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분자요리의 과학적 원리

1988년 탄생한 과학과 요리의 조합

음식 역시 상이한 화학물질들의 혼합물

Illustration by Taeho Yu

[객원에디터2기|성민경기자] 단순한 조리법을 알려주는 레시피를 넘어 음식의 맛과 향을 사전에 디자인한 요리를 분자 요리라 한다. 분자요리 (Molecular gastronomy)는 ‘분자 요리학’ 혹은 ‘분자 미식학’을 바탕으로 하며 조리과정에서 물리적, 화학적으로 일어나는 변화를 탐구하고, 분자 구조 분석을 통해 맛과 향을 사전에 계획한다. 이를 통해서 식재료가 가진 물리적, 화학적 특성을 이해하면 이를 바탕으로 형태와 질감을 바꿔 전혀 다른 요리를 만들 수 있다. 분자요리는 1988년 프랑스 화학자 에르베 티스와 헝가리 물리학자 니콜라스 쿠르티가 요리를 연구하던 중 탄생했다. 이들이 요리와 과학을 결합해 연구한 결과 ‘분자물리요리학’을 만들었으며, 분자요리는 2000년대에 들어서 전 세계의 레스토랑으로 뻗어나갔다. 

분자 미식학의 조리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은 구체화 (Spherification)이다. 이 조리 방법은 알긴산염 (sodium alginate)과 칼슘이 반응해서 굳어지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알긴산염과 액체를 섞어 주사기 혹은 스푼에 놓고, 젖산칼슘이나 염화칼슘에 떨어뜨리면 동그란 모양을 얻을 수 있다. 그 외의 첨가물로는 산탄검 (xanthan gum), 시트루스 (citrus), 글루코스 (glucose) 등이 있다. 산탄검은 검은 옥수수를 발효해서 만든 일종의 점성제이고, 시트루스는 감귤류부터 생산되며 야채와 과일의 갈변 방지에 주로 사용된다. 글루코스는 흔히 사용되는 물엿으로 설탕의 재결정화를 늦추고 수분 감소를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이 조리법을 이용해 많은 분자요리 레스토랑들은 가짜 캐비어를 만들거나 과즙이 들어있는 구를 만들기도 한다.

<출처: pixabay>

구체화 기법 외에도 탄산화 기법은 널리 알려져있는 조리방법이다. 탄산화 기법은 드라이아이스가 물속에서 이산화탄소 기체로 변하는 성질을 이용한다. 이산화탄소와 수분이 만나 탄산이 형성되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탄산화의 가장 대표적인 기법은 사이펀이라는 조리기구 안에 과일을 잘라서 넣고 이산화탄소를 넣어 과일에 탄산화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 조리기법을 사용하면 음식에 청량감과 톡 쏘는 맛을 더해준다고 한다. 

거품추출법은 유화제나 계면활성제, 이산화질소가 들어있는 고압 통에 재료를 넣어 거품 소스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다. 거품은 액체나 고체 속에서 방울 형태나 기체 형태로 구성되어 3가지의 상태가 혼합되어 있는 것이다. 분자요리의 용어로는 폼 (foam)이라고 하는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식품첨가물은 레시틴이다. 레시틴이 거품을 형성하고 거품의 구성 시간을 연장시켜준다. 거품 추출법은 빵, 거품, 수프 등을 만들 때 쓰여 맛과 함께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분자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적 원리를 기반으로 셰프가 사전에 맛을 계획하는 것이다. 분자요리와 한식을 결합한 메뉴를 가지고 있는 레스토랑의 셰프 김기호는 “분자 요리 이론 중 저작(음식을 입에 넣고 씹는 것)시 발생하는 향 분자의 전달 속도를 조절해 맛의 순서를 설정하는 방식이 있다” 고 말했다. 우리의 콧속에 있는 맛을 감지하는 세포는 지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를 수용성인 콧물이 덮고 있다. 김 셰프는 “수용성 용액을 통과하는 속도에는 분자마다 차이가 있다”고 설명하며, 이론적으로는 분자가 수용성을 통과하는 속도를 파악해 이를 조절함으로써 맛의 순서를 계획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분자요리는 조리 시간을 단축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김기호 셰프의 레스토랑 메뉴 중 하나인 ‘검은깨 스펀지케이크’는 일반 스펀지케이크와 같은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을 가지고 있지만, 에스푸마 기법이 이용됐다. 반죽에 사용되는 모든 재료를 한 번에 섞어 에스푸마 기계에 넣은 뒤 질소를 주입시키면, 기계 내부에서 빈 공간에 공기가 차며 자연스럽게 반죽이 만들어진다. 이를 종이컵에 짜 넣고 전자레인지에 30초가량을 돌리면 케이크가 완성된다. 김 셰프는 “분자요리는 기존의 조리법을 단순화시킬 수 있다”며 “과정이 빨라지면서도 요리의 내용은 달라지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분자요리는 단순화된 식재료를 현재도 변화시키고 있다. <음식과 요리>의 저자 해롤드 맥기는 “요리는 응용화학이다”라고 한다. 그는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렇듯이 음식 역시 상이한 화학물질들의 혼합물이며, 우리가 주방에서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성질들, 즉 맛, 향, 질감, 색깔, 영양은 모두 그 화학적 성질들의 표출이다”라고 말했다. 분자요리는 화학적, 물리적 기법들을 시각적으로 극대화시키지만, 우리가 평소에 먹는 요리도 다 과학적 원리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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