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은 누구의 책임인가
by Seokhyun Jang 2006
8월 15일,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한 후 국제사회에 재집권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탈레반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수립하고, 국제사회와 소통할 것이라고 했지만 20년 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을 때의 공포스러운 상황을 기억하는 시민들은 앞다퉈 탈출을 감행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의 희생이 발생하였고, 더군다나 미군 철수 과정에서 IS-K의 폭탄테러로 200여 명이 사망한데이어 10월 15일에도 탈레반의 거점인 칸다하르의 비비파티마 사원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해 40명 이상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IS 아프간 지부인 IS 호라 산(IS-K)은 이번 테러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이 일대의 정치적 혼란과 테러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탈레반은 1994년 아프가니스탄의 다수민족인 파슈툰 족으로 구성된 조직으로 ‘이슬람 율법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라는 뜻이다. 이들의 목표는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해 샤리아 율법을 적용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국제 사회가 크게 우려하는 문제는 바로 여성 인권탄압이다. 샤리아 율법은 실제 적용 가능한 ‘법전’이라기보다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교훈’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슬람권 국가들은 이를 헌법의 근원으로만 사용했을 뿐, 실제 법전으로 쓴 적은 없었다. 만약 사용되더라도, 정해진 규칙이 없기 때문에, 해당 국가의 율법학자들과 정치인들이 해석하기 나름이다. 샤리아 율법의 한 조항은, “여성이 상속의 절반을 차지할 수 있다”라고 적혀있고, 이 율법은 7세기경에 만들어졌다. 해당 시기가 신분사회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굉장히 개혁적이었다고 볼 수 있지만, 탈레반은 이 조항을 극단적으로 확대 해석해, 여성의 지적 수준에 적용하며 “여성의 지적 수준이 남성의 절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아프간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남성과의 동등한 위치를 갖지 못하게 되었고, 교육과 사회생활에서 불이익을 당했고, 외출 시 남성과 함께 해야 하며 온 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입어야 했다. 그렇기 않으면 태형을 당하거나 심하면 목숨까지 잃는 일이 발생하였다.
미국과 탈레반의 악연은 2001년 9.11 테러부터 시작되었다. 2001년 9월 11일,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가 미국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와 워싱턴 근교 국방부 청사에 돌진해 3천 명의 목숨을 잃은 테러가 발생하였다. 미국은 바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테러를 주도한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해 당시 아프가니스탄을 집권하고 있던 탈레반에 요청을 했지만 이를 거절하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게 되었다. 탈레반은 미국의 침공에 견디지를 못해 결국 정권 붕괴가 됐고 동부 파키스탄 접경지대로 피신했다. 이후, 현재까지 미국은 탈레반 전체를 축출하려 했지만 탈레반의 기반인 파슈툰족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걸쳐 거주하면서 세력을 유지했다. 미국은 20년간 엄청난 예산을 투자했지만 의미 없는 시간이 흐르면서 2021년 철수를 결정했고, 탈레반은 8월 15일 수도 카불을 점령하였다.
미군은 아프간 정부군을 양성하였기 때문에, 철군 이후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하는데 적어도 18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단 10일 만에 수도 카불이 함락당했다. 전문가들은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파슈툰 왈리’를 꼽았다. 파슈툰족은 서로를 ‘무조건’ 돕는 관습이 존재하는데, 미군의 철군 이후, 저항 없이 투항한 정부군들 대부분은 이 관습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군 간부들은 사병들의 급료를 빼앗는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이름만 존재하는 유령 군인까지 만들어 병력 수를 거짓으로 부풀려 기재하였다. 또한, 가니 대통령을 포함한 200명의 주요 아프간 정치인들은 탈레반 점령 소식 직후, 가장 먼저 탈출한 인물들로 알려졌다. 파키스탄에 거주 중인 수많은 파슈툰 족은 끊임없이 탈레반을 양성하는 주둔지 역할을 했고, 지형학적 특징으로 게릴라전이 강한 탈레반에 미국이 20년간 양성한 정규군은 힘없이 무너졌다.
미국을 침공한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 조직이나 탈레반은 미국이 키운 것이나 다름없다. 소련과의 냉전 시절, 1979년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직접 다스리기 위해 침공했고, 이를 막기 위해 무자헤딘 운동이 벌어졌다. 좁게는 아프가니스탄, 넓게는 이슬람 반정부단체라는 의미를 가진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을 되찾기 위해 소련을 공격했다. 이때 미국은 전면전을 피하고 소련과 대리전을 하기 위해 무자헤딘에 자금과 무기를 지원했고, ‘자유의 전사’라는 이름으로 세력을 키우는데 앞장섰다. 소련은 10년간 전쟁을 치르다 1989년 퇴각을 했고, 이후 아프가니스탄 내전이 발발한다. 이 과정에서 탈레반이 설립되었고 오사마 빈 라덴도 당시 무자헤딘을 이끌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현재 탈레반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슬람 율법에 한해서’ 여성에게 모든 권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하고는 있지만, 현대 사회의 기준에서는 굉장히 보수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더군다나, 미국의 9.11 테러를 일으켰던 알 카에다는 탈레반을 ‘형제 단체’로 칭하며, 두 조직 모두 국제적인 테러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7월 26일, 카불 공항에서 탈레반과 난민들을 향한 자살폭탄테러가 일어났다. 정권교체의 혼란을 틈타, 자신들의 세력 확장을 위해 그 실체를 드러낸 IS의 극단주의 분파 조직인 IS-호라산이 자처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틀 후, 미국은 이 폭탄테러를 일으킨 호라산의 주범자를 찾아 트론 공격을 진행했다. 미국은 그 어떤 민간인의 피해도 입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약 15명의 사상자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그동안 미군의 공습에 의한 민간인 사상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였고, 그 숫자가 3만 명을 넘으면서 중동지역에서는 탈레반이나 미국이 뭐가 다르냐는 냉소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강대국들의 탐욕으로 잦은 침략을 받았던 아프가니스탄의 빈곤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탈레반은 양귀비 생산을 막고 건전한 경제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했지만 절대빈곤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를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실제 20년 전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했을 당시 아프간의 주력 산업인 농업을 이용해 양귀비 생산을 허용했고, 정부 자금을 마련했다. 현재 탈레반의 인권탄압으로 인해 세계 각국의 원조가 중단된 것은 물론이고, IMF와 세계은행 또한 아프간에 대한 대출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심각한 재정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이 탈레반과 아프가니스탄의 무능력이 만든 결과인지 국제사회는 스스로 돌아봐야 할 것이다. 과연 냉전시대와 테러와의 전쟁에서 아프가니스탄의 희생을 강요하는데 동참하지 않은 국가들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국제사회가 아프가니스탄의 아픔을 모른 체하고 돕지 않는다면 양귀비는 확산이 될 것이고, 이는 전 세계의 위협이 될 것이다. 또한, 탈레반이 테러 조직인만큼, 탈레반과 깊은 연결이 있는 다른 테러 조직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시키기 위해 더욱 큰 테러에 가담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 문제는 그들만이 해결할 수도, 그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많은 국가들이 현재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