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성적 경쟁보다 ‘성적 과정’을 중시하는 북유럽 교육환경
안전하게 실수할 수 있는 교실 분위기 조성
[위즈덤 아고라 / 장수빈 기자] “틀려도 괜찮아, 우리는 여기서 함께 배우는 거야.” 핀란드 헬싱키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교사가 던진 이 말에, 학생들은 서슴없이 손을 들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정답인지 아닌지보다 중요한 것은 생각의 과정과 표현 자체였다. 북유럽의 교실에서는 이런 장면이 낯설지 않다.
반면, 한국의 많은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틀릴까 봐 아예 손조차 들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실수가 곧 ‘낙인’이 되고, 실패는 경쟁에서의 탈락으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변의 시선과 타인의 인정에 민감한 우리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는 ‘틀리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더욱 강하게 작용한다.
오늘날 많은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한 태만이 아닌, 과도한 압박감 때문일 수 있다. 학업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학생들은 실수에 대한 두려움, 비교에 따른 불안감 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데 위축되기 쉽다. 실제로 한 연구에서는 이러한 압박감이 학생의 수업 참여도를 직접적으로 저하시킬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미국 대학교 생물학 수업을 대상으로 한 연구(England et al., 2017)에 따르면, 수업 중 발표나 질문 상황에서 느끼는 ‘커뮤니케이션 불안(classroom communication apprehension)’은 학생들로 하여금 말하기를 피하게 만들고, 이는 곧 수업 참여의 감소로 이어졌다. 특히 일반적인 수업 불안 수준이 높았던 학생일수록 전공까지 포기하려는 경향도 함께 나타났다. 그 결과, 학생들은 생각이 떠올라도 틀릴까 두려워 입을 닫고, 교실은 점점 정답만을 요구하는 공간으로 굳어져 간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핀란드 교육청(Finnish National Agency for Education)은 “학생의 학습 과정에서 실패와 실수가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여질 때, 아이들은 보다 깊이 있는 학습에 도달할 수 있다”며 “교육은 점수가 아니라 사고의 확장을 이끌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핀란드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학생 평가를 상대평가가 아닌 과정 중심의 서술형 평가로 운영하며, 시험이 없는 학년이 있을 정도로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감을 최우선에 둔다. 이러한 교육적 태도는 심리학적 연구에서도 지지받는다. 캐럴 드웩(Dr. Carol Dweck)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의 ‘성장형 사고방식(Growth Mindset)’ 이론에서, “학생이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다고 믿는 환경에서는 도전과 실패가 학습의 일부가 되며, 이는 장기적으로 더 나은 성취로 이어진다”라고 밝혔다. 드웩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교사가 실패를 학습의 과정으로 강조할 때 학생의 두뇌는 새로운 정보를 더 잘 받아들이는 상태가 된다.
노르웨이의 경우도 비슷하다. 오슬로 대학 교육학부의 마리아 베르그 슨 교수는 “노르웨이 교실에서 교사는 학생의 실수를 교정하기보다, 그 실수가 어떤 사고의 흐름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묻고 함께 해결책을 찾는 데 집중한다”며 “이러한 과정이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을 자연스럽게 길러준다”라고 설명한다. 이는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수직적이지 않고, 동반자로서 함께 배움을 탐색하는 문화적 기반 위에서 가능하다. 실제로 핀란드와 노르웨이의 교실에서는 ‘틀린 답 찾기’가 아니라 ‘다양한 답을 찾기’ 활동이 자주 이루어진다. 핀란드 일간지 헬싱킨 사노마트(Helsingin Sanomat)는 “핀란드 교사들은 학생에게 정답을 요구하기보다 문제를 푸는 다양한 방식을 소개하고, 서로의 접근 방식을 비교하게 한다”며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관점을 배우는 경험을 한다”라고 보도했다.
기자는 현재 노르웨이 플레케 학교에서 IB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이곳의 교실에서는 학생이 틀린 답을 했다고 해서 결코 부정적인 시선이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교사와 학생 간의 열린 대화를 통해 오류의 원인을 함께 분석하고, 이를 학습의 기회로 삼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틀린 답에도 위축되기보다는, 격려와 칭찬을 받으며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을 키워간다. 결과보다는 과정에서의 성장과 사고의 깊이를 중시하는 교육 철학이 교실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몸소 체감하게 된다.
이러한 교육 철학은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감뿐 아니라 교육적 성과에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OECD의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조사에 따르면, 핀란드와 노르웨이 학생들은 높은 학업 성취도와 함께 학습에 대한 스트레스 지수가 낮고, 학교생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심리적 안전망이 학습의 질을 높인다는 강력한 증거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교육문화가 지배적이다. 교육부가 2022년 발표한 ‘학생 정서·행동 특성 검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중·고등학생의 40% 이상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심리적 스트레스의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전문가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교실에서 실패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문화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교원대학교 교육학과 김민영 교수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는 창의성과 자기 주도적 학습력을 저해할 수 있다”며 “실패 자체를 가치 있는 배움으로 연결시키는 교육적 접근이 한국에서도 시급히 확산되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결국 교육의 목표는 시험 점수나 등수에 있지 않다. 아이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과정을 통해 더 깊이 배우고 성장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배움의 길이다. 교사가 ‘실수해도 괜찮다’고 말할 때, 그것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실제 교실 문화와 평가 방식에서 뒷받침되어야 한다. 북유럽 교육이 보여주듯, 아이들이 안전하게 실수할 수 있는 교실, 그것이야말로 경쟁에 지친 한국 교육에 가장 필요한 변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위즈덤 글로벌] 글로벌 교육과 세계의 지속 가능한 성장: 북유럽에서 배우다. – 세계적으로 혁신적이고 지속 가능한 교육 모델로 주목받고 있는 북유럽 교육 이념을 바탕으로 어떤 교육이 이루어지는지, 청년들이 국제적인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칼럼입니다. 교육의 세계적 도전 과제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위즈덤 아고라 장수빈 기자의 ‘위즈덤 글로벌’을 만나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