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덤 글로벌] 미중 패권전쟁과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위즈덤 아고라 / 전시현 기자]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시작된 세계화로 냉전의 벽에 막혔던 자본이 곳곳으로 향했고, 199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하며 글로벌 경제체제는 날개를 달았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을 바짝 쫓아오며 패권국가를 노리자, 세계화를 주도했던 미국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핵심 산업과 기술을 미국 앞마당에 놓고 단속을 하는 모양새다. 물론 3년간의 코로나19로 공급망이 무너지고,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며 ‘우리’를 외치던 나라들이 자국만을 생각하고 있지만 누가 뭐래도 미국은 동맹국과 함께 중국을 견제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코로나 19 이전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미중 패권전쟁은 처음에 관세문제에서 출발했으나 점차 미국의 중국 ICT 기술 압박으로 진화하고 있다. 당시 미국은 중국 화웨이를 지목해 강력한 규제에 돌입했고 현재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과학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꺼내 들고 있다. 모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IRA를 통해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핵심광물의 공급망을 흔들어 미국의 주도권을 강화하려는 의도이다.
중국의 세계시장 진출을 도운 장본인이 바로 미국인데, 왜 미국은 이렇게까지 중국을 견제하는 것일까? 팽팽하게 이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은 1980년대의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보는 것 같다. 물론 일본은 체제 경쟁까지 하고 있는 중국과 달리 미국과 같은 민주주의 진영으로 단지 경제적 라이벌 관계였지만 패권을 넘보는 나라를 대하는 미국의 자세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의 지난 30년을 분석해 보면 미중갈등을 이해할 수 있고, 우리나라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첨단 전자제품을 만들어내며 전자산업 붐을 이끌었다. 전쟁이 끝나며 연합국과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통해 군사력을 증강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안보에 쏟을 비용을 줄여 경제 발전에 집중하면서 여러 가지 산업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일본 입장에서 마침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군사공급처로 인프라가 성장했고, 미국의 반도체 기술을 도입하면서 전자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였다. 그리하여 세계 최초로 시속 200km의 초고속 열차 ‘신칸센’을 개통하면서 일본은 놀라운 기술력을 보여줬다. 수출의 호황을 맞으며, 1980년대 일본은 미국을 이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에 올랐다. 하지만 미국은 점점 일본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1970년대에는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 자동차 생산국이 되었고, 미국은 1985년 일본에 대해 440억에 달하는 심각한 무역 적자로 고통을 받았다.
계속 뒤처지기만 할 수는 없었던 미국은 결국 1985년 뉴욕 플라자호텔로 세계의 경제 대국들을 불러 모아 달러값은 내리고 일본 엔의 값은 올리자는 제안을 했다. 일명 ‘플라자 합의’로 미국 제품이 세계적으로 더 잘 팔리도록 환율을 조절한 셈이었다. 그러나, 이미 세계 사람들은 퀄리티가 높은 일본 제품들에 적응이 되었고, 가격이 비싸져도 일본 제품에 대한 구매열풍은 줄어들지 않았다. 미국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자 2년 뒤, 루브르 합의로 7개국의 금리를 인하했다. 5%였던 금리는 점점 내려가 결국 2%까지 하락했다. 엄청나게 낮은 금리로 인해 돈이 풀렸고, 부동산과 주식 시장에 자금이 몰렸다. 일본인들이 저금리로 전례 없는 버블 경제 속에서 살기 시작한 것이다. 넘치는 취업 자리로 인해 입사를 하기 전 여행을 보내주는 기업도 생겼고, 심지어 면접만 보면 돈을 지급하는 회사들도 늘어났다. 그러나, 높은 주가의 끝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1991년 일본 주식 시장의 버블이 터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95년에는 무려 진도 7.3 규모의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재산 피해가 약 10조 엔이었다. 엄청난 피해를 입은 일본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발을 빼기 시작했고, 일본에서는 저성장과 저물가의 디플레이션 시대가 시작되었다. 심지어 1997년에는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일본은 또 타격을 입었고, 소비 심리가 더욱 위축되면서 내수 시장이 작아졌다. 호황기를 누리던 일본의 경제는 플라자 합의와 루브르 합의 등으로 위기를 맞았고, 현재까지도 그 위기가 이어져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과연 일본에서 버블이 터지지 않고 대지진과 같은 이러저러한 사건사고가 터지지 않았다면 미국은 과연 현재 패권 1등 국가로 남을 수 있었을까? 미국은 엄청난 국력을 이용해 일본이 플라자 합의에 동의하도록 만들었고, 결국 일본의 호황기는 끝이 났다.
이 상황은 현재 중국과 미국의 패권전쟁과 무척 닮아있다. 미국은 중국이 이렇게 막대한 힘을 가지기 전, 일본처럼 중국을 수출과 개발 등을 위한 공장으로 사용하면서 중국 기업들을 키워왔다. 그러나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미국을 따라잡고 위협하게 된 순간부터 미국은 어떤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중국을 짓누르려고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과거와 미중 패권전쟁을 보면서 우리나라는 배울 점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수입과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크다. 중국 제품들이 점점 발전하면서 우리나라 제품들로 가득하던 중국 시장은 이제 중국 제품들로 찼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수입과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컸고, 거기에다가 낮은 출산율과 위축된 소비 심리로 인해 경기가 계속해서 나빠졌다. 이렇게 미중 패권전쟁과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보면서 우리나라는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 호황기를 누렸던 ‘메이드 인 코리아’가 흔들리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는 출산율을 높이고 소비 심리를 향상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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