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필수의료인의 부족이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근무 중 뇌출혈로 수술받지 못해 사망 

필수의료 의사 부족… “의료체계 무너졌다” 

2022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 고작 28.1% 

필수의료 지원 대책 … 결국 ‘돈’?

< Illustration by Jimin Moon 2009 (문지민) >

[위즈덤 아고라 / 김규인 기자] 최근 필수의료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고조되고 있다. 시설과 인력 등 모든 면에서 국내 최대 규모인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의식을 잃었지만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없어 타 병원으로 전원 후 숨진 사고는 대한민국 필수의료 체계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줬다. 

매년 3500명 의사가 나오지만 중환자를 보는 필수 진료과에 의사가 부족하다는 현실은 의료체계가 무너졌다는 신호다. 

대한 신경외과학회 등은 “예견된 참사”라며 “필수의료 인프라 개선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러한 참사는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라고 우려했다. 

의학계에 따르면 국내서 뇌동맥류 개두술이 가능한 뇌혈관외과 의사는 약 150명이다. 전국 관련 수련병원이 88개인 점을 감안하면 한 병원에 2명도 안되는 숫자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실제 신경외과 전공의와 전임의 현황을 살펴보면 2022년 뇌혈관외과 세부 전공 전임의 1년 차는 16명, 2년 차는 12명뿐이다.

이러한 문제의 배경에는 고된 업무와 의료사고 위험, 저수가 등 의료계의 여러 고질적인 문제가 얽혀있다. 

보건복지부 역시 이번 일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최근 대한의사협회 및 대한 신경외과학회, 대한 신경과학회, 대한 응급의학회 등 관련 학회들과 간담회를 갖고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인프라가 붕괴되고 다양한 지원이 시급한 진료과는 신경외과뿐만이 아니다. ‘필수의료’라는 단어와 더 가까운 소아청소년과나 산부인과 등의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지난 2018년 206명 정원에서 208명 전공의를 충원했던 소아청소년과는 올해 203명 정원에서 57명 전공의를 충원했다. 5년 새 충원율이 4분의 1로 급락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흉부외과·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과목 전공의 충원율은 100%를 채우지 못했다. 소아청소년과는 2018년부터 올해까지 정규 정원 1024명에서 689명을 확보했다. 2022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은 28.1%로 처음으로 30% 이하를 기록했다. 

저출산에 코로나19까지 겹쳐 개원의 어려움이 커졌고, 저출산으로 인한 ‘전망이 없는 과’라는 인식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소아 응급환자들은 아파도 갈 수 있는 병원을 찾기 힘들다. 이는 지방으로 갈수록 더욱 심각하다. 

서울 소재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 A(35)씨는 “아기를 특별히 좋아해서 소아청소년과에 가고 싶어 하는 의사가 있긴 하지만 주변에서는 ‘왜 굳이 거기를 가느냐’며 이해를 못 하겠다는 반응이 나온다”라고 말했다. 

흉부외과는 올해 48명 정규 정원에서 23명 전공의만 확보했다. 충원율이 47.9%로 채 절반이 되지 않는다. 지난 5년간 평균 충원율은 57.7%다. 산부인과 역시 올해 143명 정원에서 115명 전공의를 확보하며 80.4% 충원율을 기록했다.

전공의 충원이 안 되는 이들 필수 의료과는 교수가 직접 병원 당직 근무를 서며 버티고 있다. A 씨는 “외과에서는 고령의 교수가 야간 당직을 서는 게 일상화됐다”며 “일부 병원에서는 교수가 ‘무조건 당직 근무 하루 빼줄게’라는 식으로 지원자를 붙잡으려 한다”라고 말했다. 

김지홍 대한 소아청소년과 학회 이사장도 “나도 지금 강남세브란스 병원에서 야간 당직을 선다. 교수들이 번갈아 가며 겨우 돌아가게 한다”며 “후배 전공의에게는 곧 자신의 미래인데 이 모습을 보면 지원하고 싶어 지겠나”라고 설명했다. 

김태훈 정책이사는 “필수의료는 의대 정원만 늘린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당장 현장 의료진들도 좌절과 탈진으로 현장을 이탈하고 있는데 의사 정원을 확대해 먼 장래에 필수의료의 빈자리를 채우겠다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김 정책이사는 “필수의료에 대한 정의가 우선이며 최종 목표 설정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전문가 논의체를 즉각 구성해야 한다”라고 했다. 

또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응급환자에 대한 적절한 처치가 가능하도록 지원과 계획을 수립하는 게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당장 필요한 조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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