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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 치유와 화합의 ‘5.18 민주화 운동’을 위하여

Illustration by Sihyun Jeun

by Sihyun Jeun (NAS Dubai Year 10)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고, 이날을 광복절이라고 한다. 광복이라는 말은 ‘빛을 되찾는다’는 뜻으로, 나라를 되찾고 스스로 다스리는 국가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냉전시대에 한반도는 이후 3년간, 미소 군정기를 거쳤고 드디어 1948년 5월 10일, 국민들이 처음으로 참여하는 총선거를 실시하였다. 그 선거로 제헌의원을 선출하고 1948년 7월 17일에는 대한민국의 뿌리가 되는 헌법이 탄생했다. 그리고 그 헌법에는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이 선출되었다. 일본으로부터 해방한 뒤, 민주주의 국가의 탄생에 들떠 있던 국민들은 민주 공화국에 기대를 했지만 이승만은 2 차례에 걸쳐 개헌을 하였고, 심지어 투표함 바꿔치기 등의 부정선거를 하였다. 이에 국민들은 4·19 혁명으로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려고 하였고, 이승만은 스스로 권력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이후 두 번의 군부 독재 시절을 겪으며 민주주의는 퇴색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시민들은 이 대통령들의 독재정치와 통치를 막고,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민주화운동을 하였다. 우리나라의 많은 민주화운동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다.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자 같은 해 12월 12일, 당시 전두환 국군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은 군사반란을 일으켜 국가 권력을 장악하였다. 이에 반발한 시민들은 1980년 봄부터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5월 15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6개 대학 25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하지만 신군부세력은 사회 혼란을 막는다며 5월 17일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확대하였다. 계엄령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인 5월 18일, 광주에서 전남대 학생들이 계엄령 해제를 요구하며 시위를 전개했고, 이에 신군부는 공수부대로 구성된 계엄군을 보내 무력으로 학생들을 저지하여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첫날 시위는 해산됐지만 시민과 학생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이후 학생 시위에 시민이 합세하며 규모가 커지자 계엄군은 시위대에게 총을 쏘기 시작했다. 이에 맞선 광주 시민들은 경찰서와 예비군의 무기고를 열어 스스로 무장한 뒤 계엄군에 저항했다. 시민들의 공세에 계엄군은 물러나는가 싶었지만 다시금 광주 시내로 들어가 시민군을 진압했다.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기습공격으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며 실패로 끝났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1980년대에 이어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민주화운동 과정에 참여한 수많은 이들의 정신적 뿌리이기 때문이다. 1980년부터 이어온 민주주의와 역사 발전에 대한 신념, 고귀한 희생과 헌신으로 1987년 6월 항쟁, 1991년 5월 투쟁 등을 통해 국민적 동의와 확산을 이루어냈다. 그 후, 1997년 전두환 노태우 등 92명을 내란 목적 살인죄 등으로 처벌하고 국가기념일 제정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5.18 민주화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 항쟁으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며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헌법정신을 국내외에 퍼뜨렸다. 시대의 억압과 불의에 맞서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고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실현하려는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부터 1997년 광주학살 책임자를 사법 심판하기까지 이어져 내려온 5·18 민주화운동과 그 정신은 오늘날 세계 곳곳에 중요한 민주화운동 사례와 모범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2011년 5·18 민주화운동 관련 자료들은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럼 전 세계가 인정한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많은 국민들은 정의롭고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일부 우파 국회의원들은 5·18 민주화 운동의 유가족들을 “종북좌파가 만든 괴물집단”이라고 칭하였고, “80년 5월 전남도청 앞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사진에 찍혔는데, ‘북한군이 아니라 나다’라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다른 의원은 “좀 방심한 사이 정권을 놓쳤더니 종북 좌파들이 판을 치며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내 우리의 세금을 축내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은 북한군의 개입으로 인한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지만원은 “북한 특수군 중에는 어린이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있다”, “전두환은 영웅” 등의 주장을 펼쳤다. 이에 광주 시민들은 분노하며 망언 논란을 제기했고 5·18 민주화 운동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고 주장한 지만원 씨를 처벌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여전히 지만원은 최근 ‘북조선 5․18 아리랑 무등산의 진달래 475송이’를 출판하고 북한군 개입 허위 주장을 반복하며 왜곡과 폄훼를 멈추지 않고 있다.

5.18 민주화 운동은 대한민국 역사에 평생 기록될 우리의 소중한 역사이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5.18 민주화 운동을 북한 특수군들이 만든 ‘이상한 괴물 집단’이라고 하며 광주 시민들과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지난해 12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를 형사 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한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다. 또한, 개정된 5·18 특별법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법이며, 반대의견을 억압하는 전체주의적인 법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5․18에 대한 왜곡이 광범위하게 일상화되고 가짜 뉴스가 만연한 현재, 가족을 잃고 상처를 받는 사람들을 먼저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북한군 개입설’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나 다양한 의견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사실 확인으로 따져야 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거짓이라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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