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l] – 인간의 악마성과 이성, 소설 파리대왕
by Jeongseok Woo (DAA Grade 11)
파리 대왕은 1954년에 발표된 윌리엄 골딩의 소설로 출간 당시에는 3천 부 미만의 낮은 판매량을 기록하는 데 그쳤지만, 곧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작품의 배경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전쟁을 피해 피난 가던 영국 소년들이 비행기 추락을 하여 무인도에 표류되고 고립된 뒤 벌이는 모험담이다. 언뜻 생각하면 15 소년 표류기의 줄거리와 내용이 비슷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문명과는 동떨어진 무인도에 고립된 소년들이 조금씩 야만인으로 변질되어가는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정체불명의 외부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극한 생존 위기로 인해 오로지 약육강식의 질서가 힘을 얻으며 신앙과 이성, 마지막으로 양심까지 버리며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다. 천재지변이나 전쟁 등의 격변으로 인해 사람들이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들이 무너지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사회가 되어간다는 무섭고도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다.
파리 대왕은 비행기가 섬에 추락하고, 어른 없이 아이들 몇몇만이 무인도에 남게 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비행기는 영국에서 피난을 위해 이륙한 것으로, 공격을 받아 추락했다. 주인공인 랄프는 헤매다가 피기를 만나고, 랄프가 소라껍데기를 찾아 나팔을 불자 아이들이 정글 밖에서 나온다. 초반에 소년들은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고 리더십이 있는 소년인 랄프를 대장으로 삼아 나름 질서를 유지하면서 그럴듯하게 어른들의 흉내를 냈다. 자기들은 자랑스러운 영국의 학생이라는 것에 반석을 두고 있었으며 구조가 되려면 봉화를 피우고, 역할과 순서를 지키는 등의 규칙을 만들어 어른답게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 위의 ‘짐승’이라 불리는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불안감이나 사냥 등을 통해서 표출되는 야만성, 그리고 본래 권력욕을 숨겨왔던 잭이 그의 욕심을 표출하면서 상황은 점차 파국으로 치닫는다.
잭은 봉화를 지켜야 하는 규칙을 무시하고 사냥을 떠난 행동을 합리화하며 자신의 무리를 조직해서 떠나버린 다음에 소년들은 결국에는 문화인으로서의 질서를 완벽하게 잃고 야만인이 되어버린다. 소년들이 멧돼지를 사냥하는 방법이 갈수록 잔인해졌고, 나중에는 괴로워하는 돼지를 보고 즐거워하는 등 계속해서 서구 문명의 질서와 문화로부터 멀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법규와 양심을 잊은 나머지 결국에는 자기들끼리 서로 죽이고 고문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고, 결국은 유일하게 규범과 양심이 있는 세계를 잊지 않고 있던 랄프만이 그들로부터 도망치게 된다. 정확히 서술하자면, 야만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마저 랄프를 떠나게 된다. 가장 충실히 일하던 사이먼과 가장 합리적인 생각을 하던 피기는 잭의 무리에게 살해당했고, 랄프를 따르던 쌍둥이 샘, 에릭은 포획된 후 로저의 고문, 협박 등에 못 이겨 반강제적으로 잭에게 합류하게 된다. 쌍둥이는 랄프의 처지를 동정하고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지만 로저가 두려워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최후의 랄프 추적에도 동원되게 된다. 랄프는 잭과 그 추종자들에 의하여 쫓기게 되며, 그 와중에 잭과 추종자들이 그를 효율적으로 잡기 위해 섬에 불을 질러버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섬을 덮친 대화재를 목격한 해군이 섬에 상륙하며, 마침 그때 랄프가 그 어른들과 조우하게 된다. 고향에서 온 어른들을 본 랄프는 눈물을 흘리고, 어른들은 다른 아이들의 행방을 묻지만, 곧 랄프를 쫓아온 야만인 아이들을 보고서는 그들이 단순히 전쟁놀이라도 한 마냥 착각한다. 어른들, 즉 문명을 다시 만난 다른 아이들도 오열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파리 대왕에서는 총 네 명의 중심인물, 랄프, 잭, 피기, 그리고 사이먼이 등장하는데 그중 랄프와 잭 이 둘은 서로 상반된 인간상을 보여준다. 먼저 랄프는 민주적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주며 인간이 이성으로 쌓아 올린 것, 즉 문명을 상징한다. 그렇기에 랄프는 구조되기 위해 봉화를 피우기 위해 아이들에게 조직적으로 임무를 주었고, 앞으로의 생활을 위해 오두막을 지으려고 했다. 또한, 랄프는 설득과 다수결의 원칙으로 잭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반면, 잭은 반역과 분열의 지도자를 맡고 인간의 야만적 본성을 상징한다. 잭은 랄프가 지도자가 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자신이 리더가 되고 싶은 권력욕에 휩싸였다. 