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 간의 이식 성공, 그러나 커지는 윤리적 문제
돼지 심장 이어 콩팥도 인체 이식 성공
장기 이식 대기자 명단의 끝낼 수 있는 희망
한편 이식자의 과거와 커지는 동물권 논쟁
[위즈덤 아고라 / 임서연 기자] 유전자 변형 돼지의 심장에 이어 콩팥(신장)을 인간 체내 이식하는 수술이 처음으로 성공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미국 앨라배마주립대 버밍엄캠퍼스(UAB) 의료진은 20일, <미국이식학회저널>에 발표된 논문을 통해 지난 9월 오토바이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57세 남성 짐 파슨스의 양쪽 콩팥을 제거하고 유전자 조작 돼지의 콩팥을 성공적으로 이식했다고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이식된 돼지 콩팥은 23분 뒤부터 소변을 만들기 시작했고, 3일간 정상적으로 기능했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돼지 콩팥에 대한 인체 거부반응은 없었으며 인체에 전염 가능한 돼지 레트로 바이러스에도 감염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전자 변형 돼지의 콩팥을 사람에게 이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9월 뉴욕대 랭곤의대 의료진은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뇌사자에게 유전자 변형 돼지의 콩팥을 이식했다. 하지만 체내 이식이 아니라 콩팥을 환자의 허벅지에 붙인 체외 이식이었다. 당시에는 그런 상태에서 54시간 동안 콩팥이 제 기능을 하는 것을 확인했다. 랭곤의대 의료진은 이에 힘입어 지난해 11월에도 뇌사 상태에 빠진 다른 환자에게 돼지 신장 체외 이식에 성공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유전자 변형 돼지의 심장을 살아있는 사람에게 이식한 사례도 있다. 10일, 영국 매체 외신은 미국 메릴랜드대 의대와 의료센터 연구진이 시한부 심장질환 환자인 데이비드 베넷(David Bennett, 57)에게 돼지 심장을 성공적으로 이식했다고 보도했다.
메릴랜드대 심장 이종이식 프로그램의 과학 책임자인 무하마드 모히우딘 교수는 “수술 후 12일이 지난 현재 베넷의 상황은 계속 좋아지고 있다”면서 “1960년대 자동차에 BMW 엔진이 장착된 것에 비견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동물 장기 이식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즉각적인 거부반응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 주요한 점이다. 수술을 집도한 바틀리 그리피스 박사는 “이번 수술이 장기가 부족해 이식받지 못하고 있는 대기자 명단을 끝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라고 낙관했다.
실제로 이식용 장기는 기증에 의존하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50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말기 신장병을 앓고 있으며 투석에 의존하고 있다. 장기 이식은 신장 기능부전의 가장 좋은 치료법이다. 하지만 기증되는 장기가 너무 부족하다. 2021년 여름 기준 미국 내 신장 이식 수술 대기자는 9만 명으로 신장이식은 매년 2망 5000건 미만만 이뤄진다. 그러다 보니 대기자 명단에 있는 사람이 매일 12명 이상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인간에게 이식하기에 적합한 돼지의 장기를 기르기 위해 노력해왔고, 최근 복제와 유전공학 같은 신기술들이 그 비전을 현실에 더 가깝게 만들었다. 3개 의료기관의 돼지 장기는 모두 미국 제약사 ‘유나이티드 테라퓨틱스’의 자회사인 ‘리바이빅터’가 키운 유전자 변형 돼지에게서 나온 것이다. 리비아빅터는 UAB의 돼지 신장 이식 연구자금을 지원했으며 논문 저자 중 4명도 이 회사 소속 연구원이다.
한편, 유전자 변형 돼지의 심장을 이식받은 데이비드 베넷의 과거사가 밝혀지면서 윤리적 논란이 커졌다.
베넷은 1988년, 고교 동창인 에드워드 슈메이커를 흉기로 9차례 찔러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이 사고로 슈메이커는 장애인이 됐고, 19년간 휠체어로 생활을 하다 2007년 숨졌다. 슈메이커의 가족은 베넷을 상대로 치료비 등 위자료 소송을 제기해 340만 달려 (약 40억 원) 배상 판결을 받았지만, 단 한 푼도 받지 못한 상태이다.
슈메이커의 가족은 “그는 새 심장으로 새 삶의 기회를 얻었지만 내 동생은 그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 심장은 자격 있는 사람에게 갔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흉악범에게 새로운 기술로 새 삶을 살 기회를 주는 게 맞느냐’는 의견과 ‘의료인은 죄인과 성인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반대 의견으로 논쟁이 있다.
베넷의 과거사뿐만 아니라 장기를 제공한 동물을 어떻게 대우할 것인지에 대한 윤리 또한 고민해 볼 대목이다. 영국 BBC에 따르면 국제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는 “동물은 필요한 것을 꺼내 쓰는 도구 창고가 아니라 복잡하고 지능을 갖춘 존재”라며 이번 수술에 대해 “비윤리적이며 자원 낭비 행위”라고 비난했다.
인간 장기이식의 윤리기준을 봤을 때, 이종 간 장기이식에서는 ‘기증자의 자발성’이 중대한 결격사유이다. 서울대 수의과대학 천명선 교수는 “장기이식의 자발성은 ‘기증자가 도구로써 쓰이지 않는다’는 생명 자체에 대한 존중이 보장되는 차원의 윤리기준”이라며 “동물에게는 이 자발성이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을 볼 때 ‘동물을 도구로 생각한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