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L 초고속 충전 배터리 개발, 1분 충전으로 800km 주행

<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객원 에디터 9기 / 우성훈 기자 ] 전기차를 타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주행 거리보다 충전 시간이다. 아무리 좋은 차여도, 30분 이상 충전기를 붙잡고 있어야 한다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 특히 급하게 이동해야 할 상황에서는 치명적이다. 반면 휘발유 차량은 3~5분이면 연료를 넣고 바로 출발할 수 있다. 그래서 전기차가 휘발유차를 완전히 대체하려면 충전 속도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왔다. 그런데 최근 중국의 거대 배터리 회사 CATL과 미국 스타트업 SES가 발표한 기술을 보면, 그 ‘미래’가 더 이상 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1분 충전으로 수백 킬로미터를 주행할 수 있는 시대, 그 문이 열리고 있다.

올해 4월 21일, CATL은 상하이 ‘슈퍼 테크 데이’ 행사에서 새로운 배터리를 공개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 배터리는 단 5분 충전으로 무려 520km를 달릴 수 있는 성능을 보여줬고, 최대 주행거리는 800km에 달한다. 이 수치는 경쟁사인 BYD의 ‘5분 충전·400km 주행’보다 훨씬 높은 기록이다. 더 놀라운 건 이 배터리가 12C 속도로 충전되는 LFP 배터리라는 것이다. 12C는 배터리 용량의 12배 속도로 충전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는 지금까지 상용화된 어떤 배터리보다 충전속도가 빠르다. 기존 LFP 배터리는 충전 속도와 에너지 밀도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달랐다. CATL은 초미세 전도성 입자, 지능형 전해질 기술, 전자 흐름을 최적화한 설계 등 여러 혁신적인 기술을 결합해 충전 속도의 한계를 넘어섰다.

이 배터리의 내부 구조를 살펴보면 과학적으로도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균형 잡힌 전자 흐름 기술’은 배터리 셀 내 전자가 지나갈 수 있는 경로를 넓혀 전자 흐름 면적을 두 배로 확장했다. 이를 통해 충전 시 저항과 발열을 줄였고, 전체 충전 과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했다. 또 음극에는 ‘초결정 흑연’이라는 새로운 소재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리튬이온이 흡수되고 방출되는 속도를 극적으로 빠르게 만든다. 덕분에 이 배터리는 30초만 충전해도 75km를 주행할 수 있고, 영하 10도의 추운 날씨에도 15분 만에 80%까지 충전 가능하다는 실험 결과도 나왔다. 이제 주유소에서 기름 넣듯 빠른 충전이 가능해진 것이다. 

한편, 중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초고속 충전에 도전하고 있다. MIT 출신이 창업한 스타트업 SES(SolidEnergy Systems)는 리튬메탈 배터리’를 개발 중인데, 이 배터리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는 훨씬 높고, 양산성도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SES는 현대차, 제너럴모터스, LG, SK 등 세계적인 기업들로부터 수천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이 회사는 2025년 안에 리튬메탈 배터리를 실제 전기차에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SES의 기술 책임자인 손용규 박사는 “우리 배터리는 전고체 수준의 에너지 밀도를 가지고 있지만, 생산은 기존 설비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어 양산성이 훨씬 뛰어나다”라고 말했다.

리튬메탈 배터리는 ‘전고체 배터리’와 자주 비교된다. 전고체는 안전성이나 에너지 밀도 면에서 ‘꿈의 배터리’라고 불리지만, 실제로 만들기 어려워 아직까지는 상용화가 더딘 편이다. 전해질이 고체라서 생산 과정이 복잡하고, 새로운 재료가 많이 들어간다. 반면 리튬메탈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을 쓰면서도 성능은 전고체에 근접하고, 기존 공장을 그대로 쓸 수 있어 생산 비용도 낮출 수 있다. SES는 자사 배터리에 특수 전해액을 쓰고, AI 기술을 접목해 폭발 위험도 줄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미 600mm 크기의 대형 셀을 구현했으며, 내년에는 현대차와 GM에 전기차용 샘플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기술이 단순히 ‘빠른 충전’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CATL은 빠른 충전 속도 외에도 배터리의 수명, 안전성, 에너지 밀도를 유지하려 노력했고, SES는 리튬이온을 대체할 수 있는 대량 생산 가능한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CATL은 나트륨 이온 배터리 브랜드 ‘Naxtra’도 함께 발표했다. 나트륨은 리튬보다 400배 넘게 많고 값도 싸다. 환경 파괴 없이 대량 생산할 수 있으며, 특히 극한 온도에서도 성능이 안정적이라 기후 변화에 잘 견디는 배터리로 주목받고 있다. 이렇게 보면, 전기차 배터리는 단순히 ‘속도’만이 아니라 자원, 환경, 안전성까지 모두 고려한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발전은 전기차의 대중화를 향한 흐름이다.. 충전이 느리고 위험하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전기차를 망설이던 사람들도, 1분 충전으로 800km를 달리는 차가 나온다면 더 이상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연구와 시범 단계인 기술도 많고, 실제 출시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배터리 기술의 발전 속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는 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과학자들이 더 나은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언젠가 “전기차 충전? 그냥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에 끝나”라고 말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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