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적 분석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격화

영국의 이중계약

이스라엘의 국가 선포

4차례의 중동전쟁

책임은 누가 지는가

< OpenAI의 DALL·E 제공 >

[객원 에디터 7기 / 신승우 기자] 지난 13일 이스라엘군은 난민 캠프가 몰려있어 ‘인도주의 구역’으로 지정된 가자지구 남부 도시의 칸 유니스를 공습했다. 이스라엘군의 이번 공격은 하마스의 군사조직인 알카삼 여단의 사령관 무함마드 데이프와 라파 살라메를 겨냥한 것이라고 밝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그 지역에 민간인과 인질이 없다는 정보기관의 확인을 받은 후 이스라엘군이 작전을 수행하도록 승인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하마스 통치 하의 가자지구 보건부는 성명에서 “이날 공습으로 최소 90명이 숨지고 300명이 다쳤다”며 “사망자 중 수십 명은 어린이와 여성”이라고 전했다. 반면에 이스라엘군은 “사상자 대부분은 하마스 대원일 가능성이 높다”라고 전했다. 현장을 방문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기구 대변인 루이스 워터리지는 “당시 폭발로 2살짜리 아기가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어머니는 실종됐다”며 “또 다른 어린이는 다리가 날아가고, 8살짜리 소년이 숨지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휴전 협상 중재국인 이집트는 외무부 성명을 냈고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이 같은 공격은 평화와 휴전을 위한 노력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라고 규탄했다. 이처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휴전 협정 중에도 격화되고 있으며, 하마스 이전, 팔레스타인 전체와 이스라엘과의 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이유에는 어떠한 요인이 있을까?

