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llustration by Eunho Lee 2009(이은호) >
[객원 에디터 11기 / 허지유 기자] 넷플릭스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은 반경 10미터 안에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알람이 울리는 알고리즘 시스템 ‘좋알람’이 출시된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드라마 속 청소년들은 자신의 마음을 말로 고백하는 대신, 액정 화면의 신호에 의존해 서로의 관계를 확인한다. 시스템이 마음의 영역을 계산해 주는 편리함 이면에는 ‘기술이 우리 관계를 통제할 때 생기는 씁쓸함’이 투영되어 있다.
기성세대는 오늘날 청소년들의 미디어 이용 행태를 단순한 과몰입이나 중독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으나, 전문가들은 이것이 단순히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 인한 중독 증상과는 구별된다고 분석한다. 스마트폰은 청소년들에게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소통하기 위한 필수적인 인프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청소년들의 고뇌는 전 세계와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역설적으로 알고리즘이 구성한 맞춤형 환경 안에서만 관계를 맺는 ‘동기화된 세계화’ 현상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예를 들어, 서울과 뉴욕의 고등학생이 각자의 방에서 해외 아이돌, 게임, 패션 등의 숏폼을 실시간으로 소비하며 지구촌의 연결감을 느끼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이 선별해 준 비슷한 관심사와 의견 안에서만 관계가 형성되는 현상이 바로 동기화된 세계화의 단면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 고유의 사유와 감정이 데이터 시스템에 과도하게 종속되는 것에 우려를 나타내는 현상, 즉 ‘알고포비아(Algo-phobia)’가 새로운 사회적 담론으로 부각되고 있다.
관계의 알고리즘화와 ‘필터 버블’의 그늘
알고포비아의 학술적 근원은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이 인간의 선호도와 정서적 방향성을 예측하고 분류하는 메커니즘에서 출발한다.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피드 체류 시간, 반응 빈도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맞춤형 관계와 콘텐츠를 공급한다.
청소년들은 자유로운 네트워크 속에서 폭넓은 소통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이 선별한 정보와 관계 속에서 세상을 바라볼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SNS에서 특정 주제에 반복적으로 반응할 경우 사용자는 비슷한 관점의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추천받게 되며, 결과적으로 다른 관점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인터넷 활동가 일라이 파리저(Eli Pariser)가 제시한 ‘필터 버블(Filter Bubble)’ 개념과 직결된다.
내가 선호할 만한 취향과 나와 의견이 비슷한 사람들의 울타리 안에서만 관계를 바라보게 되는 이 시스템은, 정교하게 맞춤화된 영역에 고착될 수 있다는 정서적 폐쇄감을 안긴다. 데이터 알고리즘의 틀 안에서 세상의 한 단면만을 소비하게 되는 ‘동기화된 세계화’의 한계 속에서, 청소년들은 주체적인 소통이 아닌 시스템이 필터링해 준 관계 속에 머무는 씁쓸함을 경험하게 된다.
감정의 ‘자동 완성’과 데이터 자아의 혼란
청소년들은 알고리즘 시스템이 개인의 취향을 넘어 일상의 감정 상태와 소통의 타이밍까지 예측하고 있음을 체감할 때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A양(17)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기술과의 동기화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친구 관계나 학업 문제로 고민할 때, 메신저나 소셜 미디어 피드에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글귀나 위로 영상이 연속으로 뜰 때가 있어요. 내 마음을 잘 맞춰줘서 편리하기도 하지만, ‘내 감정의 타이밍까지 데이터로 계산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서늘해져요.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진짜 내 주체적인 마음인지, 알고리즘이 타이밍에 맞춰 추천해 준 감정인지 경계가 모호해지니까요.”
스마트폰의 메시지 입력창이 다음 단어를 미리 예측해 제시하는 ‘자동 완성’ 기능처럼, 관계와 감정의 방향성을 알고리즘이 먼저 제안하는 환경은 데이터 자아와 실제 자아 사이에서 주체성 혼란을 겪게 만드는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철학자 한병철이 지적한 현대 사회의 내면 데이터화 징후처럼, 개인의 사유와 관계가 플랫폼 시스템에 의해 정형화되고 있다는 메커니즘적 불안이 알고포비아의 기저에 자리 잡고 있다.
