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마다 같은 자극을 다르게 느끼는가?

나에게는 3점짜리 통증, 타인에게는 7점짜리 통증

통증 척도(VAS), 사적인 감각을 계량화하다 

엄살이 아닌 신경학적 흉터의 증거

[위즈덤 아고라 / 허지유 기자] 병원 응급실이나 통증 클리닉을 방문하면 의료진은 환자에게 0부터 10까지 숫자가 적힌 통증 평가 척도(NRS, Numerical Rating Scale)를 내민다. “0은 통증이 전혀 없는 상태이고, 10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극심한 고통입니다. 지금 느끼는 통증은 몇 점인가요?” 이 단순한 질문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깊은 당혹감을 느낀다. 나에게는 온몸이 찢겨 나가는 듯한 7점의 고통이지만, 옆 침대의 환자는 비슷한 크기의 주삿바늘을 맞고도 태연하게 3점이라고 답 하기도 한다. 더 높은 점수를 부른 사람은 엄살이 심한 것일까, 아니면 실제로 더 큰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것일까?

주관을 숫자에 가두는 모순, 리커트 척도의 한계

의학계는 고통이라는 철저히 사적인 감각을 계량화하기 위해 리커트 척도 기반의 평가표와 시각 통증 척도(VAS)를 고안해 냈다. 그러나 ‘고통의 표준화’는 본질적인 모순을 품고 있다. 인간에게는 미터법처럼 통증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외부 기준점이 없기 때문이다.

개인이 매기는 통증 점수는 그가 평생 겪어온 통증의 경험치와 신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고통 내에서 정해지는 상대적 위치 일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찰과상이 과거 골절의 통증에 비해 ‘사소한 2점’으로 분류될 수 있지만, 심각한 외상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동일한 찰과상이 ‘충격적인 6점’으로 기록될 수 있다. 결국 통증 척도는 객관적 크기를 재는 자가 아니라, 주관적 고통을 수학적 언어로 해석한 번역기에 가깝다.

엄살이 아닌 몸속 ‘천연 진통제 청소부’의 속도 차이

신경생물학과 유전학의 발전은 통증 감각의 격차가 정신과 심리의 강도 자이가 아닌, 타고난 ‘생물학적 하드웨어의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사실의 중심에는 우리 뇌 속 신경전달물질을 분해하는 효소 유전자인 ‘COMT’가 있다. 이 유전자는 쉽게 말해 뇌 속 신경 물질을 치우는 ‘청소부’ 역할을 맡는다. 미국 미시간 대학교 뇌신경과학 연구팀에 따르면, 유전적 특성에 따라 이 청소부의 일 처리 속도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청소 속도가 느린 유전형(Met형)을 가진 사람은 뇌 신경 물질이 분해되지 않고 오래 머무는데, 그 결과 체내 천연 마약성 진통 물질인 엔도르핀의 분비와 수용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여기에 뇌에서 진통 신호를 받아들이는 ‘수신 안테나’ 격인 ‘OPRM1’ 유전자 변이까지 더해지면 차이는 더욱 극명해진다. 안테나의 성능이 떨어지거나 청소부의 효율이 다르면, 똑같은 물리적 압력이나 열 자극이 주어져도 누군가의 뇌는 진통 물질을 즉각 뿜어내 자극을 둔화시키는 반면, 다른 누군가의 뇌는 자극을 고스란히 통과시킨다. 같은 자극 앞에서 누군가는 태연하고 누군가는 비명을 지르는 현상은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망에 장착된 감각 센서의 효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고장 난 화재경보기처럼… 뇌가 고통을 학습하는 ‘중추감작’

통증의 격차를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은 신경계가 살아오며 축적한 기억, 즉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의학적 개념이 바로 ‘중추감작(Central Sensitization)’이다.

‘감작(Sensitization)’이란 외부 자극에 대해 신경계가 과민하게 반응하도록 변하는 현상을 뜻한다. 만성적인 학업 스트레스, 수면 부족, 혹은 과거에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방치되었던 강한 통증은 척수와 뇌의 신경 회로에 지속적인 피로를 준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신경계는 마치 불이 나지 않았는데도 미세한 먼지나 냄새만으로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초과민 화재경보기’처럼 변해버린다.

정상적인 신경계라면 옷깃이 피부를 스치는 감각을 단순한 ‘촉각’으로 가볍게 넘긴다. 하지만 중추감작이 진행되어 통증의 역치(신호가 뇌로 전달되는 최소 자극의 크기)가 바닥까지 낮아진 상태에서는, 뇌가 이 가벼운 스침조차 ‘살을 베는 칼날 같은 통증’으로 인식하는 이질통(Allodynia)을 겪게 된다. 오디오 스피커의 볼륨 다이얼이 최대치로 고장 나 작은 발자국 소리도 천둥처럼 울리는 상태와 같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과도한 통증 호소는 꾀병이 아니라, 과거의 손상과 스트레스 속에서 신경망이 경계 태세를 갖추며 남겨진 ‘신경학적 흉터’의 증거일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을 재단하지 않는 지혜

우리는 흔히 타인의 아픔을 볼 때 “그 정도 일로 뭘 그렇게 유난을 떠느냐”며 섣불리 재단하곤 한다. 그러나 신경생물학이 제시하는 진실은 명확하다. 

병원에서 제시하는 리커트 척도는 치료와 처방의 효율성을 위해 고안된 행정적 도구일 뿐, 인간 감각의 절대적 진실을 가두는 그릇이 되지 못한다. 통증의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의학적 지식을 쌓는 차원을 넘어선다. “우리는 각자 고유한 신경학적 감각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타인이 내지르는 비명을 나의 잣대로 깎아내리지 않는 성숙한 태도, 즉 진정한 공감의 과학적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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