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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유산, 보물과 등록문화재 된다

데니 태극기·김구 서명문 태극기·서울 진관사 태극기는 보물 지정 예고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서명문 및 축하문’외 4건은 문화재 등록 예고 

<데니 태극기 – 문화재청 제공> 

[위즈덤 아고라 / 장석현 객원기자] 문화재청은 광복절을 앞두고, 태극기, 광복군 유물 등 항일독립유산들을 대거 보물과 문화재로 지정, 등록을 예고했다. 

동산문화재분과위원회의 심의에 따라 ‘데니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 ‘서울 진관사 태극기’ 3가지의 태극기 유물들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하였다. 지속적으로 근현대 문화재에 대해 역사적인 및 학술적인 가치들이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사회적인 요구를 따라 2019년부터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자문받은 후 최종적으로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처 위와 같은 결실을 맺게 되었다. 한글 관련 문화재 2건과 태극기 유물 3건을 추가적으로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에 지정된 3건의 태극기 유물들은 19세기와 20세기 사이에서 제작된 것들로 일제강점기라는 혹독한 시기 동안, 한국인들이 독립을 향한 열망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 및 염원을 상징하는 문화재이다. 특히 우리나라 첫 번째 국기 제작의 기원이었다는 점과 변천되는 과정이 우리나라의 초창기 역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굉장히 뜻깊다. 

국기를 재정하면서 독립국임을 세계에 알리려고 한 대한제국의 외교적인 노력을 증명하고 대표하며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보물로 지정될 사유 또한 충분하여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데니 태극기’는 세로 182.5cm, 가로 262㎝로 현재 국내에 현존하고 있는 옛 태극기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오래된 태극기 유물이다. 1877년, 중국 천진 주재 미국 대사로 활동하다가 고종 시절, 조선 정부의 외교 및 법률 정책 추진을 담당하는 고문으로 새롭게 부임해 외교 정책 실무를 담당하던 오웬 니커슨 데니가 소장하였던 유물이었다. 1886년 6월 조선과 프랑스 간의 통상조약 체결 당시 조선이 불리한 통상 조약을 맺지 않도록 조선을 보호했고 조선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으로서 조약을 맺을 수 있도록 조력하여 조선의 자주 독립을 외교관이었다. 그가 본국으로 가지고 돌아간 후, 1981년, 그의 후손들이 우리나라에 기증하여, 호혜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있다. 

데니 태극기는 1883년 3월, 고종이 한국의 국기를 전국적으로 사용토록 공식적으로 선포한 이후, 국기가 그려진 자료나 관련 기록은 남아있어도 실물은 남아있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국기 변천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태극기 사용은 선포되었지만, 규격 등이 정해지지 않아 1949년 태극기 제작법이 제정될 데 까지 조금씩 다른 형태로 제작되고 보관되어왔으며 이로 인해 태극기의 기원 또한 다양한 주장들이 있는 것이다. 

이 유물은 제작기법 측면에서도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고 있는데, 근대문물이 밀려오던 19세기 말의 정세가 반영되어 당시 서양 국기를 제작하는 방법을 참조하여 만든 초창기 국기 제작법을 적용하였다.

< 김구 서명문 태극기-김구 친필 서명문 세부 – 문화재청 제공 >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세로 44.3cm, 가로 62cm 크기의 소형 태극기로, 194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김구 주석이 독립의지를 담은 글귀를 태극기에 적어 중국 충진에서 선교사 활동을 하던 벨기에 매우사 신부에게 주어 미국에 가기 전, 자신의 태극기를 미국에 있는 동포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 매우사 신부는 미국에 도착한 다음,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인 이혜련 여사에게 이 태극기를 전했다고 한다. 그들의 후손들이 계속 보관하다가 ‘안창호 유품’으로 1985년 3월 11일 독립기념관에 기증하였다.

이 태극기는 특별하게 일제강점기 해외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한국인들의 광복에 대한 염원이 생생하게 담겨 있으며 매우사 신부가 안창호 선생에게 태극기를 전달하기까지의 상황이 모두 역사적 기록되어 있다. 더불어서, 이 유물은 태극기 제작 규정이 통일되기 직전이라는 점에서 데니 태극기와 함께 태극기의 변천 과정을 알아볼 때 사용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기 때문에, 학술적인 가치에서도 굉장히 높게 평가되고 있다.

< 서울 진관사 태극기(앞면) – 문화재청 제공 >

서울 진관사 태극기는 우리나라 사찰에서 최초로 발견된 태극기로 2009년 5월 26일 진관사의 부속건물인 칠성각을 해체 및 복원하는 과정에서 내부 불단 안쪽 벽체에서 발견되었는데, 태극기에 보자기처럼 싸인 독립신문류 19점도 함께 발견되었다. 이 태극기는 불교계를 포함한 다양한 계층들이 함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주도했다는 것과 불교 사찰이 독립운동의 중요한 거점지로서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태극기와 함께 발견된 독립신문류 – 문화재청 제공>

태극기가 싸고 있던 자료들이 1919년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되어 국내에 밀반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태극기에 싸서 칠성각에 숨긴 것으로 판단된다. 

< 「서윤복 제51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메달」(앞면) – 
문화재청 제공 >

3건의 태극기 유물의 보물 등록 예고와 별도로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서명문 및 축하문’, ‘한국광복군 훈련교재 정훈대강’, ‘김좌진 장군 사회장 약력서’는 문화재로 등록될 예정이며 6월에 예고되었던 ‘서윤복 제51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 메달’, ‘공군사관학교 제1기 졸업생 첫 출격 서명문 태극기’는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된 이들 2건도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협력하여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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