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리아 내전의 원인은 기후위기?

Illustration by Seo jin Lee

Youjin Sohn 2007 (손유진, NLCS DUBAI )

2020년 말, 전 세계가 그토록 기다리던 코로나19 백신이 만들어지고, 선진국들부터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2021년 초부터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고, 선진국들은 여름이 지나자 백신 접종으로 집단면역을 이뤘다며 ‘위드 코로나’를 실시하였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오미크론’변이가 등장하였고, 전 세계적으로 확진자 수는 솟구쳤다. 선진국들은 백신을 성공적으로 접종하고 있었는데, 변이는 어디서 등장한 것일까? 오미크론 변이의 발원지는 바로 아프리카였다. 선진국들이 백신 제국주의를 통한 독점으로 백신 수량을 다 가졌기 때문이다. 빈곤국에 백신을 공급하는 목적으로 코벡스가 출범하자 미국은 WHO를 탈퇴하였고, 영국은 자국공급을 위해 백신 선구매를 시작하였다. 그래서 아프리카와 같은 저소득 국가들은 전 세계 82%의 백신 확보율 중에서 고작 1%만을 차지했다. 이번 오미크론 변이 사태를 통해, 저소득 국가들을 포함한 전 세계가 백신을 확보하지 않는 이상, 변이는 계속 나타날 것이고, 코로나19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세계는 배웠다. 그리고 세계가 생각보다 촘촘히 연결돼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코로나19 뿐만이 아니고, 현재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여러 기후 문제들도 마찬가지다.

시리아는 12년째 내전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지역이다. 내전으로 인해 크게 떠오른 이슈는 난민이다.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약 560만여 명의 사람들이 한순간에 난민이 되었고, 약 620만 명은 실향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이다. 이렇게 많은 난민들을 발생시킨 시리아 내전의 발발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근본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꼽을 수 있다. 한때 시리아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불리며 세계 최초의 농경문화가 시작된 지역으로 굉장히 풍요로운 곳이었다. 하지만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시리아에 사상 최악의 가뭄이 닥치며 큰 기후변화를 겪었다. 이로 인해 농민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며, 도시에는 인구 밀도가 증가하였고, 빈부격차 등 여러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였다. 결국 정치적 혼란으로 이어져 내전이 발발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리처드 사거 교수 연구진은 “인간이 기후체계를 교란한 게 내전의 가능성을 2~3배 이상 높인 것으로 관측된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시리아 난민들도 결국 ‘기후난민’이다. 기후난민이란 기후변화로 인해 생활이나 생활환경에 위협을 받아 살던 곳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2016년 기후위기로 인한 이재민은 2,350만 명이었다. 2008년 이후로 기상 관련 재난 이재민은 매년 평균 2,170만 명이 발생했는데, 이는 1분에 약 41명씩 발생하는 것과 같은 수치이다. 세계은행은 2050년까지 1억 4천만 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더군다나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기상이변은 저개발국가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했지만 선진국에서도 극단적인 이상기후가 발생하며 표준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 많은 수의 난민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시리아 난민의 경우 주변 국가들을 지나 유럽으로 행한다. 하지만 내전을 피해 도착한 곳도 안전하지 않다. 시리아 난민들은 난민을 많이 수용하기로 알려진 독일로 가기 위해 벨라루스를 거친다. 하지만 EU에서는 벨라루스가 일부러 유럽에 난민들을 떠넘기려 한다며 벨라루스와의 국경을 철저하게 통제한다. 따라서 벨라루스와 폴란드 국경에 있는 난민들은 폴란드 군의 열감지 카메라에 포착되어 체포되기 일쑤다.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온 난민들은 결국 오도 가도 못한 채 죽어나가고 있다.

