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의 시작과 끝은 바로 ‘석유’였다.

<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곽윤우 오피니언 투고] 역사 속의 석유는 우리들의 기계를 돌리는 힘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전쟁들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석유는 인류가 만든 혁신적인 발명품들의 필수 에너지로 자리 잡았다. 일반인의 생활에 편리함을 가져다준 자동차의 연료로 이용된 것부터 제2차 세계대전의 탱크와 전투기의 에너지로 사용되기까지, 석유는 항상 인간에게 중요했다. 2025년 현재, 탄소배출을 초래하고, 화석 연료라는 점에서 석유의 사용은 점차 줄어가고 있으며, 많은 기구와 나라들이 탈탄소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21세기에도 석유는 아직도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자원이며, 이는 아직도 국제 분쟁과 동맹의 축을 형성하고 있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석유에 중요성은 엄청났다. 히틀러가 이끌던 나치 독일은 막대한 기술력으로 전차, 탱크, 항공기, 전투기를 이용해 강력하고 빠른 전격전 기술인 블리츠크리그를 이용했고, 프랑스를 무려 6주 만에 함락시켰다. 이 전술은 기계의 에너지원이 되는 석유에 크게 의존했지만, 독일은 이런 막대한 양의 석유를 보유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이런 독일의 석유 부족은 연합군도 눈치챌 만큼 심각한 약점이었다. 독일 군대는 3개월, 많아야 4개월 치의 연료만을 보유한 상태였고, 히틀러는 석유를 얻기 위한 전쟁들을 시작하게 된다. 히틀러는 석유를 얻기 위해 루마니아와 동맹을 맺어 그들의 자원을 통제하려 했다. 루마니아는 석유가 풍부한 지역이었고, 세계 최초로 상업적인 원유 생산을 시작한 나라이기도했다. 히틀러는 이런 루마니아의 땅을 절실히 필요했고, 유럽에서 소련 다음으로 석유를 많이 생산하던 루마니아는 독일의 표적이 되었다. 루마니아는 독일의 영향권 아래 들어갔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은 루마니아의 모든 정유소를 지배하게 된다. 그러나, 전쟁이 확대되면서 루마니아 석유로도 부족했던 독일은, 결국 당시 러시아와 체결했던 독소불가침 조약을 어기며 소련의 석유자원을 위해 소련의 침공을 1941년에 시작한다. 그들의 주된 목표는 레닌그라드, 모스크바, 그리고 바쿠지역을 포함한 카프카스 유전지대에 집중되었다. 독일군은 단 몇 주 만에 소련 전차 1만 대를 파괴하거나 노획했고, 수천 대의 비행기도 격추했다. 하지만, 독일은 이 공격으로 인해 연료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고, 더 많은 연료가 필요해졌다. 이로 인해, 독일군은 소련 전선에서 더욱더 깊숙이 전격 해야 했다. 하지만, 소련의 군대는 독일군이 예상한 것과 달리 더 강했고, 익숙하지 않았던 소련의 거센 추위까지 닥치자, 결국 점령을 실패했다.

