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나가사키 사례와 한국 전쟁 이후 핵무기 위협의 역사적 교훈
<비극을 넘어, 피어나는 평화- OpenAI의 DALL·E 제공>
[위즈덤 아고라 / 장수빈 기자] 인류가 핵무기의 참혹함을 경험한 대표적 사건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였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공식 기록 보관소의 자료에 의하면 1945년 8월 6일, 미국이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 ‘리틀보이’로 인해 약 70,000명이 즉사했고, 연말까지 총 140,0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 8월 9일, 나가사키에 투하된 ‘팻맨’은 약 27,000명을 즉사시키고, 연말까지 총 70,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초래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인류 문명이 직접 경험한 최대 규모의 비극이라는 점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당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 원폭 피해 지역에는 강제동원된 수만 명의 한국인이 있었고, 상당수가 피폭으로 사망하거나 평생 방사선 질환에 시달렸으며 현재까지 살아있는 사람들 역시 그 피해로 인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당시의 원폭 투하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총력전의 성격이 강해 국제법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제네바 협약은 전시에도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학살을 금지하고 있으나, 원자폭탄은 도시 전체를 목표로 삼았다는 점에서 ‘반인륜적 결정’이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또한 군사적 필요보다는 전후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확립하기 위한 정치적 결단이었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국제 인권 단체와 다수의 법학자들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를 전쟁 범죄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한국인 피해자는 전후 보상 과정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 일부 피해자 단체와 국제 인권기구는 한국인 히바쿠샤의 법적 권리 보장과 역사적 인정이 여전히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인들은 오랫동안 일본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 2005년, 한국인 피해자 11명이 일본 법원에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하며 일부 보상금을 받게 되었지만, 이는 개별적이고 제한적인 조치에 불과했다. 피해자 단체들은 여전히 ‘역사적 인정과 국가적 지원이 미흡하다’고 지적하며, 한일 양국 정부에 더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비극을 넘어, 식민 지배의 잔재와 전쟁의 상흔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파괴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언이다.
이러한 끔찍한 역사적 사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는 한국전쟁에서도 직접적으로 거론된다. 1950년 전쟁 발발 직후 미국 내에서는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실제로 논의되었다.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 사이에서 의견 차이가 있었으나, 핵 투입 시나리오는 전략적 옵션으로 검토되었다. 이는 한반도가 냉전 초기에 핵위협의 중심 무대 중 하나였음을 보여준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미국은 한국을 자국의 핵우산(nuclear umbrella) 아래 두며, 확장 억지 전략(Extended Deterrence)을 통해 한반도의 안보를 보장했다. 실제로 1958년부터 미군은 한국 내에 핵무기를 배치했고, 이는 1991년까지 30년 이상 유지되었다. 이 조치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고도 국가 안보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제공했다. 동시에 한국은 국제 비확산 체제 속에서 군사적 신뢰를 쌓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경험은 핵무기가 결코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제공했다. 그러나 생존자들은 “80년이 지나도 인류가 핵무기의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라고 경고한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북핵 문제, 중동 지역 갈등에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다시 언급되는 현실은 이러한 경고가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고 있는 예다. 2023년 2월 21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서방의 위협에 맞서 핵무기 개발을 계속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는 러시아가 핵무기를 단순히 ‘억지 수단’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전쟁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국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처럼 핵무기는 단순한 냉전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위협으로 우리를 다시금 불안하게 만든다.
오늘날 핵위협은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냉전 시기에는 미국과 소련 같은 초강대국 중심의 군비 경쟁이 핵 위기의 핵심이었지만, 현재는 북한과 이란 같은 신흥 핵개발 국가의 부상, 그리고 비국가 행위자인 테러 조직에 의한 ‘핵 테러(nuclear terrorism)’ 가능성이 새로운 위협으로 부각된다. 이러한 변화는 핵문제가 특정 국가 간의 갈등을 넘어, 전 지구적 안보 리스크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과거의 피해 경험을 교훈 삼아, 핵 확산 방지와 핵 없는 세계를 향한 공동의 노력을 한층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는 핵확산금지조약(NPT),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그리고 2021년 발효된 핵무기금지조약(TPNW) 등을 통해 핵무기의 사용과 확산을 억제하려 노력하고 있다. NPT가 핵 보유국을 제한하고 비핵화 원칙을 제도화했다면, CTBT는 모든 형태의 핵실험을 금지하여 핵무기 개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데 의의를 가진다. 비록 아직 발효되지 못했지만, CTBT는 국제 감시망을 통해 사실상 모든 핵실험을 탐지할 수 있는 수준의 체제를 구축하며 ‘핵 실험 금지’라는 강력한 국제 규범을 형성했다. 한편, TPNW는 핵무기의 개발·보유·사용 자체를 전면 불법화함으로써, 핵무기 자체를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비인도적 무기로 규정하는 데 결정적인 진전을 이뤄냈다. 한국은 이러한 체제에 참여하며, 한반도의 비핵화와 동북아 평화 정착을 위한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핵무기 없는 세상을 향한 인류의 노력 역시 계속되고 있다. 특히, 2024년 ‘일본원수폭피해자 단체협의회(니혼 히단쿄, Nihon Hidankyo)’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제시한다. 1956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생존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이 단체는 반세기 이상 핵무기 폐기를 위한 증언과 활동을 이어왔으며 핵무기의 비인도성을 고발하고, 핵무기 사용의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평생을 바쳤다. 노벨위원회는 이 단체의 노력이 ‘핵 금기(nuclear taboo)’를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하며, 핵무기가 단순히 국가 안보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본 기자도 핵무기의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노벨 평화상 수상식 후 횃불행진에 참석하여 목소리를 내고자 노력하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그리고 한국 전쟁 시기의 핵위협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오늘날 반드시 되새겨야 할 교훈이다. 한국은 직접적·간접적 피해 경험을 바탕으로 핵무기 사용의 비극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평화 담론을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앞으로 한국 사회는 피해자의 증언을 더욱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교육을 통해 핵무기의 비인도성을 알리며, 국제 협력을 강화해 비핵화 논의를 적극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한국은 인류가 지향해야 할 “핵 없는 미래”라는 목표를 향해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위즈덤 KOREA]한반도, 핵의 상처를 넘어 평화를 향해–한국은 인류가 핵무기 앞에서 겪을 수 있는 참혹함을 직접적으로 목격한 나라입니다. 이번 칼럼 시리즈에서는 핵 문제와 관련된 역사적 피해를 알아보고 외교적 대응, 국제 협력 전략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한국이 미래 평화를 위해 나아갈 길을 탐구합니다. 또한, 청년과 시민이 국제무대에서 기여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모색합니다. 위즈덤 아고라 장수빈 기자의 ‘위즈덤 KOREA’에서 확인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