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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탈락’ 환호하던 이란 20대, 군경이 쏜 총에 사망

자국 월드컵 탈락을 환호하다가 죽은 20대 이란인

< Illustration by Jimin Moon 2009 (문지민) >

[객원 에디터 4기 / 이석현 기자] 세계에서 제일 큰 스포츠 대회인 월드컵이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탈락한 나라 중 하나인 이란에서 의외의 사건이 일어났다. 이란 대표팀이 숙적인 미국에 패해 16강 진출이 좌절된 뒤 이에 환호하던 이란의 20대 남성이 이란 보안군(군경)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것이다. 

BBC방송과 일간 가디언 등 영국 매체에 따르면 29일(현지시간) 경기 직후, 카스피해에 접한 이란 북부 도시 반다르 안잘리에서 27세 남성 메흐란 사막이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이란 대표팀의 패전을 축하하다가 총에 맞았다고 전했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 인권’(IHR)은 “이란 대표팀이 미국에 패한 뒤 보안군이 그(사막)를 직접 겨냥해 머리를 쐈다”라고 가디언에 밝혔다. 이란 보안군의 강경한 행보는 시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IHR에 따르면 지난 9월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 사이로 머리카락이 보이는 등 복장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갔다가 갑작스레 숨진 것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확산한 반정부 시위에서 이란 보안군의 손에 살해된 사람은 어린이 60명, 여성 29명을 포함해 448명에 달한다. 

CHRI(Commonwealth Human Rights Initiative)는 30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사막의 장례식에서 추모객들이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장면이 담긴 영상도 함께 공개했다. 이 구호는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를 겨냥한 이란 반정부 시위대의 구호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보안군에 피격당해 숨진 사막은 이번 월드컵 미국전에서 뛴 이란 미드필더 사이드 에자톨라히의 지인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사막과 같이 반다르 안잘리 출신인 에자톨라히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막과 어린 시절 유소년 축구팀에서 함께 뛰었다고 소개하며 비통한 심경을 전했다. 그는 비록 친구의 사망 정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에자톨라히는 “언젠가는 가면이 벗겨지고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우리 젊은이들, 우리 조국이 이런 일을 당할 이유가 없다”라며 정부를 향한 분노를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이란 시민들은 정부에 대한 불만을 여러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란 대표팀이 미국에 패배하자 오히려 이에 환호하며 축하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이란 곳곳에서 목격됐다. 사막이 숨진 반다르 안잘리를 비롯해 테헤란, ‘히잡 시위’ 확산의 진원지인 북부 쿠르디스탄주 사케즈 등 곳곳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환호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온라인상에서 확산되고 있다. 또한 이란 대표팀 선수들은 지난 21일 B조 1차전 잉글랜드와의 경기 직전 국가가 흘러나올 때 국가를 따란 부르지 않는 방식으로 본국에서 진행 중인 반정부 시위에 지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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