또 다른 추축국이었던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은 선전포고 없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에 주둔하던 미군 전함과 군사 시설을 기습했다. 이미 아시아 곳곳에서 전쟁을 벌이던 일본이 미국과의 전면전 위험을 무릅쓰고 진주만을 공격한 것은 석유 때문이었다. 일본이 실제로 전쟁을 수행하고 인도나 호주처럼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식민지배를 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원과 석유가 절실했다. 당시 일본은 석유 수요의 80%를 미국에서 수입하는 상태였는데, 미국이 일본은 견제하기 위해 1941년 8월 석유 수출을 전면 중단했다. 이것이 바로 진주만 공습의 배경이 되었다. 일본의 전략은 바로 미태평양 함대를 타격해, 발을 묵고, 동남아 유전지대를 찾아서 부족한 석유를 얻는 것이었다. 보르네오 섬 북부에 위치한 브루나이는 일본의 표적이 되었다. 브루나이는 아시아에서 상위 네 번째의 산유국으로 1940년대 브루나이는 당시 일본의 연간 원유 수입량보다 많은 석유를 생산했고, 진주만 공습 직후 일본은 이 섬을 차지했다. 결국 미국은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알리며 공식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이후, 일본은 점점 쇠퇴하게 되며 석유가 떨어지자 적은 양의 석유를 공급한 비행기에 군사를 태워 미 항공모함을 직격해 피해를 주는 자살 작전인 카미카제 전략까지 이용하게 된다. 하지만 이 작전의 효과는 미미했고,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핵폭탄을 맞고 난 후 항복하게 된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휘발유, 고무, 종이 식량 등의 물자들이 전선에 있는 이들에게 꼭 필요해지자, 총력전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나일론으로 스타킹대신 낙하산과 군복을 만들어야 했고, 설탕과 커피, 고기와 달걀은 전선에 우선 공급했다. 미국의 대통령으로 세 번째 당선의 성공을 거둔 루스벨트는 모두가 함께 싸우는 전쟁임을 강조하며 물자 배급제를 시행했다. 배급 쿠폰제가 도입되었고, 쿠폰을 다 써 버리면 커피도 설탕도 더 이상 살 수 없었다. 물론 석유도 이런 배급 품목에 포함되었다. 미국은 루마니아와 더불어 19세기 중반부터 상업적으로 원유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1930년대 텍사스 유전이 본격 개발되면서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석유를 물처럼 사용했던 미국인들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배급제를 따라야 했다. 사람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으며, 출퇴근 시간도 조정되었다. 또한, 자동차를 함께 타자는 공유 캠페인 등이 벌어졌고, 이때 ‘카풀’이라는 개념이 확산되었고, 혼자 자동차를 타는 것은 강하게 제한되거나 사회적으로 비난받았다. 이렇게, 미국인들이 고통을 감수한 총력전으로 미국은 엄청난 물량의 무기와 생산품을 제조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나치 독일을 상대로 성공을 거두게 된다. 또한, 미국은 일본의 카미카제 공격이 계속되자, 결국 세계 최초로 원자력 폭탄 2발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하며 제2차 세계대전의 막을 내리게 된다.

또한, 루스벨트는 전후 미국의 패권을 위해, 사우디 아라비아의 국왕과 만나서 비밀협정을 체결하였다. 1945년 2월, 루스벨트는 독일과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전후처리를 위해 얄타회담을 한 후, 곧바로 자국 국민에게도 비밀로 한 채 아라비아 반도를 처음으로 벗어난 사우디 아라비아의 국왕과 수에즈 운하에서 생의 마지막 협상을 시도한다. 그러나, 당시 루스벨트의 건강상태는 양호하지 못했다. 그의 주치의는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일하지 말아야 한다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건강 상태에도, 루스벨트는 전혀 다른 문명에 국가수반을 만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는 담배 애호가였지만, 사우디 아라비아 국왕 압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저녁 식사 때 칵테일도 마시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왕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문화를 배려한다는 의미였다. 이에 덧붙여, 루스벨트는 39세에 당시 주로 어린이에게 많이 발생하던 소아마비(폴리오)에 걸렸다. 이후, 휠체어를 사용했는데, 왕이 전사였고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후 수년 동안 절뚝 걸린다는 사실을 알자, 루스벨트가 국왕에게 특수 제작 휠체어를 선물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또한, 루스벨트는 사우디 아라비아 국왕 전용 비행기를 선물하였는데, 당시 사우디 아라비아에는 비행기가 없었기에 조종사도 같이 선물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비행기에 이슬람교를 따르는 국왕이 메카를 향해 기도를 올릴 수 있는 공간과 시설까지 마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사우디 아라비아 국왕은 매우 감동했고 사우디는 미국에 안보를, 미국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석유를 확보하게 된다.

최근 경기침체로 국제 원유 가격이 하락하고 있음에도, OPEC과 OPEC+ 국가들은 오히려 석유 공급량을 늘리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OPEC 국가들이 이런 결정을 한 데에는 2가지의 큰 원인이 존재한다. 첫번째는, 지금 시점이 석유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21세기에 접어들어, 국가들과 여러 기구는 탈탄소 전환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들을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또한, OPEC 국가들이 석유 가격을 대폭 낮춘 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가격보다 그들의 시장 점유율을 늘려 산유국의 국제적인 지위를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21세기, 우리나라도 석유로 인해 많은 경제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최근의 유가하락은 한국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낮은 석유 가격 덕분에 기업들의 수익성은 향상할 것이며, 석유 소비도 확대될 것이다. 하지만, 친환경 에너지와 관련되어 있거나 비슷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업들의 수익성은 하락할 것이며, 재생에너지 투자도 감소할 수도 있다는 부정적 영향도 미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이 상황을 유용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 사태가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최대한 감소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석유 가격이 엄청나게 떨어진 이 사태에서 재정이 어려울 수 있는 재생에너지 기업들에 투자 같은 지원을 해준다면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보다 더 앞선 기술 발전을 이루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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