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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대 최악의 인재, 체르노빌 원전 폭발

< PIXABAY 제공>

[객원 에디터 3기 / 박효은 기자] 2월 25일 러시아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주변에 포격을 가하면서 국제 원자력 기구 IAEA와 세계 각국이 심각한 우려를 표하였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북쪽의 벨라루스 접경지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1986년 4월 26일 제4호기 원자로가 폭발하면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 사고로 기록된 곳이다. 실제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함께 유일한 7등급 원자력 사고이다. 이곳은 폭발로 인하여 발생한 방사성 폐기물로 심각하게 오염되었으며 20년이 넘은 지금까지 일대가 철저히 봉쇄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교전이 발생하면 자칫 봉인된 방사성 폐기물들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

당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원자로의 전기가 끊길 경우 비상전력을 얼마나 공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원자로의 출력을 비상시를 가정하여 평소 3,200MW 수준의 출력을 700MW까지 낮추었다. 그런데 외부에서 전기가 필요하다는 연락이 오자 출력을 700MW에서 1,600MW로 높여 실험을 진행했다. 이때 핵분열을 방해하는 제논이란 물질이 축적되었고 출력은 급속도로 30MW까지 떨어졌다. 이에 담당자는 출력을 회복하기 위해 급격한 핵분열을 통제하는 제어봉을 강제로 제거했다. 이때 마찬가지로 제어봉 역할을 하는 물이 줄어들었고 출력은 예상외로 크게 상승했다. 이후 출력을 멈추고자 했지만 출력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결국 원자로는 과부하로 폭발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원자로의 노심이 녹으면서 고농도의 방사능이 유출되었다. 사고 직후 원자로 주변에서는 15,000 뢴트겐이 넘는 방사능이 측정되었다. 그리고 사고를 진압하고자 소방대원을 비롯한 수많은 인력이 투입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방호복도 없이 현장에 진입하였다. 소방헬기마저 방사능 입자에 직격으로 맞아 추락하는 상황에 말 그대로 맨몸으로 들어간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고는 4호기에서 멈췄지만 그 과정에서 최소 22만 명이 방사능에 피폭되고 이 후유증이 후대까지 이어지는 참극을 낳고 말았다.

사실 이 사고는 막을 수 있었던 전형적인 인재였다. 당시 세계 최초로 원자력 발전소를 상용화한 소련은 원자력 발전소를 체제의 상징으로 삼았다. 그렇기에 소련은 국가적으로 수많은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했으며 이러한 발전소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곧 공산당과 국가에 대한 충성이었다. 그러자 일부 발전소 담당자들은 무리하게 발전소를 가동하거나 안전수칙을 무시하였고 체르노빌도 그중 하나였다. 체르노빌의 담당자였던 아나톨리 댜를로프가 안전 장치도 끄고 무리하게 실험을 강행한 것에도 역시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원자력 발전소를 다시 활성화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는 분명히 많은 에너지를 싸게 공급할 수 있지만 동시에 엄청난 참극을 일으킬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는 양날의 검이다. 이러한 원자력 발전소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전적으로 우리 스스로에게 달려있으며 원자력 발전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쓰기 위해서는 안전의식이 필수 불가결하다. 원자력 발전소에 불량 부품을 썼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오늘날 우리는 원자력 발전소를 사용함에 있어서 우리가 원자력 발전소를 어떻게 쓰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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