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세기의 식민지배를 이겨낸 남아메리카의 저력
유럽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하기까지
[객원 에디터 1기 / 오재원 기자] 생각보다 알려진 것이 많지 않은 남아메리카의 국가들은 공통점이 많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공통점은 유럽의 침략 전과 후로 그 역사를 이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브라질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으며 오랜 기간 동안 식민지가 되었던 결과로 인해 독립을 한 후에도 한참 동안 경제 공황을 겪었고 많은 정책들이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였다.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인 브라질은 1500년 경 포르투갈의 알바레스 카브랄 장군에 의해 발견되었다.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의 문화를 파괴하고 노동을 착취했고, 점점 많은 유럽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브라질로 이주하였다. 그들은 돈벌이가 되는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아프리카에서 더 많은 노예들을 사들여 브라질에서 일을 하게 만들었고, 커피 농장에서 일할 수 있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빈민계층도 많이 유입되었다. 또한, 금과 다이아몬드가 대량으로 발견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으며 이후 약 300년 동안 노동 착취가 이어졌다. 급기야 1807년 포르투갈의 내전으로 인해 포르투갈 왕족이 브라질로 피신해오며 브라질을 직접 지배했고, 1822년 독립하기까지 수많은 시위와 혁명이 이루어졌다. 독립 이후에도 독재군부 및 잦은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는 등, 한동안 국가의 행정과 정치가 안정되지 못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아르헨티나는 17세기 초 스페인의 탐험가 후안 디아스에 의해 발견된 이후 18세기까지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1814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지만 그 이후에도 주변국인 파라과이와 큰 전쟁을 치르는 등 국가 정세는 쉽게 안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유럽의 자본이 아르헨티나로 유입되기 시작하였으며, 스페인과 이탈리아로부터 다수의 이민자들이 몰려들며 공업화가 빠르게 추진되었다. 또한,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물자를 공급하며 아르헨티나는 큰 경제적 이득을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부정부패가 만연했던 독재 정부에 불만이 많았던 노동자들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1990년대에 극도로 높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이래, 잠깐 회복세를 보이는 듯했으나 아르헨티나는 지금도 여전히 극심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중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인 칠레 또한 16세기 초 스페인에 의해 정복되었다. 산이 많은 지형 덕분에 원주민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으나 결국은 스페인의 군대를 막아내지 못하였고, 이후로 약 3세기 동안 식민 지배를 받았다. 칠레의 국민들은 독립 자치권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을 벌였고, 1818년 비로소 독립을 이뤄냈지만, 1931년 한 해에만 대통령이 8번이나 바뀌는 등 여전히 정권은 안정되지 않았다. 그 후에도 페루와의 태평양 전쟁, 사회주의 정권 및 군사정권의 독재, 정부의 사회경제적 개혁 실패 등 경제적 혼란이 계속되었다. 현재도 사회적 불평등과 높은 기초생활비에 대한 불만 누적으로 발생한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정세의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다.
우리에게 잉카제국으로 잘 알려져 있는 페루의 역사 또한 스페인의 지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1532년 스페인의 피사로 장군의 침략 후, 잉카의 후손들은 크고 작은 저항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1572년 결국 사라지게 된다.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금과 은을 채굴하기 위한 광산 노동에 원주민들을 동원했으며, 이 과정에서 엄청난 착취가 이루어졌다. 300여 년간의 식민지배 후 1824년, 볼리바르 장군의 군대가 전투에서 스페인군을 무찌름으로써 페루는 드디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천연두, 홍역, 페스트 같은 전염병으로 인해 인구가 많이 감소하였고, 독립 이후에도 빈곤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방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혼란,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의 대립 등, 정치적 혼란이 연속되었다. 20세기 이후에도 군사 쿠데타와 군부독재, 경제 혼란 등의 위기를 겪고 있다.
그 외에 볼리비아, 우루과이, 파라과이, 콜롬비아, 에콰도르 등의 여타 국가들도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등 강대 유럽국의 정복을 당했으며, 이런 식민지배를 당한 역사는 대동소이하다.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강대 유럽국은 식민기구 설치와 지배 과정에 있어 원주민의 수가 월등하고, 남아메리카는 지배하기에도 너무 방대하다는 사실을 인지한 이후, 종교활동을 강화하면서 사회, 경제적 지배 메커니즘을 형성하였다.
원주민들의 우상숭배를 없애고 가톨릭 종교 전파를 이유로 각국 고유의 신전을 파괴하고, 신상을 녹여 금괴로 만들어 유럽으로 공수해갔다. 또한, 남아메리카 일대의 식민지에서 나오는 금과 은 등의 지하자원을 챙겨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며, 광산자원 외에도 거대 농장에서 재배되는 고무, 커피, 사탕수수 등도 상당한 돈벌이가 되었다.
언어적으로는 사실상 스페인어권과 포르투갈어권이 반분한 대륙이라 할 수 있는 남아메리카는 유독 다민족, 다인종 국가들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또한 오랜 기간 유럽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역사에서 기인한 것으로, 정복국의 민족들이 다수 이주해왔고, 식민지의 자원 착취를 위해 아프리카에서까지 노예를 사들여왔기 때문에 원주민, 유럽계 백인, 아프리카계 흑인 및 그들 간의 혼혈인종까지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흔히 남아메리카에 대해서는 ‘게으르다’, ‘오늘만을 즐긴다’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수 세기에 이르는 오랜 식민지배를 받아온 탓에 국민자주의식이 부족하고, 때문에 정치 상황도 쉽사리 안정되지 않은 근현대사를 갖게 되었지만 결국은 극복해낸 저력을 갖고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민족, 다인종 국가 특성을 바탕으로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이들의 기질과 관습을 이해한다면 이들의 방대한 천연자원 및 무한한 인적자원은 그 누구도 쉽사리 넘볼 수 없는 경쟁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