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의 고유한 문화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문화 존중을 필두로 한 저작권과 표절, 문화적 유용에 관한 문제가 패션계에서 주기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객원 에디터 4기 / 이하은 기자] 멕시코 영부인인 베아트리스 구티에레즈 밀러는 10월 21일 소셜 미디어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미국의 의류 브랜드 폴로 랄프 로렌(Polo Ralph Lauren)을 비판했다. 다양한 색의 줄무늬와 기하학적인 무늬로 되어있는 랄프 로렌의 니트 카디건이 멕시코 원주민의 전통의상을 표절했다는 입장이다.
영부인은 옷 사진과 함께 “표절은 불법이고 비도덕적이다. 적어도 인정하라” 며 랄프 로렌의 사과와 원주민 공동체를 위한 보상을 요구하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이에 폴로 랄프 로렌은 공식 성명서를 통해 “이 일이 일어나서 유감이다”라고 사과하며 이미 몇 개월 전 해당 의류 판매를 금지하는 지시를 내렸는데도 판매되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멕시코 문화부 역시 공식 트위터에 “우리의 원본 창작물에 대한 문화적 유용을 강력히 규탄한다”라고 비판하며 이번 사건을 “문화적 유용(cultural appropriation)”의 사례로 설명했다.
문화적 유용은 지배적인 문화가 소수집단의 헤어스타일과 옷과 같은 특정한 전통을 잘못 사용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종교적인 장식이나 전통의상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주로 주류 문화의 사람들이 비주류 전통을 무례하거나 고정관념적인 방식으로 사용할 때 나타나지만, 다른 문화의 전통을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할 때 누구나 문화적 유용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멕시코는 자국 원주민 전통문화 보호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어 이번 폴로 랄프 로렌 이외에도, 지난 몇 년간 패션계의 원주민 표절을 비판해 왔다. 프랑스의 디자이너 이사벨 마랑(Isabel Marant), 베네수엘라의 디자이너 캐롤리나 헤레라(Carolina Herrera), 스페인의 의류 브랜드 자라(Zara)와 망고(Mango), 이외에도 주요 대형 의류 브랜드들이 멕시코 토착민의 의상이나 가방을 베낀 디자인으로 비판을 받았다.
멕시코는 작년 초 원주민과 아프리카계 멕시칸들의 저작권 보호를 강화시키는 법을 통과시켰으며, 같은 해 11월 공정한 패션계에 대한 의식 신장을 위해 토착 의상 축제를 열어 표절에 맞서는 입장을 공고히 하기도 했다. 표절에 맞서기 위해 문화부에서 표절 당사자에게 공식적인 문서를 보내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으며, 이번에는 영부인이 소셜 미디어에 입장을 올리는 것으로 전 세계 네티즌들의 응원을 얻고 있다. 네티즌들은 모두 백인인 모델들로 구성된 컬렉션, 토착 가방과 같은 디자인의 가방 등을 향해 “한 인종의 모델들이 어떻게 멕시코를 대표할 수 있느냐” “같은 디자인의 가방을 몇십 배의 가격으로 팔면서 이익을 낸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문화적 유용을 꼬집었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멕시코 외 문화와, 디자이너 외에도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미국 팝 가수 케이티 페리와 니키 미나즈는 무대 의상으로 각각 일본과 중국에서 영감을 받은 의상을 입어, 동양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대중의 고정관념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는 동양 문화, 아랍 문화 등을 서양 문화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잘못 표현하는 ‘Orientalism’의 한 예다. 또한 힌두교 축제에서 영감을 받은 팝 가수이자 디자이너인 퍼렐 윌리엄스의 컬렉션은 축제의 의미, 힌두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며 힌두교 요소를 그저 판매에 사용하는 문화적 유용으로 지적받았다.
이탈리아 의류 브랜드 구찌의 2018/2019 컬렉션 역시 이슬람 시아파의 전통인 터번을 머리 장식으로 사용해, 터번의 종교적인 의미와 평등성을 무시한다는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구찌는 터번 이슈 3개월 전 백인들이 흑인을 비하하기 위해 얼굴을 검게 칠했던 ‘blackface’를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의 스웨터로 차별에 사과하기도 했다. 미국의 워싱턴 NFL 미식축구팀과 영국의 글래스톤베리 축제 등의 행사 주최자들은 미국 원주민의 전통 머리 장식이 축제에서 장식으로 광범위하게 쓰이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미국 전통 머리 장식의 판매와 착용을 금지했다.
인류학자 산드라 니센(Sandra Niessen)은 “다른 사람들이 만든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는 것은 디자인 자체만큼 오래되었다. 이것이 문화가 성장하는 방식”이라고 하면서도 현대 패션에서 가끔 보이는 유용은 힘의 불균형과 “실질적으로는 식민지주의”를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나라마다 저작권에 관한 법이 다르더라도, 창작의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문화적 요소를 잘 파악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반면 소비자는 올바른 저작권의 준수와 공정한 이익의 분배를 지지하기 위해 저작권을 올바르게 표시한 상품, 저작권을 위배하지 않은 상품을 소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