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기억 백과사전 만든다
T세포 수용체 유전자 정보 읽어낸다
면역이 기억하는 법
질병의 조기 진단 가능해진다
[객원 에디터 7기 / 김신아 기자]옛 주민등록번호는 생년월일과 성별, 지역코드, 검증번호를 포함한 13자리 숫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현재는 개인정보 보호목적과 지역 차별 문제 예방을 위해 임의 번호를 부여하고 있다. 개인의 특성 정보를 포함했던 개정 전 주민등록번호처럼, 개인의 면역 정보를 한꺼번에 확인할 수 있는 면역기억 백과사전(Human TCrome Project) 프로젝트가 한국에서 시작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면역세포의 일종인 T세포가 특정 항원(우리 몸속에 침입해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에 대응해 만드는 T세포 수용체(TCR) 유전자 정보를 모두 읽어낼 사전을 만드는 게 목표다.
사람이 백신을 맞거나 바이러스와 같은 외부 물질에 노출되면 T세포가 이에 대응할 수 있는 TCR을 만드는데, 개개인마다 어떤 TCR이 있는지를 찾아내면 한 사람의 면역력 지도를 만들 수 있게 된다.
만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앓았던 사람이라면 코로나바이러스 표면 스파이크 단백질과 결합하는 TCR을 가진 T세포가 존재한다. 신의철 기초과학연구원(IBS)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바이러스면역연구센터장은 “사람의 혈액을 채취해 T세포를 분리하고 T세포 속의 TCR 유전자를 분석하면 그 사람이 가진 TCR의 종류를 파악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 몸의 T세포 종류는 분류됐지만 아직 어떤 질병에 어떤 T세포 그룹이 반응하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신 센터장은 “면역 기억 백과사전이 완성되면 우리 몸에서 T세포 지도를 만들어 특정 질병과 매칭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만약 건강검진에서 혈액의 T세포를 채취해 종양이나 장기이식의 거부반응에 관여하는 특정 T세포 그룹이 활성화된 것을 확인하면 미리 예방할 수 있다는 뜻이다.
1990년대에 진행됐던 인간게놈 프로젝트(HGP, Human Genome Project)가 인체의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는 게놈(genome)을 해독해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고 유전자 배열을 분석하는 연구 작업이다. 게놈은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의 합성어로 생명현상을 결정짓기 때문에 흔히 생명의 책이라고도 불린다. 과학자들은 게놈 지도가 모두 완성되면 이를 바탕으로 인류의 영원한 숙제였던 질병을 정복하고 수명을 연장시키는 일이 가능해져 제약 산업과 생명공학 등의 발전과 함께 획기적인 변화를 가지고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신 센터장은 “게놈 프로젝트가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유전 정보에 대한 기록이라면 면역 기억 백과사전은 인간이 태어난 이후 겪은 일에 대한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한 개인이 가진 T세포의 수는 4000억 개고, TCR의 종류는 대략 1000만에서 1억 개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매우 많은 데이터로서는 단일 연구진 차원에서 진행하기 어렵다고 깨달은 신의철 센터장은 우선 성인 남녀 2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시작했으며, 현재는 11% 정도 파악했다. 일차적인 목표로는 20%까지 파악하는 것이다.
먼 미래에는 약 1000명의 면역 기억 데이터를 모으는 게 프로젝트의 목표다. 신 센터장은 “아직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2년도 되지 않았다”며 “면역 기억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한 명의 면역 기억만 파악하는 것은 부족하다. 많은 사람의 데이터에서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분석 비용은 한 사람당 5억 원 정도로 예상된다. 신 센터장은 “염기서열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 비용은 감소하겠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고 한 연구자가 하기엔 큰 규모”라며 “국가나 기업의 후원 또는 국제적 협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첫 논문을 먼저 발표해 한국이 주도하게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면역기억 백과사전이 구축된다면 질병의 조기 진단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개인의 면역을 예측해 장기 이식 적합도를 가려내는 정밀의학의 현실도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