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잇는 두 물길: 한강과 보스포러스 해협

<일러스트 에디터 본인 제공>

[객원 에디터 12기 / 윤석준 기자] 이스탄불의 거리를 걸으며,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풍경을 보니, 해안가에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길을 빠져나오니, 보스포러스 해협이 눈앞에 펼쳐졌다. 새파란 물길 옆을 걸으며, 바닷가에서 낚시하는 사람들과 운동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 벤치에 앉아서 이스탄불을 가로지르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 순간,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보스포러스가 이스탄불을 나누듯이, 서울은 한강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다. 한강은 서울의 남과 북을 나누고, 보스포러스는 이스탄불의 동과 서, 그리고 유럽 대륙과 아시아 대륙을 나누는 매우 중요한 장소들이다. 한강은 양옆에 높은 건물들이 세워져 있어 아주 현대적인 도시의 풍경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이스탄불은 보스포러스의 양옆이 해안도로 옆에 있는 상점들과 유적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두 도시를 가르는 거대한 물길이라는 점은 같지만, 왜 한강과 보스포루스 주변에는 서로 다른 도시 풍경과 생활 방식이 만들어졌을까?

이스탄불의 해안가 옆을 걷다보면 아주 큰 다리가 보인다. 이 다리의 이름은 파티흐 술탄 메흐메트교이다. 유럽 지구와 아시아 지구를 잇는 두번째 다리이다. 이스탄불에는 총 3개의 다리가 있다. 서울 한강에서는 반포 한강 공원을 걸으면 반포대교와 함께 양 옆으로 수놓아진 다리들을 볼 수 있다. 서울의 한강을 건너는 다리는 약 30개이다. 왜 도시를 가르는 물길이라는 점은 같아도, 다리의 개수가 다를까? 처음에는 단순히 두 물길의 길이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찾아보니, 길이의 차이뿐 아니라 선박 교통과 도시가 발전해 온 방식도 함께 작용하고 있었다.

두 물길의 이름에서부터 한가지의 매우 중요한 차이를 볼 수 있다. 한강은 강이고, 보스포러스는 해협, 그러니까 바다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단지 바다와 강이라는 점 이외에도 많은 차이가 있다. 한강의 물은 남한강과 북한강 각각의 발원지 (강물이 처음 흐르기 시작하는 곳) 에서 시작된다. 두 발원지에서부터 강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한강에서는 중력이 물의 흐름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힘이다. 하지만 해협인 보스포러스는 그렇게 단순하게 물이 흐르지 않는다. 보스포러스는 흑해와 마르마라해, 두개의 바다를 이어주는 하나의 강만큼 좁은 물길이다. 두 바다의 염분 농도(바닷물의 소금의 농도)에 따른 밀도 차이 때문에 수면 가까이에서는 흑해의 물이 마르마라해 방향으로 흐르고, 깊은 곳에서는 더 짜고 무거운 물이 반대 방향으로 이동한다. 

두 물길은 크기와 형태에서도 차이가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은 수심이 약 30~110m에 이를 만큼 깊다. 반면 서울을 지나는 한강의 수심은 약 3~10m 수준이다. 이 차이는 다리를 놓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한강에는 강 안에 여러 개의 교각을 세워 비교적 짧은 구간을 반복해서 연결하는 다리가 많은 반면, 보스포루스는 수심이 깊고 대형 선박이 오가는 국제 항로이기 때문에 해협 중앙에 기둥을 세우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주요 다리는 양쪽 육지에 주탑을 세우고, 중앙의 1km가 넘는 구간을 한 번에 건너는 현수교 방식으로 건설되었다.

해안가에서 앉아 있던 곳에서 일어나 유럽 지구에서 아시아 지구로 이동하기 위해 페리 선착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스탄불에서 페리는 단순한 관광수단이 아니라 보스포루스를 건너는 일상적인 대중교통수단이다. 이러한 수상교통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19세기 중반부터 오늘날의 페리로 이어지는 이 교통망은 지금도 유럽과 아시아 양쪽의 선착장을 연결하고 있다. 반면 자동차로 두 대륙을 직접 연결하는 첫 보스포러스 대교는 1973년에야 개통되었고, 해협 아래를 지나는 유일한 철도는 2013년에나 개통되었다. 이 때문에 다리와 철도가 발전한 오늘날에도 페리는 여전히 이스탄불의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남아 있다.

