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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의 국민 화가, 피로스마니

백만송이 장미 순애보의 주인공, 화가 피로스마니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 러시아 원곡 가사의 주인공

<제목: 여배우 마르가리타 (피로스마니 작품)>

“한 화가가 살았네 홀로 살고 있었지

작은 집과 캔버스를 가지고 있었네

그러나 그는 꽃을 사랑하는 여배우를 사랑했다네

그래서 자신의 집을 팔고, 자신의 그림과 피도 팔아

그 돈으로 완전한 장미의 바다를 샀다네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붉은 장미

창가에서 창가에서 창가에서 그대가 보겠지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누군가가 그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꽃으로 바꿔놓았다오

아침에 그대가 창문 앞에 서 있으면 정신이 이상해질지도 몰라

마치 꿈의 연장인 것처럼 광장이 꽃으로 넘쳐날 테니까

정신을 차리면 궁금해 하겠지 어떤 부호가 여기다 꽃을 두었을까 하고

창 밑에는 가난한 화가가 숨도 멈춘 채 서 있는데 말이야

만남은 너무 짧았고 밤이 되자 기차가 그녀를 멀리 데려가 버렸지

하지만 그녀의 인생에는 넋을 빼앗길 듯한 장미의 노래가 함께 했다네

화가는 혼자서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삶에도 꽃으로 가득 찬 광장이 함께 했다네”

-시: 보즈네센스키


[객원에디터 1기/ 전윤 기자] 우리나라의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는 가수 심수봉의 대표곡 <백만송이 장미>는 외국곡을 번안한 곡으로 원곡은 1981년 라트비아 가수가 발표한 노래인<마라가 준 인생>이다. 원곡의 가사는 그 당시 소련의 치하에 놓여있던 조국 라트비아에 관한 다소 침울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여배우를 사랑하여 모든 것을 내어줬던 조지아의 가난한 화가인 피로스마니의 이야기를 담은 보즈넨세스키의 시를 1982년 소련의 유명 가수인 알라 푸가쵸바가 라트비아 원곡의 멜로디에 불러 전 세계적으로 대중에 크게 알려졌다.

니코 피로스마니(Niko Pirosmani, 1862-1918)는 그루지아(조지아의 옛 이름)의 작은 마을 미르자니(Mirzaani)지역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나이 8살에 고아가 되었다. 그 후 트빌리시로 옮겨 부유한 집안의 종으로 일하면서 미술 공부는커녕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지만,미술에 소질이 있던 그는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하였고그의 그림에는화려함보다는 단촐하고 원초적인 그림이 반영되어 있다. 성인이 된 후 철도노동자, 잡역부, 상점 간판 그리기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그림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는 어느 날 마을을 방문한 프랑스 여배우 마르가리타에게 첫눈에 반했고,변변치 않았던 집과 그림, 심지어 자신의 피까지 팔아 엄청난 양의 장미꽃을 사서 그녀가 지내고 있던 집 앞을 가득 메웠다. 그 꽃길을 배경으로 프로포즈하게 되고 결국 결실을 보게 되는 듯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여배우는 마을을 떠났고 피로스마니는 삶의 의욕을 잃은 채, 극도의 빈곤과 결핍에 시달리다 5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이러한 그의 순애보적 사랑 이야기를 담은 노래가 바로 <백만송이 장미>인 것이다.

가난한 무명 화가에서 조지아 국민 화가로

피로스마니의 그림에는 가게점원, 관리인, 행상인들, 철도노동자, 농부, 술집여자, 짐꾼들, 부상당한 병사 등 수 많은 인물군상이 등장한다. 또한 상점의 간판이나 초상화, 동물 그림이 많다. 대부분 상점 간판 주문이나 초상화 의뢰를 받고 그린 것 들인데 대부분 생계수단으로 그려진 작품이며, 궁색했던 그의 생활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대체적으로 초상화의 배경이 검정색이나 빨간색 등 단일한 색으로 처리되었는데 제한된 색채와 색체의 다양성,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표현과 과감한 배경의 생략 등 이전까지의 그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그의 화풍은 후에 원초주의 화풍과도 맥이 닿으며 후대의 피카소를 비롯하여 많은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실제로 피카소는 1972년 피로스마니의 초상화를 그려 헌정했다. 

<제목: 니코 피로스마니 (피카소 작품)>

하지만 피로스마니는 그 시대 조지아 미술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가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것을 두고 ‘학교나 먼저 다니고 오라’ ‘수준 낮은 간판쟁이 그림’이라고 멸시하고 조롱하였다. 그의 그림은 어린아이나 미술 학원생 수준의 그림으로 치부되었다. 당대 기득권으로 똘똘 뭉친 미술계에서 조롱과 멸시를 받던 피로스마니의 작품은 사후에서나 비로소 제대로 인정을 받았으며, 현재, 조지아 민중의 삶과 영혼을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재평가 받으며 조지아의 대표적 국민화가로 여겨지고 있다.

<출처: https://agenda.ge/

그의 작품들은 조지아 국내 뿐 만 아니라 해외의 여러 도시, 비엔나의 Albertina 박물관, 뒤셀도르프의 Kunstsammlung Nordrhein-Westfalen 박물관, 에스토니아 탈린의 Mikkeli 박물관 등에서 꾸준히 소개되어 왔으며, 2018년 11월에는 그의 작품인 ‘Georgian Woman Wearing a Lechaki’ 가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20세기 초기 화가의 작품으로는 최고가인 223백만 파운드 (한화 약 35억)에 팔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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