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를 자르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배경과 원리
[객원 에디터 3기 / 문시연 기자]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약물치료와 수술로 나눌 수 있는데,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은 이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이러한 유전적인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조금 특별한 방법을 필요로 하는데 이를 유전자치료라고 한다.
기존의 유전자 치료법은 고장 난 유전자를 없애지 않고 정상 유전자만 추가하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헤르페스, 렌티, 아데노 바이러스처럼 사람 세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바이러스에서 병원성을 없앤 뒤 바이러스의 DNA에 필요한 유전자를 삽입하는 방식이다. 매개체로 바이러스를 활용하는 방법은 질병 감염의 우려가 있고 크기가 작아 전달할 수 있는 유전자 수가 적은 단점이 있지만, 유전자 전달 효율이 좋은 장점이 있다. 예컨대 현재 진행 중인 유전자 치료 연구의 약 80%가 바이러스를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새로운 유전자 치료법이 주목받고 있다. 바로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서 잘못된 유전자 자체를 정상으로 교정시켜주는 유전자 교정 기술이다.
유전자 가위는 세포 속 유전자의 특정 염기서열을 인식해서 원하는 부분을 자르고 편집하는 기술을 뜻한다. 유전자 가위는 징크핑거 뉴클레이즈(ZFNs:Zinc Finger Nucleases)인 1세대, 탈렌(TALENs, Transcription Activator-Like Effector Nucleases)이라고 부르는 2세대, 그리고 크리스퍼(CRISPER-CAS9)라고 부르는 3세대가 있다. 가장 최근에 개발된 유전자 가위는 3세대 방식을 수정한 프라임에디팅방식 (CRISPR-CPF1)이다. 3세대의 경우 DNA 이중가닥을 절단 후 적절한 형태로 고치는 방식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4세대 유전자 교정기 같은 경우 DNA 가닥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염기만 직접 교체하는 방식(염기교정)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원리는 박테리아의 면역 체계에서 유래되었다. 박테리아에는 외부에서 침투하는 바이러스를 막기 위한 면역 체계가 존재한다. 바이러스는 CRISPR라고 부르는 반복되는 특정 서열을 가지고 있고 박테리아는 이것을 이용해서 바이러스를 제거한다. 박테리아에서 Cas9 단백질은 특정 염기서열을 인식해서 DNA를 자르는 효소이다. 이 효소는 크리스퍼 가위에서 가위 역할을 담당한다. 세포 내에 존재한 Cas9 단백질이 바이러스의 CRISPR 영역과 결합하여 RNA-단백질 복합체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같은 형태의 바이러스가 박테리아로 침투 시 이 복합체가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을 인식 후 결합, 그리고 절단함으로써 박테리아의 세포를 보호하는 형태이다.
CRISPR-Cas9은 현재 신약 개발과 동식물 생명 공학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중국에서는 이 유전자 가위를 통해서 다양한 유전적 질병과 암 환자 치료를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예컨대 2018년 10월, 중국에서는 에이즈를 초래하는 HIV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유전자 가위를 통해 HIV 수용체에 변이를 유도한 쌍둥이가 출산하였다. 이 연구는 허젠쿠이 교수가 진행하였는데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서 CCR5라는 유전자를 제거하였다. 정상적인 CCR5 유전자는 HIV가 세포에 달라붙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데 이 유전자를 집중적으로 제거한 것이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CCR5가 없으면 독감에 걸릴 위험이 4배나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생명과학에 영향을 미쳤고 새로운 암 치료제 개발에 기여하고 있으며 혈우병 같은 유전질환 치료의 꿈을 현실화할 수 있다. 농업계에서는 식물 연구원들이 곰팡이, 해충, 가뭄을 견디는 농작물을 만들 수 있었으며 선호되는 특성을 가진 가축을 만들면서 전 세계 식량 생산 기능을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적절한 규제와 사회적 합의 없이 인간의 유전자 변형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사용된 것에 대해 많은 과학자가 우려를 표명했다. 따라서 연구 그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고, 삶의 가치를 위한 수단의 자리에서 계속 연구되어 나아갈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