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Novel] – 내면의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 – 소설 ‘자전거 도둑’을 읽고 –

Illustration by Yunji Kim

by Kangrae Kim(2006)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내면의 상처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사건이나 실수로 인하여 생긴 상처가 사소한 것이라면 금방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는 트라우마로 남아 지워지지 않는 내면의 상처가 되기도 한다. 보통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물지만 비슷한 상황이 닥쳐올 때마다 그 상처는 다시 덧나게 되고 아물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개개인의 방법도 있겠지만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것이 내면의 상처이다.

김소진의 소설 <자전거 도둑>은 두 주인공, 김승호와 서미혜의 내면의 상처와 치유를 다루고 있다. 소설은 누군가가 승호의 새로 산 자전거를 훔쳐 탄다는 것을 승호가 알아차리면서 시작된다. 승호는 이웃집 아이인 봉근이를 의심하지만 몸이 아파 집에 일찍 돌아온 날, 자전거 도둑이 꼭대기 층에 사는 에어로빅 강사인 서미혜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그녀를 자신의 집에 초대했고, 대화 도중, 인혜도 자신이 자전거 범인이라고 털어놓는다. 승호는 그녀에 대한 호감이 있었는지 앞으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허락해 준다. 이후 승호와 미혜는 승호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보는 영화 <자전거 도둑>을 같이 보게 되고 서로 어린 시절에 겪었던 내면의 상처에 대해 털어놓게 된다. 자신이 오빠를 죽였다는 미혜의 이야기를 듣던 승호는 그 자리를 피하고 며칠이 지난 어느 일요일 아침, 승호는 미혜가 자신의 자전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자전거를 훔쳐 타는 모습을 보며 소설은 끝이 난다.

승호는 어린 시절 뼈 빠지도록 가난한 삶을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승호가 카레멜 몇 개를 훔쳐먹은 것을 바로 알아차릴 만큼 구멍가게를 아주 소중히 여겼다. 어느 날, 승호의 아버지는 같은 함경도 출신인 도매업자 혹부리 영감에게 물자를 받던 중, 스무 병의 돈을 내고 진로 소주가 열여덟 병만 가져온 걸 알게 됐고 아버지는 안절부절못했다. 혹부리 영감에게 물건을 잘못 가져왔다고 말을 했지만 야박한 혹부리 영감에게서 돌아오는 것은 거래를 끊는다는 협박성 경고뿐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다시 그 수도 상회로 물건을 떼러 간 승호의 아버지는 전에 받지 못한 진로 소주 두병을 숨겨 나가려고 하였다. 하지만 혹부리 영감에게 들켰고 승호의 아버지는 난감한 사정에 처하게 되었다. 쩔쩔매는 아버지를 보자 그 상황을 알고 있던 승호는 자신이 훔친 것이라며 거짓말을 하였다. 혹부리 영감은 승호의 아버지에게 자식 교육을 똑바로 하면 이번 일은 넘어가 주겠다며 자신이 보는 앞에서 훈육을 하라고 하였다. 승호의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승호의 뺨을 쳤고, 승호는 큰 상처를 받았다. 승호는 혹부리 영감을 통해 아버지의 무력함을 느꼈고 자신은 절대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이 모든 원인인 혹부리 영감에게 복수심을 품은 승호는 혹부리 영감이 운영하는 수도 상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기 위해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연습을 하게 된다. 정해진 날, 승호는 모두가 잠든 밤에 하수구로 혹부리 영감의 수도 상회에 잠입하게 되고 그곳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나온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혹부리 영감의 금고에 똥을 한 바가지 싸고 나온 것이다. 다음 날, 그 소식을 들은 혹부리 영감은 충격으로 가게 문을 닫고 며칠 후 다시 문을 열지만 얼마 안가 숨을 거두게 되었다. 이후 어른이 된 승호는 자신이 직접 사람은 죽이진 않았지만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승호는 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자전거 도둑>이라는 영화를 시청하는데 주인공 브루노가 아버지의 무력함을 느끼는 모습이 어린 시절 자신과 너무 비슷하여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혜는 어릴 적 오빠가 있었는데 자손이 귀한 집이라서 오빠가 태어나자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미혜의 오빠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자전거를 아주 잘 탔는데 한 번은 미혜를 태우고 가다가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미혜는 그것이 간질 발작 징후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미혜의 어머니는 남 부끄럽다며 오빠를 다락에 살게 하며 밥도 조금만 주고 산책만 몇 번 시켜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미혜가 체력장 때문에 피곤해서 잠이 들었는데 몸의 호르몬 작용 때문인지, 이성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오빠가 성추행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후부터 오빠를 무서워했고,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하루는 어머니가 진청 일로 고향에 가면서 오빠 밥만 잘 챙겨주라고 당부했다. 어머니는 정 무서우면 친구들을 데려와 자도 된다고 했지만 오빠가 무서웠던 미혜는 밥 챙겨주는 것마저 깜빡하고 친구 집에서 일주일을 보내게 된다. 일주일 후, 집에 다시 돌아온 그녀는 다락 속에서 처참하게 숨을 거둔 오빠를 보게 되고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며 일평생 내면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왔다. 그래서 그녀는 남의 자전거를 훔쳐 타는 것으로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있었다. 

승호와 미혜, 둘 다 사람을 죽게 했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지만 내 생각에는 미혜의 죄책감이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승호는 혹부리 영감을 죽이는 것까지 생각하지는 않고 가게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물론 영감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 그에게 타격을 주었지만 죽음에 직접 관여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미혜는 오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밥 주는 것마저도 까먹었고 오빠를 죽게 한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였다. 승호는 혹부리 영감의 소식을 듣고 죄책감과 통쾌함이 공존했을 것 같지만 미혜는 죽은 오빠를 보며 두려움과 죄책감 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미혜는 오빠가 자신을 자전거를 태워주고 있을 때 간질을 앓고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기 때문에 오빠가 생각이 날 때마다 자전거를 탔다고 생각한다. 또한, 죄책감을 씻기 위해서 자신이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자전거 도둑이 돼야 했을지도 모른다. 

소설을 읽으며 아쉬움이 남았던 장면이 있다면 어렵게 꺼낸 미혜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 승호가 다독여주지 않고 도망간 장면이었다. 만약 미혜에게 ‘오빠의 죽음은 니 잘못이 아니야. 너는 그때 오빠의 상황까지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이 아니었어. 괜찮아. 오빠도 네가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면 속상해할 거야’라고 말해줬더라면 미혜는 더 이상 자전거를 훔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자신을 이해해주는 따뜻한 누군가의 마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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