표준화된 시스템 속 ‘주체적 의도(Intent)’의 조율
알고리즘의 고도화는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타인과 소통하고 나만의 생각을 정립하는 과정에서도 뚜렷하게 관찰된다. 생성형 AI와 알고리즘의 결합은 대중이 가장 선호할 만한 매끄러운 표준 결과물(What)을 지속적으로 제시한다. 이로 인해 대화를 나누거나 과제를 수행할 때, 청소년들은 스스로 정립하려 했던 거칠고 독창적인 ‘주체적 의도(Intent)’를 기술적 정답에 맞추어 수정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알고리즘이 선호하는 양식과 주제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고유한 사유 능력과 관계의 깊이가 정형화되는 과제를 안게 되는 것이다. 많은 청소년이 AI가 제시한 매끄러운 추천 시스템 속에서 내가 왜(Why) 이 관계를 시작했고 이 사유를 전개하려 했는지에 대한 주체적 의도를 채워나가는 조율 과정을 고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의 완벽함에 나만의 불완전한 고민과 맥락을 결합하는 역량이야말로 데이터로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플랫폼 데이터 구조와 디지털 주체성의 확립
학계에서는 인간의 일상적 경험과 관계망이 디지털 행동 데이터로 전환되어 플랫폼 경제의 자산이 되는 메커니즘에 주목해 왔다. 과거 프랑크푸르트 학파(Frankfurt School)의 학자들은 우리 사회가 오직 ‘효율성과 쓸모’만을 따지는 도구적 사회로 변할 때, 인간의 존엄성이 기계 부품처럼 소외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 이론은 오늘날 알고리즘 사회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플랫폼 시스템이 우리의 취향, 감정, 심지어 친구 관계까지 ‘조회 수’, ‘좋아요’, ‘체류 시간’이라는 효율성 지표로 환산하고 통제하면서, 인간 고유의 감정과 주체성이 소외될 가능성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이 느끼는 알고포비아는 단순히 기술에 대한 감정적 거부감이 아니라, 기술이 관계와 감정의 기준을 통제하는 시스템 속에서 고유한 디지털 주체성(Digital Agency)을 유지하려는 방어 기제로 해석된다. 이러한 구조적 메커니즘을 명확히 이해하고, 시스템의 추천 경로를 인지하는 비판적 거리두기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추천 시스템의 관성을 깨뜨리는 주체적 실천
그렇다면 알고리즘이 설계한 폐쇄적 환경을 보완하기 위해 청소년들은 일상에서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을까. 관련 연구를 바탕으로 일상에서 적용 가능한 세 가지 방안이 제시된다.
- 일주일에 한 번, ‘알고리즘 교란 검색’ 실행: 추천 알고리즘의 프로파일링 관성을 완화하는 실천이다. 일주일에 하루쯤은 평소에 전혀 접하지 않던 생소한 분야의 주제어(예: ‘조선시대 식문화’, ‘우주 물리학 기초’ 등)를 의도적으로 검색해 콘텐츠를 시청하는 방식이다. 피드에 무작위 데이터를 주입함으로써 알고리즘이 사용자를 하나의 좁은 취향의 틀로 분류하지 못하도록 인위적으로 필터 버블의 벽을 넓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 플랫폼 접속 전, ‘한 줄 메모’ 작성: 무의식적인 알고리즘의 추천에 사유를 선점당하지 않기 위한 인지적 방어선이다. 스마트폰을 켜고 유튜브나 SNS에 접속하기 직전, 빈 종이나 포스트잇에 “오늘 확인하고자 하는 정보”를 한 줄로 먼저 기록해 보는 방식이다. 무한 스크롤의 덫에 빠지기 전, 해당 플랫폼에 왜(Why) 접속하려 했는지 주체적인 의도를 시각적으로 확인해 두는 효과가 있다.
- 요약 미디어 대신, ‘긴 호흡의 텍스트’ 읽기: 디지털 미디어로 인해 약해진 깊이 읽기 능력을 자극하는 방법이다.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1분 내외의 요약 영상이나 카드뉴스 대신, 인문학 서적이나 신문 칼럼의 한 단락을 하루 10분씩 읽어보는 실천이다. 편리하고 매끄러운 터치의 세계에서 벗어나 의도적인 인지적 마찰을 견뎌내며 스스로 질문을 던질 때, 알고리즘에 의존하던 사유 능력이 점진적으로 회복될 수 있다.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의 주인공들이 알람 소리를 넘어 서로의 눈을 맞추며 진심을 확인하듯, 의도적으로 알고리즘 시스템 너머의 ‘주체적인 질문’을 시작할 때, 청소년들은 동기화된 세계를 넘어 진짜 주체적인 관계와 자아를 확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