서울의 한강공원을 걷다 보면 풍경은 조금 다르다. 강 위로는 자동차와 지하철이 끊임없이 다리를 건너지만, 한강 위를 배를 타고 출퇴근하는 모습은 흔하지 않다. 하지만 서울도 처음부터 다리 중심의 도시였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까지 한강의 나루와 포구는 사람과 물자를 옮기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었지만, 1900년 한강철교와 1917년 한강대교가 건설되면서 한강을 건너는 중심 수단이 배에서 철도와 도로로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1960~80년대 서울이 한강 남쪽으로 빠르게 확장되면서 한남대교, 잠실대교, 영동대교 등 새로운 다리가 잇따라 건설되었고, 지하철 역시 한강을 넘어 도시의 남과 북을 더욱 촘촘하게 연결했다. 

결국 두 도시 모두 처음에는 물길 자체를 교통로로 이용했지만 이후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 서울에서는 수많은 다리와 지하철이 한강을 빠르게 건너도록 만들면서 수상교통의 역할이 줄어든 반면, 이스탄불에서는 다리와 철도가 생긴 이후에도 페리가 보스포루스를 직접 가로지르는 생활 교통수단으로 남아 있다. 같은 물길이 도시를 두 부분으로 나누고 있지만, 이를 연결하기 위해 발전한 교통 방식에는 서로 다른 도시의 역사와 지리적 특징이 담겨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스탄불의 역사적 중심지를 방문했다. 아야 소피아와 톱카프 궁전 등이 자리한 이스탄불의 술탄아흐멧 (Sultan Ahmet) 지역은 동쪽으로 보스포루스, 그리고 남쪽으로 마르마라해와 맞닿아 있다. 이러한 지형은 이스탄불이 오랫동안 바다와 가까운 곳을 중심으로 발전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이후 도시가 성장하면서 중심지는 보스포루스를 따라 북쪽으로도 확장되었다. 실제로 19세기 중반에는 오스만 제국의 행정 중심이 역사반도의 톱카프 궁전에서 보스포루스 바로 옆에 세워진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옮겨졌고, 탁심 광장 일대도 새로운 상업·문화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이스탄불에서는 도시의 중심이 변화하고 확장되는 과정에서도 바다와 보스포루스가 계속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이다.

서울의 역사적 중심지는 조선의 궁궐들이 밀집한 오늘날의 종로구와 중구 주변에 형성되었다. 광화문광장을 걸으면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세종대왕·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볼 수 있지만, 그 주변에는 현대적인 고층 건물들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 저녁에 이곳을 걸었을 때에는 낮에 보았던 역사적인 모습과 달리 건물과 거리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빛 때문에 현대적인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스탄불과 달리 조선시대 서울의 중심은 한강변이 아니라 산으로 둘러싸인 한양도성 안에 형성되었다. 한강은 도심에서 떨어져 있었지만 전국의 물자를 수도로 운반하는 중요한 수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서울의 모습도 크게 달라졌다. 1970년대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서울의 시가지는 한강 남쪽으로 빠르게 확대되었다. 과거에는 도시의 남쪽 경계에 가까웠던 한강이 이제는 강북과 강남이라는 거대한 두 생활권 사이에 놓인 도시의 중심축으로 바뀐 것이다.

처음 보스포러스에 앉았을때는, 눈앞의 물길이 단순히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경계처럼 보였다. 하지만 직접 걸어보고 페리를 타며 두 도시를 비교해보니, 보스포루스와 한강은 도시를 나누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물의 흐름과 지형은 사람들이 강과 해협을 건너는 방법을 바꿨고, 다리와 페리 같은 교통수단의 발전과 도시가 성장하는 방향에도 영향을 주었다. 서울에서 한강을 건널 때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지하철이나 다리를 이용했지만, 이제는 그 익숙한 풍경 역시 서울이 한강과 함께 변화해온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보스포루스를 지나가는 페리를 바라보며, 도시를 가르는 물길은 동시에 그 도시를 연결하고 만들어온 길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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