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객원 에디터 9기/정동현 기자] 조명이 번쩍이며 차가운 수술대 위에 남자가 눕는다. 닥터 옥토퍼스의 강철 촉수가 그의 몸을 휘감고, 팔 끝에서 섬세한 나노 기기들이 거미줄 같은 혈관을 따라, 돌연변이 유전자를 찾아낸다. 한 글자, 단 하나의 오류. 그것이 그의 몸을 망가뜨릴 수 있다. 닥터 옥토퍼스의 손끝에서 빛나는 마이크로 니들이 DNA 이중나선을 향해 천천히 내려온다. 염기의 잘못된 순서를 펜으로 수정하듯, 치명적인 유전자 오류를 덮어쓴다. 닥터 옥토퍼스(Dr. Octopus)의 “나노 기술을 이용한 유전자 교정 치료” 장면이다.
The Guardian은 지난 5월 15일, 미국 필라델피아 아동병원과 펜실베이니아대 연구팀이 중증 CPS1 결핍증을 앓고 있는 생후 수개월 된 아기에게 세계 최초로 염기 편집(base editing) 치료를 성공시켰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연구는 같은 날인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게재되었는데, 기존 유전자 가위(CRISPR-Cas9)가 DNA를 절단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기술은 유전자의 ‘한 글자’를 정확히 바꾸는 방식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이름이 KJ로 알려진 어린 환자는 생후 6~7개월 무렵인 2025년 2-3월에 간세포 내 원인 돌연변이만을 수술을 통해 정밀 교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술후 독성 암모니아 수치가 정상에 가깝게 회복됐으며, 식이제한과 약물치료 부담이 대폭 줄었다. 이번 성과는 희귀 유전질환 치료의 새 이정표로 평가된다.
CPS1 결핍증: 위중한 대사 이상 질환
CPS1 결핍증(Carbamoyl Phosphate Synthetase 1 Deficiency)은 요소회로 대사과정에서 암모니아를 무독성 요소로 전환하지 못해, 혈중 암모니아 수치가 급격히 상승하는 희귀 질환이다. 신생아기 발병 시 식욕부진, 혼수, 발작 등 치명적 증상이 나타나며, 치료하지 않으면 수일 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기존 치료는 단백질 제한 식이, 혈액투석, 간이식 등이었지만 근본적인 원인 유전자 교정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성공 사례는 CPS1 결핍증 환아와 가족들에게 획기적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문제 유전자만’ 정밀 타겟팅 치료
이번 CPS1 아기 사례 이전에도 유전자 질환의 원인 돌연변이만을 정밀하게 교정하는 시도가 이어져 왔다. 대표적으로 겸상적혈구병과 베타지중해빈혈 환자들에게 CRISPR-Cas9을 이용한 체외 유전자 편집 치료가 성공했고, 2021년엔 transthyretin amyloidosis 환자에게 직접 체내(in vivo) 유전자 교정이 이뤄졌다. 또한, 선천성 실명 질환(LCA10) 환자에게 눈 안에서 직접 유전자 교정을 실시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신생아에게, 특히 치명적 대사질환을 타겟으로 한 이번 염기 편집 사례는 정밀성과 안전성 면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전망: 희귀병 치료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염기 편집과 같은 정밀 유전자 치료 기술은 향후 수백 가지 희귀 유전질환의 근본 치료법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최근엔 체내 직접 편집(in vivo)의 안전성이 입증되면서 간질환, 신경계 질환 등으로 적응증이 확대되고 있다. 다만, 면역반응, 오프타겟(비표적 교정) 등의 윤리적·기술적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는 희귀병 치료에서 ‘맞춤형 유전자 수술’ 시대를 열었다”며, 규제와 비용 장벽을 넘어 대중화가 이뤄질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