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의 땅, 기술의 땅으로

[위즈덤 아고라 / 김시헌 기자] 중동은 오랫동안 석유와 천연가스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금씩 다른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를 중심으로 인공지능(AI), 핀테크, 클라우드 컴퓨팅 같은 첨단 기술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는 중이다. 각국 정부도 창업을 지원하고 해외 기술 전문가를 유치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이제 중동은 석유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술 산업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중동이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경제를 더 다양하게 발전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중동 국가들은 기술 산업을 키워 경제 구조를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다른 나라의 기술에만 기대지 않고, 자국의 데이터와 핵심 기술을 직접 관리하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2026년 1월에 발표된 스타트업 관련 기사에 따르면, 중동·북아프리카(MENA) 지역의 스타트업들은 한 달 동안 5억 달러가 넘는 투자금을 유치했다. 특히 UAE에서 투자가 활발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에서도 창업 활동이 늘어난 것으로 소개됐다.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온라인 쇼핑 기업 noon과 후불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Tabby, Tamara가 꼽힌다.
이 기업들은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이고 고객을 늘리면서 성장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이나 모바일 결제처럼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서비스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투자금을 많이 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 있어야 하며, 기업이 꾸준히 수익을 내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 투자 규모만 볼 것이 아니라 사업을 얼마나 오래 유지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정부의 지원 역시 중동의 기술 산업이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석유 중심의 경제에서 벗어나 금융, 디지털 서비스, 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를 발전시키려고 한다. UAE의 두바이 국제금융센터(DIFC) 혁신 허브와 아부다비의 Hub71은 스타트업을 돕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공간에서 창업가들은 투자자를 만나고 사업에 필요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회사를 처음 시작할 때는 자금뿐만 아니라 일할 공간과 기술 개발 기회, 전문가의 조언도 필요하다. 따라서 창업 지원 시설은 새로운 기업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정부의 지원만으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서비스를 개발하고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중동에서 빠르게 주목받는 또 다른 분야는 핀테크다. 핀테크는 금융과 기술을 결합한 산업으로, 모바일 결제와 온라인 송금 같은 서비스를 포함한다. 2024년 6월 법률·전문 서비스 기업 링크레터스(Linklaters)가 발표한 분석에서는 중동·북아프리카·파키스탄 지역의 핀테크 매출이 2022년 15억 달러에서 2025년에는 35억~45억 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당시에 발표된 예상치이지만 핀테크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성장의 배경에는 스마트폰과 인터넷 사용의 증가가 있다. 예전에는 은행을 직접 방문해야 했던 금융 업무도 이제 휴대전화로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온라인 결제는 물건을 살 때 편리하고, 소규모 사업자에게도 다양한 결제 방법을 제공하는 기회가 된다. UAE는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시험할 수 있는 규제 샌드박스와 오픈 파이낸스 제도도 도입했다. 이러한 제도는 기업이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고 금융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편리함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개인정보 유출이나 금융 사기 같은 문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핀테크가 더욱 발전하려면 편리한 서비스와 함께 이용자의 정보를 보호하는 안전한 시스템도 갖춰져야 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로도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2026년 7월 아랍아메리카(Arab America)에 실린 기사는 중동 국가들이 ‘디지털 주권’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다뤘다. 디지털 주권이란 자국의 데이터와 디지털 인프라, 핵심 기술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인공지능을 운영하려면 프로그램만으로는 부족하다. 방대한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할 데이터센터와 고성능 컴퓨터, 안정적인 통신망이 필요하며, 이를 관리할 전문 인력도 갖춰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이러한 기반에 투자하며 자체적인 기술 역량을 키우고 있다. 다른 나라의 기술을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개발하고 운영하는 수준까지 나아가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금융과 행정, 기업 운영 등 여러 분야에 활용될 수 있어 앞으로도 그 중요성이 커질 전망이다. 하지만 데이터센터를 많이 건설한다고 곧바로 기술 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설을 관리할 전문가와 안정적인 전력 공급, 연구개발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실제로 기술을 활용하는 기업이 충분하지 않다면 투자한 시설도 제대로 쓰이지 못할 수 있다. 결국 시설을 얼마나 많이 갖췄는지뿐만 아니라 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하는지가 중요하다.
기술 산업이 성장할수록 사이버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의 필요성도 커진다.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정보가 많아지면 해킹이나 개인정보 유출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과 공공기관처럼 중요한 정보를 다루는 곳은 더욱 철저한 보안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보안 프로그램을 활용하거나 수상한 금융 거래를 찾아내는 기술을 도입할 수 있다. 한편 국가마다 데이터 보호 규정이 다르면 여러 나라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은 각국의 법과 규칙을 따로 확인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이 더 들 수도 있다. 기술 발전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사람들의 정보를 안전하게 지킬 규칙과 시스템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기술 산업을 성장시키는 데는 투자금과 좋은 시설 외에도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기술을 개발하고 운영할 사람들이다. UAE의 골든 비자와 사우디아라비아의 프리미엄 거주 제도는 해외의 기술 전문가와 창업가들이 해당 국가에서 장기간 생활하며 일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해외 인재를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국 청년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일 역시 필요하다. 청년들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직접 창업에 도전할 수 있다면 더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실제 서비스로 이어질 수 있다. 처음에는 작은 생각에서 출발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기술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청년들이 기술을 배우고 창업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교육과 지원이 더 늘어났으면 한다.
그렇다고 모든 중동 국가가 같은 속도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대규모 투자와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인공지능과 데이터 인프라를 확충하고 있다. 반면 이집트와 카타르, 모로코 등은 각자의 상황에 맞춰 기술 산업을 발전시키는 중이다. 팔레스타인처럼 오랜 전쟁과 여러 어려움으로 통신 시설과 자원이 부족한 지역도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기술 산업에 투자하는 일부터 쉽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한 나라에서 성공한 방식을 다른 나라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각 지역의 상황과 필요한 부분을 고려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중동의 기술 산업은 석유 중심의 경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디지털 금융, 인공지능에 대한 투자가 맞물리면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투자 규모가 크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고, 기술을 다룰 인재를 꾸준히 키워야 한다. 개인정보와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도 중요하다. 나아가 기술 산업이 일부 국가나 도시에만 집중되지 않고 더 많은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앞으로 중동이 세계적인 기술 산업의 중심지가 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래도 석유와 천연가스에만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로 미래를 준비한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중동의 변화를 평가할 때는 투자금의 규모만으로 판단해서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는지, 기업이 꾸준히 성장하는지, 사람들의 생활이 더 편리해졌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기술 산업의 발전이 중동의 경제와 사람들의 일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싶다.
[위즈덤 이코노미]중동은 오랫동안 석유와 천연가스를 중심으로 경제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관광, 기술, 금융, 제조업,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산업을 육성하며 경제 구조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은 대규모 국가 개발 계획을 추진하는 한편, 해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일자리와 인구의 이동, 도시의 모습, 국제 무역의 흐름은 물론 다른 국가들과의 경제·외교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김시헌 기자의 ‘위즈덤 이코노미’는 빠르게 변화하는 중동 경제의 현재를 짚고, 그 변화가 중동과 세계 경제에 가져올 미래를 살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