구약성경에서, 모세는 이집트에서 노예의 삶을 살던 유대인들을 이끌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끌었다. 이 땅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가리키며, 현재 갈등과 충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역사적으로 돌아보면, 이집트에서 넘어온 유대인이 현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해 기원전 1000년경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면서 시작된다. 이스라엘 왕국은 이후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 멸망하고 유대인은 2세기경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문에 쫓겨나 유럽과 북아프리카 등지로 흩어져 살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19세기 후반 시온주의 운동이 시작되면서 본격화됐다. 시온주의자들은 유대인들의 고향인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만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대규모 이주를 시작했다. 그러나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을 떠난 20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은 그 땅에 이미 정착해 살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갑자기 나타난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조상이 살던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첫 만남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분쟁’의 씨앗은 영국과 맺은 ‘이중 계약’이다. 문제가 된 영국의 맥마흔과 밸푸어 두 차례 선언을 살펴보도록 하자. 20세기 초, 영국은 오스만 제국과의 싸움에서 아랍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1차 세계대전 이후 1915년에 아랍의 독립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에 따라 아랍인들은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켰고 그 결과로 오스만 제국의 쇠퇴에 이바지했다. 그러나 맥마흔 선언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포함 여부에 대해 명확히 언급하지 않았다. 이 내용은 후에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의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됐다. 한편, 영국은 맥마흔 선언 직후인 1917년, 유대인 시온주의 지도자 로스 로스차일드에게 서신을 보내 ‘유대인의 집’을 팔레스타인에 건설하는 것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밸푸어 선언 내용 중, 영국은 “이 선언은 유대인 정착을 지원하면서도 현지 아랍인과 비유대인 공동체의 민족적, 종교적 권리는 침해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아랍인들은 밸푸어 선언을 배신으로 받아들였고, 이는 현재 분쟁의 중요한 원인이 됐다. 맥마흔 선언과 밸푸어 선언은 내용을 대조하면 물음표가 나오는 부분이 많다. 영국은 맥마흔 선언을 통해 아랍인들에게 독립을 약속했지만, 밸푸어 선언으로 유대인들에게 ‘민족의 집’을 약속한 것이다. 영국은 자신들의 순전히 이익을 위해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에게 혼란을 낳았고, 이는 팔레스타인에서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1948년 5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영국은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했고, 그 뒤 유대인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국가 건국을 선포했다. 팔레스타인인 및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국가 수립에 반대했고, 결국 이스라엘 선포 다음날에 제1차 중동전쟁을 일으켰다. 이스라엘의 존재 그 자체를 부정한다는 의미이다. 갓 건국된 이스라엘은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등 5개국 아랍 연합군의 공세를 견뎌야 했다. 이스라엘은 열세임에도 20일 넘게 버텼고 6월 스웨덴의 중재로 휴전 협정이 시작됐다. 협정이 진행될 동안 이스라엘은 미국의 지원에 힘입어 아랍 연합군을 공격했고 1949년 2월 평화조약이 체결되며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2차 중동전쟁은 1956년,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 통행료의 국유화를 선언한 것에 반발해 영국과 프랑스가 수에즈를 폭격했다. 이스라엘도 동맹을 맺었고 이집트를 침공했다. 3국은 수에즈 운하와 시나이 반도를 점령했고 그해 11월 정전 안이 채택되자 군대를 철수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이스라엘은 아랍 게릴라의 기지가 된 시리아에 4월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고 이집트는 군대를 시나이 반도에 투입해 6월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전면전이 벌어졌다. 유엔 안보리는 즉시 정전을 결의했고, 쌍방 수락으로 정전이 실현됐다. 제3차 중동전쟁은 6일 만에 끝나 ‘6일 전쟁’이라 불린다. 4차 중동전쟁은 1973년 이집트의 이스라엘 기습 선제공격으로 시작됐다. 개전 48시간 만에 이스라엘은 17개 여단이 전멸해 이집트의 승리가 코 앞이었으나 미국이 이스라엘을 대대적으로 지원하여 전황이 역전됐다. 아랍국가들의 불만으로 일어났던 4차례의 중동 전쟁은 오히려 이스라엘의 세력을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국제사회는 평화를 위한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3년 오슬로 협정이 체결되며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인정하기로 했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두 국가 해법’으로 팔레스타인이 주권국가로 독립해 이스라엘과 공존하는 것을 목표로 협상을 진행했다. 그러나 20년을 훌쩍 넘겨버렸고 협상은 거의 진척이 없다. 특히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이슬람 무장 정파인 ‘하마스’가 다수당이 된 이래, 이스라엘에 대한 강경한 도발로 갈등이 쉽게 고조되는 양상이 반복됐다. 이후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3차례 전쟁 (2008-09, 2012, 2014)이 발생했으며 이외에도 소규모 충돌이 발생했다. 이번 전쟁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년 10월부터 발발했으며 현재까지도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고 있다.

맥마흔 선언과 밸푸어 선언, 그리고 이스라엘의 막무가내 건국 선포 등의 사건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적인 측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들이다. 이 요소들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갈등의 주요 원인을 제공했다. 정리해 보면 영국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씨앗을 뿌렸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중 자신들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 두 집단에 모순되는 약속을 했다. 이 약속들은 결과적으로 오늘날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극명한 견해 차이로 갈등이 이어졌다. 영국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명확히 해야 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 단순한 사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현재 진행 중인 평화 과정에서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사회 또한 세계적인 전쟁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아야 하며 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공정한 중재를 해야 한다.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는 양측의 갈등을 조정하고, 평화 협정이 지속할 수 있도록 유지해야 한다. 또한, 유니세프와 유엔난민기구 등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피해자들을 돕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국제사회, 영국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 모두 내부에서 평화를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스라엘은 1993년 오슬로 협정에 따라 ‘두 국가 해법’,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해야 하며 팔레스타인 또한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이 방법이 가장 인도적인 해결책으로 보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잘못한 국가에서는 책임을 지고, 국제사회는 제 몫을 다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더 나아가서 중동의 평화를 도모해야 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두 집단 간의 문제가 아니다. 이 분쟁은 국제 정치의 복잡한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하며 주요 국가들의 국익이 얽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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