기후위기로 인한 난민은 해당 국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지만 난민 수용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기후위기는 한 나라의 잘못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난민 이슈는 몇몇 나라들이 짊어져야 할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타협해가며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이제 인류가 당면한 문제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그 해법 또한 함께 공유하고 소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난민 문제의 뿌리에 있던 기후위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지난해 10월 말, 영국 글래스고에서 기후변화당사국총회, COP26가 열렸다. UN이 주관하는 기후변화당사국총회는 1992년에 마련된 기후변화협약의 이행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1995년부터 개최하기 시작한 회의다. COP26에는 세계 각국의 지도자와 대표자들, 기자 등을 포함해 약 25,000명이 모여 세계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총회가 끝난 뒤에는 기후변화당사국총회 선언문이 나왔는데, 충격적인 결론이 나왔다. 원래 ‘석탄 퇴출’의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마지막 선언문에서는 ‘석탄 감축’을 하기로 마무리 지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린, 이번 합의로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COP26의 이런 결정 뒤에는 개발도상국들의 산업논리가 작용했다. 중국과 인도 등의 개발도상국들은 과거 빈곤국이었지만, 근래에 경제적 성장을 이뤄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는데 이들 나라에게 저렴한 에너지는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선진국들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연구를 거쳐 이제는 신재생에너지가 석탄과 천연가스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을 도달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들은 아직 그러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해 만약 석탄 퇴출이 벌어진다면 그들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결국 선진국으로 가지 못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지구온난화의 원인을 분석해볼 때,‘석탄 퇴출’이라는 것은 선진국들의 이기적인 발상일 수 있다. 지금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은 일찍이 산업혁명을 거치며 석탄을 사용해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고,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까지 선진국들이 무분별하게 사용한 석탄 때문에 우리가 기후위기를 겪는 것이다. 그런데 누릴 거 다 누린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이나 빈곤국가에게 유용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고, 이제 와서 석탄을 퇴출시키자는 제안을 하는 것은 개도국이나 빈곤국의 성장의 기회를 뺏았는 이기적인 발상이다. 이번 합의는 선진국의 양보와 파격적인 제안이 부족해서 생긴 결과라고 볼 수 있는 점이다.

기후변화는 몇몇 국가들만의 책임이 아닌, 전 세계에 책임이 있기에 전 세계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또한, 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작은 문제도 연결된 재난의 세상에서는 세계적인 문제로 번질 수 있으며 기후위기는 ‘죽고 사는’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세계가 촘촘히 연결돼있다는 사실을 코로나와 난민 문제에서 느꼈으니, 더 이상의 재난을 막으려면 이제 선진국들도 나서서 활동해야 할 때가 왔다.

선진국들은 이미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한다며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신재생에너지는 기존의 석탄 에너지를 대체하지 않고, 석탄 에너지 위에 에너지를 미미하게 더하기만 했을 뿐이다. 그래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효과는 별로 없다. 그렇다면 이제 해야 하는 것은, 지금까지 인류가 해왔던 성장을 멈추는 것이다. 성장을 멈춘다는 것은 아예 발전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의 성장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는 지금까지 ‘경제성장’만을 바라보고 자원을 소모해왔다. 이 경제성장은 GDP를 통해 측정되는데, 우리는 이 GDP가 과연 적절한 기준인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GDP는 물질적인 성장만을 측정하고, 특히 시장에서 교환되는 것만 측정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굉장히 역설적인 일이 발생하는데, 예를 들어 기후위기로 인해 집이 수몰되고 인명 피해가 생겨도 이 피해는 집계되지 않는 반면, 나중에 이를 복구하기 위해 건물을 새로 짓고, 보험금을 지급하면 기업의 이익이 되어 GDP에 집계된다. 또, 숲을 훼손하면 감염병이 출현하는 등의 재난의 원인이 되지만, 목재를 얻으니 GDP는 올라가고, 감염병이 돌아 병원 이용이 증가하면 이도 GDP에 더해진다. 결국 GDP가 올라갈수록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과 인명피해는 늘어나는 셈이다.

따라서 이제는 GDP를 성장의 축도로 삼지 않고, 지속적인 발전 가능성을 성장의 기준을 고민해야 한다. 앞으로 혁신은 새로운 기술과 물건을 뜻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남기지 않고 자연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에 주목해야 한다. 촘촘히 연결된 세상에서 이런 새로운 방향성을 갖고 세계가 나아간다면 급격하게 망가져가는 지구, 즉 인류의 집을 조금이라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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