먼저 멧돼지 사냥을 시작한 것도 잭이었고 아이들한테 고기를 먹여 오두막 짓기 같이 지루한 일은 그만두게 만든 것도 잭이었으며 나중에 ‘짐승’으로 인해 아이들이 두려워했을 때 이상한 춤을 추며 멧돼지 머리를 창에 꽂아 제물로 바치자고 제안한 이도 잭이었다. 피기는 명석하고 랄프의 조언자를 맡고 있었지만 주체성이 없는 지식인을 상징한다. 책에서 피기는 랄프에게 여러 조언을 해주었고 가장 중요한 인원을 챙기고, 불을 피우기 위한 안경도 제공하였다. 하지만 지식을 상징하는 피기의 안경은 잭 일행들에게 넘어갔다. 이것은 피기가 주체성이 없어서 피기의 지식이 상대 쪽으로 넘어간 것을 의미하고 이것을 더 넓게 보면 지식은 좋지만 그것이 나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두려움을 느낀 아이들은 피기의 현명함보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천식과 비만, 안경을 써야 할 정도로 안 좋은 시력이 무인도 환경에 치명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이먼은 일반 시민이지만 진실의 목소리를 상징한다. 사이먼은 파리 대왕에 나오는 등장인물들 중 유일하게 다른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짐승’의 정체가 사실 조종사의 시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 사실을 알려 친구들을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아이들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광기에 취해있던 아이들은 어두운 숲에서 나온 사이먼을 짐승으로 착각했고 사이먼을 단체로 폭행하며 죽게 만들었다. 이것은 집단적 야만성이 강해지면 진실도 다른 것으로 단정 짓고 공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종사의 시체는 인간을 타락시키는 환상을 상징한다. 실제로 파리대왕에서 잭은 조종사의 시체를 짐승이라고 말하고 자신이 짐승으로부터 지켜주겠다며 자신이 지도자가 되는 것을 명분화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사이먼을 짐승이라고 착각해 죽였고 그렇게 그들은 자신의 순수함을 죽였다. 또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파리대왕(베엘제붑)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숨어있는 악마성을 상징한다. 괴물이 누구냐는 사이먼의 질문에 파리대왕은 ‘그 짐승이 모두에게 있다’고 말하면서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것을 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파리대왕의 결말 직전에 잭의 무리에게 쫓기던 랄프는 창에 꽂힌 돼지를 보고 돼지의 머리는 떨어뜨리고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창을 들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문명은 결국 타락하고 야만이 승리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잭과 그 일행들이 도착하기 전에 배가 와서 다행이었지만 만약 배가 오지 않았더라면 랄프는 그 창을 들고 나머지 일행들과 싸웠을 것이고 랄프가 들었던 창은 양쪽 끝이 뾰족해 두 쪽 모두에게 해를 끼칠 수 있어 랄프도 문명에서 벗어나 야만적인 행동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 파리대왕은 자치 방심한 사이 우리 사회가 도달할 수 있는 종착점 중 하나이자 우리 안에 잠재되어있는 악마성으로 인해 벌어질 비극을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주위에서도 이상적인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에 절망해 순수를 잃어버리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고 과거의 역사에서도 볼 수 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자신의 조국인 프랑스를 세계 제일로 만들고 싶은 이상이 있었지만 스스로를 황제로 칭하며 계속해서 전쟁을 벌여 프랑스의 국력을 악화시켰다. 또한, 비교적 최근에는 아웅 산 수치가 있다. 아웅 산 수치는 미얀마 군부 독재 정권 시기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이 되기도 했으나 수지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당이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 소수민족 탄압 및 학살을 방관했고 권위주의적 통치를 펼치며 언론을 탄압했다. 비록 우리의 이상이 너무나도 순수하여 현실과 안 맞는다고 해도 우리는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우리의 순수한 이상을 지켜나가야만 한다. 우리가 그렇게 이루고 싶어 하는 이상은 너무나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수성은 파리대왕에서 랄프가 주장한 민주적인 절차와 제도로 지켜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탐욕과 파괴의 잔혹한 본성을 자제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관심과 납득할 수 있는 정의로운 체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