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에서 산업과 정치까지, AI를 둘러싼 상반되는 흐름
< Illustration by Yujin Jeon 2007(전유진) >
[객원 에디터 11기 / 이채원 기자] 지난 7월, 일본에서 한 고등학생이 인공지능을 활용해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서비스를 해킹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도쿄 경찰은 이 학생이 반다이남코 필름웍스가 운영하는 ‘반다이 채널’ 서버의 취약점을 이용해 대량의 회원 구독을 강제로 취소한 혐의로 기소되었다고 전했다. 이 공격으로 약 4만 6812건의 구독이 취소되었고, 서비스는 한 달 넘게 정상 운영에 차질을 빚었다. 반다이남코는 이 사건으로 최대 136만 명의 회원 정보가 유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지만 비밀번호와 신용카드 번호는 유출되지 않았고, 아직까지는 외부에 퍼졌다는 정황은 없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에서 학생은 서버의 취약점을 스스로 찾아낸 뒤, 공격에 쓸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 ChatGPT(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당국은 이 학생이 ChatGPT를 통해 코드를 작성하고 수정하면서 공격 프로그램을 더 정교하게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주목할 것은 AI가 스스로 해킹을 한 것은 아니지만 기존에 있던 범죄 수법에 더해지며, 해킹의 문턱을 낮췄다는 것이다.
AI가 범죄에 악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 중국계 그룹들이 피싱 문구 작성, 악성 코드 수정, 사기 행위 등에 AI를 활용한 사례가 다수 확인되었다. AI의 코드를 짜거나 문장을 다듬는 기능은 평범한 업무에도 주로 쓰이지만, 동일한 기능이 범죄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어 기술 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도 AI의 도움을 받아 예전보다 더 쉽게 공격 도구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한편으로 AI는 산업과 자본시장에서 거대한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AI 데이터센터 확대로 늘어난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수요를 타고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다. 이번 상장으로 조달한 금액은 256억 달러로, 외국 기업이 미국에서 성사시킨 상장 중 역대 최대 규모이다. SK하이닉스는 세계 최대 AI 서비스 업체에 반도체를 납품하고 있으며, 이번 자금 조달은 앞으로 몇 년간 이어질 AI 인프라 투자를 위한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에서도 최근 AI를 둘러싼 정치적 움직임이 생기고 있다. 에드워드 마키 민주당 상원의원은 지난 10일 ‘AI 책임 의제’라는 이름으로 여러 법안들을 공개했다. 이 법안들은 AI 데이터센터가 쓰는 막대한 전력과 그로 인한 비용, 직장 내 AI 감시, 알고리즘에 담긴 편향, AI가 노동자의 판단을 대체하는 문제, AI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까지 다루고 있다. 마키 의원은 AI 혁명을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 맞서 개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10대 학생이 AI를 활용해 회사 서버를 공격했고, 한국 기업에서는 AI 수요를 등에 업고 역대급 상장에 성공했으며, 미국 정치권에서는 AI와 관련된 법안을 내놓으며 여론이 흔들리고 있다. 같은 기술이 범죄 도구가 되기도 하고, 산업 성장의 엔진이 되기도 하며, 정치적 규제 대상이 되기도 한다. 도움이 되기도 하는 동시에 해가 되기도 하는 상황은 AI가 우리의 사회에 밀접하게 들어온 현실을 보여준다. 이제 사회는 AI 기술의 발전 가능성을 평가하는 것을 넘어, 누가 그 결과를 감당할 것인지를 묻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