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4·3의 숨비소리, 역사의 숨결로

메타버스를 활용하여 진행하게 되는 제주 4.3 사건

< 제주4.3평화재단 제공 >

[객원 에디터 3기/김민채 기자]주 4.3 평화재단 사이트에서 4.3 평화공원을 코로나 19로 인해 방문하지 못하는 도민 및 타 지역 분들을 위해 메타버스 기반 온라인 4.3 추모공간을 구축했다고 21일 밝혔다. 메타버스 플랫폼인 게더 타운에 제주 4.3 평화공원, 위패봉안실, 행방불명인 표석 등이 실제와 비슷하게 구축되어 현장이 아닌 온라인에서 경험을 할 수 있다. 제주 4.3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온라인 해설사가 곳곳에 배치되어있으며 온라인 추모객들끼리 화상 채팅으로 소통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메타버스 추모식 이유는 코로나 19 극복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 동참하여 4.3 평화공원 현장 참배를 자제하고 각자 자리에서 추모하기 위해서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운영하는 4.3 종합정보시스템 사이트를 들어가면 온라인으로 쉽게 헌화 참여와 추모글을 남길 수 있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사건의 시발점은 제주도민의 민·관 총파업에 미국은 제주도를 ‘붉은 섬’으로 지목했다. 그들은 ‘빨갱이 사냥’을 한다는 구실로 테러를 일삼아 민심을 자극시켰고, 이는 4·3 사건 발발의 한 요인이 됐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한라산 기슭 오름마다 봉화가 붉게 타오르면서 남로당 제주도위원회가 주도한 무장봉기가 시작되었다. 350명의 무장대는 12개 경찰지서와 서북청년회 등 우익단체 단원의 집을 지목해 습격했다. 이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중산간 마을을 초토화시킨 대대적인 강경 진압작전이 전개되었다. 중산간 지대뿐만 아니라 소개령에 의해 해안마을로 내려간 주민들까지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폭도라 지목당하는 것만으로도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그러나 학살은 군경토벌대만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 무장 대들은 해안마을을 습격하여 경찰가족과 우익인사를 살해했다. 그 와중에 무고한 주민들도 상당수 희생되었다. 복수와 증오심. 복수는 복수를 낳았고 증오는 격한 충돌로 이어져 민간인들의 희생은 극에 달했다.

진상보고서에 의하면, 4·3 사건의 인명 피해는 25,000∼30,000명으로 추정되고, 강경진압작전으로 중산간 마을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으며, 가옥 39,285동이 소각되었다. 4·3 사건진상조사위원회에 신고 접수된 희생자 및 유가족에 대한 심사를 마무리한 결과, 희생자로 14,032명과 희생자에 대한 유족 31,255명이 결정됐다.

진상보고 이후 대한민국은 제주 4.3 사건을 추모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했다. 2003년 10월 31일 진상조사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이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와 토벌대의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국가권력에 의한 대규모 희생이 이루어졌음을 인정하고,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였다. 또한 제주 4·3 사건에 대한 공동체적 보상의 일환으로 4·3평화공원조성사업이 진행되었고, 2008년 3월 28일 제주시 봉개동에서 4·3 평화공원이 개관하였다. 2014년 ‘4·3 희생자 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며 추모와 참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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