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무시와 차별을 이겨낸 여성 과학자들

세계 여성 역사의 달(3월)을 맞이하여

과학 교육에서 배제됐던 여성들

<자료출처: PIXABAY>

[객원 에디터 3기 / 하민솔 기자] 19세기 전반까지 여성은 정규 과학 교육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여성 과학자들은 성차별과의 싸움을 이겨내며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마리 퀴리, 로잘린드 프랭클린, 도로시 호지킨 등 대표적인 여성 과학·공학자들과 그들이 세상에 남긴 업적들은 다른 과학자들 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마리아 스쿼도프스카 퀴리 (Maria Skłodowska Curie: 이하 마리 퀴리)

903년, 남편 피에르 퀴리, 지도 교수 앙투안 앙리 베크렐과 공동수상을 했으며, 노벨 화학상은 1911년 단독 수상했다. 노벨상 중에서도 과학 분야에 속하는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수상한 사람은 마리 퀴리가 유일하다. 노벨상 2관왕은 노벨 화학상과 노벨 평화상을 받은 라이너스 칼 폴리(Linus Carl Pauling)와 마리 퀴리가 유일하다.

퀴리는 지도 교수인 앙투안 앙리 베크렐이 발견한 우라늄의 베크렐 선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되고, 베크렐 선 현상을 보이는 물질을 찾는다. 그녀는 ‘피치블렌드(역청우라늄광)’라는 광물에서 강한 방사능이 배출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남편과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1898년 우라늄보다 감광 작용이 4배나 강한 물질을 찾아냈으며 두 가지 원소의 혼합물이었다는 사실을 발견 후, 그중 하나를 분리해냈다. 원소의 이름은 ‘폴로늄’이라고 명명되었으며 우라늄보다 감광 작용이 400배나 강하다.

이 결과로 퀴리는 우라늄이나 폴로늄과 같이 감광 작용을 보이는 물질들을 방사능이라고 불렀으며 빛을 방사선이라고 불렀다. 이어서 그녀는 감광 능력이 무려 250만 배나 강한 원소를 발견했으며 이를 라듐이라고 명명했다. 라듐 연구로 인해 그녀는 노벨 물리학상을 남편과 지도 교수와 함께 공동수상 하게 되며 1911년에는 라듐의 성질 및 화합물 연구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다.

로잘린드 프랭클린 (Rosalind Elsie Franklin)

로잘린드 프랭클린 (Rosalind Elsie Franklin)은 단백질 결정학에 크게 기여한 영국의 생화학자 도로시 호지킨과 동시대에 살았는데, 호지킨처럼 엑스선 결정학을 이용하여 DNA, 바이러스 및 흑연 등의 구조를 밝혀내는데 기여를 했었다. 그녀의 최고 업적으로는 유전학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DNA의 구조를 밝혀내어 유전 정보의 전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밝혀낸 점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37세의 젊은 나이에 난소암으로 사망해, 노벨상을 수여받지 못했다. 때문에 DNA 구조에 대한 노벨상은 제임스 듀이 왓슨 (James Dewey Watson), 프랜시스 크릭 (Francis Harry Compton Crick) 그리고 모리스 윌킨스(Maurice Hugh Frederick Wilkins)에게로 돌아갔다.

도로시 호지킨 (Dorothy Crowfoot Hodgkin)

영국의 생화학자인 도로시 호지킨 (Dorothy Crowfoot Hodgkin)은 단백질 결정학에 기여했으며, 35년 동안 인슐린 연구를 진행했다. 그녀는 페니실린을 추출한 영국 생화학자 에른스트 체인 경 (Sir Ernst Boris Chain)과 함께 페니실린의 구조를 입증했다. 또한 수용성 비타민 B12 (vitamin B12 혹은 cobalamin)의 구조를 밝혀낸 성과를 이뤄냈으며 이로 인해 196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호지킨은 엑스선 결정학을 이용하여 생체분자들의 구조 파악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 35년간 인슐린 연구를 진행한 후 B12의 구조를 해독한 점은 그녀의 최고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리타 레비몬탈치니 (Rita Levi-Montalcini)

유대인이었던 리타 레비 몬탈치니 (Rita Levi-Montalcini)는 경력 정지 위기에 처했던 과학자였지만 이에 주저하지 않고 침실에 실험실을 만들어 연구를 이어갔다. 전쟁 도중에도 그녀는 닭 배아의 신경 섬유 성장 연구를 진행했고,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후에 1947년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 대학교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녀는 암 조직에서 세포 성장을 촉진하는 신경 성장 인자를 분리해내어 동료 스탠리 코헨 (Stanley Cohen)과 함께 1986년 노벨 생리학 의학상을 수상했다. 2001년 그녀는 학계에서 은퇴해 이탈리아 상원의원으로 재직했다. 그녀는 최장기간 생존한 노벨상 수상자로 알려져 있으며 103세 나이로 2012년에 사망했다.

엘리자베스 블랙번 (Elizabeth Blackburn)

엘리자베스 블랙번 (Elizabeth Blackburn)은 염색체 끝에 DNA 조각 텔로미어(telomere)에서의 염색체 보호 원리를 규명한 바가 있는데, 그녀의 학생이었던 캐럴 그라이더 (Carol Widney Greider)와 함께 텔로미어 길이가 일정 수준 짧아지면 염색체가 제대로 복재되지 못하고 세포 분열이 중지됨과 동시에 노화가 시작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 텔로머라아제(telomerase)라 불리는 효소 덕분에 텔로미어의 길이를 유지할 수 있음을 밝혀냈어 세포 분열 시 텔로미어 DNA는 왜 짧아지지 않는지에 관한 의문을 해결했다. 이 발견으로 2009년 노벨 생리학 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에이다 러브레이스 (Augusta Ada King, Countess of Lovelace: 이하 에이다 러브레이스)

러브레이스 백작 부인 어거스트 에이다 킹 (Augusta Ada King, Countess of Lovelace: 이하 에이다 러브레이스)은 1815년 태생으로 영국의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의 딸이다. 그녀는 수학자이자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로 알려져 있다. 

영국의 수학자·공학자이자 “컴퓨터의 아버지”라 불리는 찰스 배비지 (Charles Babbage)는 잦은 계산 오차를 줄일 수 있을 수학 테이블의 기계적 계산방식을 찾길 원했는데, 그는 해석기관 (Analytical Engine)이라고 이름을 붙인 기계적 범용 컴퓨터를 설계하고 고안하기 시작했다. 배비지는 이에 대한 세미나를 이탈리아 토리노 대학에서 개최했다. 이를 들은 과학자들의 논문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에이다 러브레이스가 맡았다. 그녀는 번역을 진행하는 동시에 유리수 수열인 베르누이 수 (Bernoulli numbers)를 구하는 해석기관용 알고리즘을 실었으며 이는 현대식 최초의 프로그램으로 인정되었다. 

작가인 도런 스웨이드 (Doron Swade)와 앨런 브롬리 (Allan Bromley)에 따르면 그녀의 업적들은 모두 찰스 배비지가 먼저 완료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때문에 그녀를 최초의 프로그래머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아직 논란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배비지의 실수를 발견 및 수정했으며 음악의 요소들이 해석기관이 처리 가능한 형태로 변환된다면 이를 작곡 등의 창작활동까지도 가능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가 있기에 그녀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프로그래밍에 대한 잠재력과 이해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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