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시보 효과, 인간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생쥐 실험에서 플라시보 효과 확인, 초기 환경 인식이 고통 반응 억제
오피오이드 수용체와 연관된 뇌 신경 변화, 동물 통증 치료에 새로운 가능성
[객원 에디터 8기 / 이지윤 기자] 학술적 용어 ‘플라시보 효과’, 또는 일명 ‘위약 효과’라고도 불리는 현상은 약효가 없는 물질을 환자에게 약이라고 속여 투여했을 때, 환자가 약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감으로 인해 호전 증세를 보이는 것을 말한다. 이는 심리적 상태가 신체적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플라시보 효과가 처음 주목받은 것은 노먼 커즌스의 연구 덕분이었다. 초기에는 이 효과가 단순한 착각이나 거짓으로 여겨졌지만, 이후 커즌스의 추가 연구를 통해 플라시보가 뇌에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진통 효과가 나타날 때 기억과 감정을 조절하는 변연계의 입쪽전방대상피질(rACC)이 활성화되며, 소위 ‘파충류의 뇌’라 불리는 중뇌와 활동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일반적으로 플라시보 효과는 기대나 의지와 같은 인지적 과정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호흡, 체온, 수면, 식욕 등 원초적인 생리를 조절하는 영역인 중뇌보다는 소위 ‘인간의 뇌’라 불리는 신피질과 더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생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는 플라시보 효과가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UNC Chapel Hill)를 주축으로 한 미국의 연구진은 플라시보 효과가 동물에게도 나타날 수 있는지 보기 위해 실험을 설계했다. 이들의 연구는 다음과 같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물들에게서 어떻게 플라시보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동물들이 어떻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연구팀은 생쥐를 대상으로 난방이 가능한 두 개의 방을 만들었다. 실험의 첫 3일 동안 두 방의 온도를 30도로 유지한 후, 4일째부터 2번 방의 온도를 48도로 올렸다. 생쥐들은 고온으로 인한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1번 방으로 이동해 머물렀다. 이후 7일째, 1번 방의 온도도 똑같이 48도로 올렸으나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두 방의 온도가 동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쥐들은 여전히 1번 방에 더 오래 머물렀다. 또한 1번 방에서 발바닥을 핥거나 뛰어오르는 등 높은 온도로 인한 고통 반응이 2번 방에서보다 현저히 적었다. 이는 1번 방이 더 시원하다는 생쥐들의 초기 인식이 플라시보 효과를 일으켰음을 뜻한다.
연구진은 더 나아가 최신 유전학 기술을 이용해 생쥐의 뇌를 분석했다. 그 결과, rACC와 연결된 뉴런을 발견했으며, 이 뉴런은 중뇌의 교뇌핵(Pn)에 위치해 있었다. 이 뉴런에서 오피오이드 수용체 유전자도 발견되었는데, 오피오이드는 신체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엔도르핀이나 마약성 진통제 성분인 모르핀과 결합해 진통 효과를 발휘하는 물질이다.
오피오이드는 플라시보 효과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피오이드 작용을 억제하는 물질인 ‘낼록손’을 생쥐에게 투여했을 때, 플라시보 효과가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이러한 연구는 플라시보 효과가 동물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만약 인간 외에도 다른 동물들에게 플라시보 효과와 관련된 오피오이드 수용체 유전자가 존재한다면, 이는 동물의 통증이나 질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