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Allergy & Asthma Network 제공 >
수많은 생명을 구한 항생제 개발의 역사
[객원 에디터 9기 / 김지수 기자] 오늘날 일상에서 널리 사용되는 항생제는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항생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작은 상처나 종기와 같은, 현대 기준으로는 경미하게 여겨지는 감염 질환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을 바꾼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은 철저한 연구의 결과가 아닌 한 과학자의 우연한 실수에서 비롯됐다. 예상치 못한 이 발견은 인류 의료 역사에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왔고, 감염병 치료의 새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1928년, 영국의 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포도상구균을 배양하던 접시의 뚜껑을 덮는 것을 잊은 채로 휴가를 떠났다. 그 사이 아래층에서 배양되던 곰팡이의 포자가 날아와 세균이 자라고 있던 배양접시에 안착했고, 휴가에서 돌아온 플레밍은 접시에 푸른곰팡이가 자라난 것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곰팡이 주변에는 세균이 전혀 자라지 않았다. 이 현상을 주목한 플레밍은 곰팡이가 세균의 성장을 억제하는 물질을 분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했다.
플레밍은 이 곰팡이의 어떤 성분이 세균의 증식을 억제하는지 알아보았고, 페니실륨 노타툼(Penicillium notatum)이라는 곰팡이에 들어 있는 항생 효과를 지닌 물질을 찾아내어 ‘페니실린’이라 명명했다. 페니실린이 포도상구균, 연쇄상구균, 뇌막염 균, 임질균, 디프테리아균 등 다양한 세균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음이 발견되었지만, 당시에는 페니실린을 순수하게 정제하는 기술이 부족하여 항균력과 지속 시간이 적었다. 이에 플레밍은 1929년 5월, “곰팡이로부터 얻은 물질의 항균력이 우수하기는 하나 생체 내에서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후 연구를 중단했다.
이후 페니실린은 1940년, 영국의 학자 하워드 플로리(Howard Walter Florey)와 어니스트 체인(Ernst Boris Chain)에 의해 다시 주목받았다. 그들은 순도 높은 페니실린을 정제하는 데 성공하였고, 동물실험과 임상실험을 통해 감염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입증했다.
페니실린은 이후 미국에서 허친슨 루소와 르네 듀보스 등의 과학자들에 의해 대량 생산되었다. 이는 세균감염 치료제로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수많은 병사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전쟁 이후에는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사용되며 가장 광범위하게 쓰이는 항생제로 자리매김했다. 1945년,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과 이를 정제하고 대량 생산한 플로리, 체인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공동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페니실린의 발견은 단순히 세균 감염을 치료할 수 있게 된 데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이후 다양한 감염병을 치료하기 위한 미생물 연구의 시발점이 되었다. 실제로 현재는 페니실린뿐 아니라 수많은 종류의 항생제가 개발되어 의료 현장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한 과학자의 우연한 실수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인 항생제로 이어져,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그날 플레밍이 배양접시를 덮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작은 상처로도 생명을 잃는 시대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