕이 다스리던 조선시대 말기, 1984년 동학농민운동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1894년 1월, 탐관오리 조병갑의 횡포로 시작된 고부 민란은 녹두장군 전봉준과 뜻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괭이, 대나무 죽창, 호미 같은 농기구를 들고 관하를 습격하며 시작하였다. 그들이 외친 구호는 ‘보국안민’으로 백성이 나서서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보살핀다는 뜻이었다. 제대로 된 무기도 없었지만 농민들의 절박함으로 고부 민란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더 나아가 1894년 11월 서울로 진격하기 위해 우금치 전투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백성들이 자기의 권력을 넘볼까 두려웠던 고종은 외세의 힘을 빌려 자신의 백성을 진압하라고 명령했다. 다름 아닌 일본군이었다. 백성들은 일제의 공격에 무참하게 살해되었고, 당시 조정의 무능함과 외세의 잔인함을 알게 되었다.

동학농민운동은 실패했지만 백성들은 좌절하지 않고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만들었다. 서재필이 1896년에 창간한 독립신문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신문으로 백성들에게 국내외의 정보를 알려주고 공화정의 가치를 알려주는 언론이었다. 1898년 만민공동회가 개최되었을 때 서울 인구 20만 명이던 시절, 첫 만민공동회에 1만 명이 몰렸다. 만민이 모여 외세를 규탄하고 대한제국의 국정개혁을 요구하였고, 만민공동회의 주장과 결정은 독립신문에 실려 전국으로 전파됐다. 독립협회는 중추원을 개편해서 의회 민주주의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담긴 헌의 6조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보수적인 조정은 독립협회를 반란의 무리로 몰아 스스로 개혁할 기회를 놓쳤고 보수파들의 사주를 받은 보부상들이 만민공동회를 습격했다. 그 과정에서 김덕구가 사망했고, 그의 장례식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였다. 정말 길고도 서글픈 행렬이었다.

20세기 초, 러시아의 군주 니콜라이 2세도 민중들에 의해 권력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레닌의 10월 혁명으로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하였다. 1918년 레닌은 핍박을 받고 있는 소수민족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며 인간의 권리 선언을 하였고, 레닌의 민족자결주의로 인해 러시아의 통치를 받고 있던 나라들이 자유로워졌다. 또한, 1918년 1월, 1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파리 강화 회의에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평화를 위한 14개 조 원칙을 발표하였다. 그 특히, 5조에 적혀 있던 민족자결주의는 많은 나라에게 독립의 희망을 안겨주었다. 민족자결주의란 민족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으로 약소국의 독립을 지지하는 선언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우리나라의 백성들은 우리도 독립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국가들의 통치를 받고 있는 나라만 해당된 반쪽자리 선언이었다. 일본은 영국과의 조약으로 승전국인 상황이었고, 조선의 독립은 약속받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신규식이 세운 동제사 회원 중 김규식과 여운형은 파리로 가서 윌슨과 강대국들에게 조선의 독립과 정당성의 지지를 호소했다.

한일병합 이후, 상하이로 간 조선의 예관, 신규식은 1911년 신해혁명의 과정을 목격하고, 본격적으로 공화의 꿈을 꾸었다. 1917년 뜻이 같은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대동단결 선언을 하였다. 그리고 레닌과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소식은 일본의 유학생들에게 전해졌다. 일본에 있던 600여 명의 유학생들은 2월 8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조선의 독립을 세계에 알렸다. 이후 조선에 전해져 1919년 3.1 운동이 발발하였다. 일본인들도 예상하지 못한 저항이었고 전국 7개 도시에서 함성이 울려 퍼지며 이후 2달 동안 들불처럼 일어났다. 

나는 민주주의는 평화와 화합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국민들과 함께 국가에 직면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고 서로 존중해야 너 나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 국민들은 신중하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대표를 선출해야 하며, 쿠데타를 안 일으킬 것 같은 대통령을 뽑고 그렇게 뽑아준 대표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제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들이 원하는 가치와 꿈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정치제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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