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구글 Gemini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신승우 기자]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기준으로 한쪽은 유럽에, 다른 한쪽은 아시아에 걸쳐 있다. 이 독특한 지리적 위치는 튀르키예를 오랫동안 동서양을 잇는 물류와 외교의 허브로 만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위치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어느 한 방향으로 명확히 편을 들기 어렵고, 그 모호함은 때로 깊은 혼란을 낳는다. 오늘날 튀르키예는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기록적인 인플레이션과 리라화 폭락이라는 경제적 혼돈을 겪었으며, 대외적으로는 그리스·키프로스와의 외교 갈등으로 서방과의 관계가 끊임없이 삐걱거리고 있다. 그 중심에는 20년 넘게 권력을 쥐고 있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있다. 금리는 내려가는데 긴장은 높아지는 이 나라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튀르키예가 마주한 딜레마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난다.
정치에 종속된 경제 정책
2021년 전 세계 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씨름하고 있었다. 각국 중앙은행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앞다투어 올렸다. 금리를 올리면 소비가 줄고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량이 감소하여 물가 상승 압력이 완화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튀르키예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에르도안은 2018년 이미 “금리는 모든 악의 어머니이자 아버지”라고 공언한 바 있다. 그는 고금리가 기업의 생산 비용을 높여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주류 경제학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을 밀어붙였다. 중앙은행 총재를 잇달아 교체하며 금리 인하를 강행한 것도 이 논리의 연장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2021년 말 달러당 8리라 수준이던 환율은 17리라까지 치솟았고, 2022년 10월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대비 85%를 넘어섰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에 튀르키예 국민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고, 달러와 금을 사재기하는 현상이 만연했다. 이 비상식적 정책의 이면에는 정치적 계산이 있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리를 억지로 낮춰 단기 경기 부양 효과를 만들어내고, 이를 발판으로 2023년 대통령 3선을 노린 것이다. 재선에 성공한 에르도안은 이후 180도 태도를 바꿨다. 2023년 5월 8.5%였던 기준금리를 2024년 3월에는 50%까지 올리는 극약 처방에 나선 것이다. 경제는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2025년 3월, 에르도안의 최대 정치적 맞수인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이 전격 체포되자 리라화가 단 몇 시간 만에 10% 폭락했다. 이는 튀르키예 경제가 정치적 결정에 얼마나 취약하게 종속되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장면이었다.
그리스와 키프로스 분쟁
경제 위기가 국내를 뒤흔드는 동안 튀르키예 외교는 또 다른 전선을 유지해 왔다. 바로 그리스 및 키프로스와의 갈등이다. 두 나라 사이의 앙숙 관계는 오스만 제국의 그리스 지배부터 독립 이후 수차례 반복된 충돌까지 수천 년의 역사가 뒤엉켜 있다. 현재 양국 갈등의 핵심은 에게해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이다. 에게해 일대에서 대규모 석유·천연가스 매장이 확인되자, 그리스는 자국령 섬들을 기준으로 EEZ를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튀르키예는 에게해의 특수성을 들어 별도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맞선다. 이 갈등은 양국 해군의 충돌로 이어지기도 했으며, 여러 차례 전쟁 직전까지 치달았다.
여기에 키프로스 문제가 더해진다. 1974년 그리스 병합을 노린 쿠데타를 계기로 튀르키예는 북키프로스를 군사 점령했으며, 현재까지 북키프로스를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남쪽의 키프로스 공화국만 정식 국가로 인정하며, 이 문제는 튀르키예의 EU 가입 협상이 사실상 동결된 핵심 원인 중 하나다. EU 회원국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한 외교적 고립을 넘어, 외국인 투자 유치의 한계와 유럽 단일시장 접근 제한이라는 장기적 경제 손실로 이어진다. 최근 해빙의 기류가 없지는 않다. 2023년 튀르키예를 덮친 대규모 지진 당시 그리스가 먼저 인도적 지원의 손을 내밀었고, 양국 정상의 상호 방문으로 관계 개선의 물꼬가 트이기도 했다. 그러나 에게해 영유권과 키프로스 통일 문제 등 구조적 갈등은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없다.
경제 위기와 민족주의 전략
그렇다면 경제 위기와 외교 강경 노선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유럽 싱크탱크 CER(Centre for European Reform)은 이를 날카롭게 짚어낸다. 에르도안이 경제적 어려움의 책임을 서방 탓으로 돌리거나, 국내 문제에서 여론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외교적 카드를 활용할 유혹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키프로스와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는 실제 비용은 낮으면서도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크다.
리라화가 폭락하고 인플레이션이 치솟던 2020~2022년, 에르도안은 에게해에 군함을 파견하고 키프로스 해역 자원 시추에 강력 경고를 보내는 등 대외 강경 메시지를 반복했다. 국제 분석가들은 ‘경제 위기 → 지지율 하락 → 외부 갈등 카드’라는 패턴이 에르도안 정권에서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중의 불만을 정책 실패가 아닌 외부의 적에게 돌리는 고전적 전략인 셈이다. 그러나 이 전략에는 함정이 있다. 외교적 강경 노선이 서방과의 갈등을 심화시키면 EU 가입은 더 멀어지고 외국인 투자는 줄어들어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은 더 깊어진다. 경제 위기가 강경 외교를 낳고, 그것이 다시 경제 고립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이다.
튀르키예의 선택
튀르키예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인플레이션은 잡혀가고 있으며 신용등급도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 그러나 2025년 이마모을루 체포 사태가 보여주듯, 경제 안정은 정치적 결정 하나에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모래 위에 세워진 집’과 같다. 그리스, 키프로스와의 외교 갈등은 수면 아래에서 여전히 끓고 있고, EU와의 관계도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보스포루스 해협은 수천 년 동안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다리였다. 그러나 오늘날 튀르키예는 그 다리 위에서 어느 방향으로 걸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하는 듯하다. 서방과의 통합도, 완전한 독자 노선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에르도안의 튀르키예는 경제와 외교 모두 불안정한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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