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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그 역사적 서막은?

< OpenAI의 DALL·E 생성 이미지 >

[ 객원 에디터 6기 / 박혜진 기자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이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다. 9일(현지시간) 튀르키예 국영 아나돌루 통신에 따르면, 하마스가 운영하는 가자 지구 보건부는 이날 현재까지 이스라엘 공격으로 사망한 사람이 1만812명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이 중 어린이는 4412명, 여성은 2918명이다. 고령자는 676명이다. 사망자뿐만 아니라 부상자도 적지 않으며, 실종자 또한 추정할 수 없을 정도에 달한다. 또한 인질로 잡힌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이렇듯 많은 인명 및 재산 피해 등을 가져온 이팔 전쟁은 어떠한 이유에서 시작됐을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의 시작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삼중 계약을 체결한다. 프랑스와는 영토를 반씩 나누기로, 아랍권 국가들에는 독립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유대인들에게는 그들 자신만의 국가를 건설하게 해 준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아랍권 국가들의 독립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던 영국은 전쟁 후 팔레스타인을 손에 쥐게 됐고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의 총책임자로 임명했다. 영국이 아랍권 국가들에게 했던 약속을 어긴 것이다. 영국이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의 편을 들어준 후 팔레스타인 내 유대인의 수는 급증했고 그들은 점차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랍인들은 유대인에 대항해 시위를 벌였고, 그들은 영국에게 팔레스타인의 완전한 자주독립과 유대인 이민 금지를 요구했다. 결국 영국은 유대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영국의 행동에 유대인과 아랍인들의 갈등은 격화됐다.

영국은 이 문제를 UN으로 넘겼고, 1947년 UN총회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영토 분할안이 가결됐다. 분할안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은 그들의 영토의 56% 유대인과 분할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이를 거부했고, 아랍인들은 아랍인 중심의 팔레스타인을 압박해 둘 사이의 테러와 무력 다툼이 극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 1948년 5월 14일, 유대인들은 그들만의 국가인 이스라엘을 선포하게 된다. 그러자 아랍권의 중심이자 유대인들에게 반감을 가졌던 이집트를 포함한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 7개 국가는 이스라엘이 국가 설립을 선포하자마자 전쟁을 시작했다. 이로써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당시 강대국이었던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7개국 연합과 신생국의 싸움이었기에 모두가 연합군이 우세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막강한 자금과 군사력을 앞세운 유대인들이 강력한 저력을 내세우며 승리를 가져갔다. 1차 중동전쟁을 이후로 끊임없는 전쟁을 겪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두 나라는 서로에게 테러와 학살을 일삼았다. 그러던 중 팔레스타인은 1987년 이스라엘을 상대로 반 이스라엘 독립투쟁을 하게 됐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1차 인티파다이며, 이때 설립된 반 이스라엘 무장단체가 바로 하마스다. 

민간인을 인질로 삼고 여성과 아기를 무자비하게 살해한 하마스는 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으며, 반인륜적인 무장 세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서남부 지역에 무려 5천 발의 로켓을 선제 포격하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시작됐다. 전쟁이 시작되며 전투기와 대포를 포격하고, 미사일을 쏘는 등 양 측은 서로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이런 공격들에 의해 현재 각국에서는 사상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단지 두 나라만의 상황이 아니라 주변국들의 상황까지 악화시키고 있다. 오래된 분쟁 역사를 지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모두를 위협하는 전쟁에 결국 돌입한 것이다. 그들은 한치의 물러남도 없이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 그리고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아무도 모르지만 모두가 원하는 것은 이 전쟁이 얼른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복잡한 분쟁의 역사가 얽혀있기에 전쟁이 원만하게 마무리되는 것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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