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도시 독일의 음악가 베토벤
“가장 뛰어난 사람은 고뇌를 통하여 환희를 차지한다.”
[객원에디터 1기/ 안현주 기자] 수백 년간 가장 높이 자리 잡은 음악의 대표인 클래식은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유럽의 독일은 많은 음악의 대가들이 탄생한 곳이다. 그중 베토벤은 역대 음악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1770년 12월 17일에 태어난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은 모차르트, 하이든과 같은 고전주의의 대표 작곡가 뿐만 아니라, 클래식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베토벤은 악성, 음악의 성인이라고 불리며 그는 독일의 본에서 태어나, 피아니스트, 작곡가이자 오르간 연주자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발한 음악 활동을 하였다. 또한 클래식을 자주 듣지 않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그의 음악을 들어보았을 만큼 많은 곡들을 작곡하였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교향곡 5번》, 《교향곡 6번》, 《교향곡 9번》, 《비창 소나타》, 《월광 소나타》, 등이 있다. 그러한 그는 폐렴을 동반한 합병증으로 57세에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당시 유행하던 궁중음악가인 그의 아버지는 천부적인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후 모차르트 같은 음악가로 키우기 위해 그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그는 당대의 작곡가인 하이든, 모차르트와의 인연이 있는데, 베토벤이 17살이 되던 해에 그는 모차르트를 만나 피아노를 쳤고 모차르트는 베토벤의 뛰어난 피아노 실력을 보고 옆방으로 가서 “저 사내를 잘 지켜보게, 나보다 유명하게 될 존재가 나타났다네”라고 외쳤다 고 한다. 베토벤과 모차르트가 만났다는 뚜렷이 증거는 존재하지 않아, 국제 음악계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지만 그가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모차르트를 만난 그는 당대의 또 다른 작곡가인 하이든을 만났고, 그는 1792년 빈으로 가 본인이 무척이나 존경했던 하이든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베토벤의 재능을 알아본 하이든에게 가르침을 받던 당시 느긋한 그와는 달리 베토벤은 “하이든에게서는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라고 선언하여 가르침을 멈추게 됐다 한다. 그는 피아노만을 연주한 것은 아니다. 그는 바이올린에도 재능이 있었고 바이올리니스트 이그 나츠 슈판지히에게 가르침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그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본 귀족들은 그를 지지해 주었고, 그 또한 그에 보답하든 유럽 각지에 그의 영향력을 선포하였다.
그런 그는 1976년 시련을 겪게 된다. 음악가인 그에게 마치 벌을 내리듯, 그는 청력을 잃게 되고, 그 이후 그는 음악가 생활을 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작곡 활동에 더욱 몰두하여 후기에 많은 좋은 작품을 출판하게 된다. 그가 죽기 일주일 전 작곡가 슈베르트와 처음이자 마지막인 인연을 가졌다. 사실 두 사람은 2km 반경 안에 살고 있었지만, 그의 청력과 슈베르트의 소심한 성격으로 둘은 만남을 가지지 못한 채 지내고 있었다. 베토벤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지만 무치오 클레멘티와 같은 음악가들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나의 예술은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바쳐지지 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