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에 “건물 이름 영문으로 써 봐라”…’서울대 갑질’ 폭로
직장 내 갑질, 군대식 업무 지시, 힘든 노동 강도… 극심한 스트레스
서울대, “직무교육의 일환… 갑질은 없었다”
“근로자들 건강을 챙기며 노사 협력 대우받는 직장 필요”
[위즈덤 아고라 / 우연주 기자] 서울대 관악 학생생활관에서 일하던 청소노동자 59살 이 모 씨가 휴게실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더군다나 사망 후 해당 노동자가 서울대 안전관리팀 관리자로부터 업무와 상관없는 영어·한자 시험을 강요받고 점수 공개를 하는 등의 모욕을 받은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공분이 일고 있다.
2019년 서울대 청소노동자로 입사한 이 씨는 여학생 기숙사 925동을 혼자 담당했다. 토요일이었던 사망 당일, 오전 8시에 출근해 쓰레기 수거 및 기숙사 청소 등의 업무를 했고 오전 11시 48분께 딸과 통화가 마지막이었다.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은 서울대가 청소 노동자들에게 시험을 보게 하는 등 직장 내 갑질이 있었으며 지난달 군대식 업무 지시를 받아 힘든 노동으로 이 씨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청소 노동자 시험에는 속해 있는 조직의 명칭을 한문과 영문으로 쓰는 문제가 있었고, 심지어 자신이 청소하는 기숙사의 준공 연도는 물론 수용 인원도 적으라는 내용이 있었다. 마지막 항목에는 ‘점수는 근무성적평가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라는 문구가 담겼다.
또한, ‘청소노동자들의 근무기강을 바로잡는다’면서 매주 수요일 청소노동자 회의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남성 노동자에게는 ‘정장 또는 남방에 멋진 구두를 신고 올 것’을, 여성노동자들에게는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참석할 것’을 강요했다.
이는 청소노동자 업무와 관계가 없어 심각한 모욕감을 줄 수 있는 행위이며 숨진 채 발견된 A 씨의 경우 시험 성적은 잘 받았지만 일부 청소노동자들이 서로 커닝을 하고 답을 몰라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서울대 기숙사 측은 직무교육의 일환이었다고 해명하며 갑질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이 모 씨가 일하던 기숙사 건물에서 100L 쓰레기봉투가 하루에 7개씩 나온다는 노조의 주장과 달리, 실제로는 하루 평균 2개 정도 나온다.”라고 주장했으며 “고인은 문제의 그 ‘필기시험’에서도 1등을 했고, ‘드레스코드’ 조치에 대해서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라고 발언했다.
서울대 측은 노동자의 업무 강도가 높지 않다고 했지만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건물을 오르내리면서 올해 들어서만 1톤가량의 쓰레기를 혼자 치우던 ㅇ씨가 결코 쉬운 업무를 하고 있었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한 서울대 교수는 “제품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를 독려하는 것이 갑질이고, 직원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게 하는 것도 갑질이라면, 그리고 업무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갑질이라면 도대체 사용자 행위 중에 갑질이 아닌 행위가 뭐가 있을까.”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제기됨에 따라 대학 측에 관련 필요 조치를 지도해왔으며, 이후 사안의 중요성, 대학 측의 조사상황 등을 고려하여 관할 지방노동관서는 사실 확인 등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 씨의 남편은 “코로나19로 학생들의 배달음식 주문이 늘면서 쓰레기의 양도 늘었지만 학교는 어떤 조치도 없이 군대식으로 노동자들을 관리했다”며 “제 아내의 동료들이 이런 기막힌 환경에서 일을 해야 한다면, 출근하는 가족의 뒷모습이 마지막이 돼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일로 그 어느 누구도 퇴직당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라며 “학교는 근로자들의 건강을 챙기고 노사 협력으로 대우받는 직장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