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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 네이처] 그래핀의 힘: 차세대 전자기기의 혁신적인 소재

<pixabay 제공>

[위즈덤 아고라 / 이채은 기자] 그래핀이라는 소재를 들어본 적 있는가? 그래핀은 단순히 탄소 원자로 이루어진 얇은 막이지만, 그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불과 원자 두께 정도밖에 되지 않으나 강철보다 200배 강하고, 전기를 100배나 더 잘 전달할 수 있다. 이 작은 기적 같은 물질은 어떻게 발명되었을까?

그래핀의 발견

흑연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연필심, 즉 연필을 사용할 때 종이에 닿아 글씨를 쓰게 해주는 부분이 바로 흑연이다. 흑연은 탄소막이 층층이 쌓인 형태로, 우리가 글씨를 쓸 때 탄소막이 한 겹씩 벗겨진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흑연은 탄소가 육각형의 벌집 형태로 배열된 평면이 층을 이루는 구조이며 그래핀은 이 흑연의 한 층이다. 흑연을 뜻하는 그래파이트(Graphite)와 탄소 이중 결합을 뜻하는 접미사 ‘-ene’을 결합하여 ‘그래핀’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오랜 시간 동안 과학자들은 흑연의 탄소층을 분리하기 위해 수없이 시도했지만, 성공을 거둔 이들은 없었다. 그러나 그래핀을 분리하는 방법은 의외로 아주 간단했다. 2004년,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안드레 가임(Andre Konstantin Geim)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Konstantin Sergeevich Novoselov) 연구팀은 스카치테이프를 이용해 흑연에서 그래핀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스카치테이프 끝에 흑연 샘플을 붙인 후, 테이프의 다른 끝을 맞닿게 접어 꾹 누르고 떼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할수록 흑연 층이 점차 줄어들어 그래핀에 가까워진다. 연구팀은 이 발견으로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으며, 그래핀의 등장은 전자기기와 다양한 산업에서 혁신의 시작을 알렸다.

그래핀의 특성

그래핀은 2차원 물질이라고 불릴 만큼 작고 얇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한 특성으로 기술의 발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높은 전기전도도와 열전도도이다. 그래핀은 구리보다 100배 이상으로 빠른 열전도 속도를 가진다. 현재는 전기 저항이 작아 전기전도도가 높은 구리에 도금을 입힌 전선을 주로 사용하는데, 강도가 강하고 전기전도도도 훨씬 높은 그래핀을 결합한다면 전자 신호 전달 속도는 비할 수 없이 빨라질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전자기기, 특히 초고속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전자 회로 설계에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배터리 용량은 2~3배 증가하고 충전 속도는 훨씬 빨라지는 미래가 올 것이다.

열전도도는 에너지를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에너지 절약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물질 중 높은 열전도율을 가진 물질로는 은, 구리, 금, 알루미늄 등이 있다. 구리의 열전도율은 401W/(m*K), 다이아몬드의 열전도율은 2,000W/(m*K)으로 구리보다 약 5배 높다. 그래핀은 다이아몬드보다 2배 높은 열전도율을 가지고 있어, 조리도구나 의료기기와 결합하면 높은 효율을 기대할 수 있다.

그래핀의 유연성 또한 중요한 특징이다. 얇고 가벼우면서도 유연하게 휘어질 수 있어 차세대 디스플레이와 웨어러블 기기에서도 크게 활용될 전망이다. 기존의 딱딱한 디스플레이 대신 그래핀을 이용한 유연한 화면이 보편화 된다면, 접히거나 휘어지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일상이 될 수 있다. 또한, 그래핀의 투명성 덕분에 전자기기나 건물의 창문 등에도 적용되어 투명한 디스플레이와 스마트 윈도우 기술에도 활용될 수 있다. 현재 텔레비전, 스마트폰, 스마트 워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래핀이 사용되고 있다.

그래핀의 응용 분야

그래핀은 이러한 특성 덕분에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혁신적인 기술로 활용되고 있다. 먼저 배터리 분야에서는 그래핀 기반 배터리가 리튬 이온 배터리를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하면서도 충전 속도가 빠르고 수명이 길기 때문이다. 지난 2023년 삼성전자는 그래핀을 이용해 기존 리튬이온 전지보다 충전 용량이 45% 더 크고, 충전 속도는 5배가량 더  빠른 배터리를 제작했다. 핸드폰의 배터리뿐만 아니라 전기 자동차 산업에서도 그래핀은 획기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한국전기연구원은 실리콘과 그래핀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면 전기 자동차의 주행거리를 현재보다 20%가량 더 늘릴 수 있다고 전했다.

의료 분야에서도 그래핀의 응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그래핀의 높은 전기전도성은 신경 임플란트나 심장 모니터와 같은 의료 기기의 성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그래핀 기반 센서를 사용하면 환자의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더 정밀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한국화학연구원 이정오 책임연구원과 장아랑 세명대 교수 연구팀은 그래핀을 이용하여 하루 3번, 약 1년간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혈당 센서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 센서는 촉매가 직접 체액에 닿으면서 손상되어 지속성이 떨어졌지만, 새롭게 개발된 센서는 빛과 양자 외에는 투과할 수 없는 그래핀의 성질을 이용해 촉매의 손상을 막아 지속성을 높였다.

영화 속 그래핀

< 영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속 한장면 갈무리 >

머지않은 미래에 해리포터 속의 움직이는 신문이 현실이 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핀은 얇고 유연한 디스플레이로 종이와 같은 재질에도 쉽게 결합할 수 있다. 전기 전도성도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고속으로 영상을 전송할 수 있다면 신문에 실린 사진이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도 가능해진다. 영화에서만 보던 기술이, 그래핀 덕분에 실현될 날이 머지않았다.

그래핀이 상용화되면 우리는 단순히 종이신문이 아닌,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디지털 신문을 손에 들고 다니게 될지도 모른다. 뉴스나 사진뿐만 아니라 동영상까지 종이처럼 얇고 가벼운 디스플레이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되면, 정보 전달 방식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런 유연한 디스플레이는 책, 잡지, 심지어 광고에까지 응용되어 우리가 접하는 모든 매체가 더 빠르고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핀이 만들어낼 새로운 미디어 시대는 지금보다 훨씬 더 상호작용적이고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환경이 될 것이다.

그래핀의 미래

그래핀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그 잠재력은 무한하다. 현재 전자기기, 에너지 저장, 의료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와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래핀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우리의 일상은 급격히 변할 것이다. 그래핀의 고유한 물리적 특성은 더 가볍고, 더 빠르며,  더 효율적인 기기들의 등장을 촉진할 것이다. 동시에, 이 혁신적인 소재는 환경친화적인 해결책도 제시할 수 있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래핀이 이끌어갈 과학기술의 발전은 단순한 변화가 아닌,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될 것이다.

[위즈덤 네이처] 현대 사회의 놀라운 발전 뒤에는 여러 소재와 화학적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부터 더 깨끗한 에너지를 위한 배터리까지! 이 모든 것은 작은 분자들이 이루어낸 과학적인 산물입니다. 최근에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작은 나노의 세계까지 도달한 나노 기술과 분자 설계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생활에 어떤 물질의 기술들이 영향을 미쳤는지 고찰해 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떤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위즈덤 아고라 이채은 기자의 ‘위즈덤 네이처’와 함께 일상을 구성하는 신소재 기술들과 응용의 깊은 세계를 탐험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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