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바오, 우리는 왜 자이언트 판다를 사랑하는가
[객원 에디터 7기/정동현 기자] 지난 4월 3일 에버랜드. 비가 내리는 가운데 수많은 인파가 우산을 쓴 채 눈물을 흘리며 일찍부터 모여들었다. 이날 중국으로 떠나는 푸바오(福宝, 행복을 주는 보물)를 배웅하기 위해서였다. 자이언트 판다(Giant panda, 판다) 푸바오는 지난 2016년 3월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한중 친선의 상징으로 한국에 보내온 암수 판다 한 쌍 러바오(수컷)와 아이바오(암컷) 사이에서 2020년 7월 20일 자연번식으로 한국에서 태어났다. 검은색과 흰색 털이 섞여 있으면서 눈 주위의 검은 무늬는 마치 큰 눈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느릿느릿 움직이는듯 하다가도 쏜살같은 달리기 실력을 뽐내면서 악의라고는 하나도 없는 순진한 어린 아기같은 이 동물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든 한 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무엇보다 팬더믹으로 고립되어 외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온라인으로 공유된 푸바오의 성장과정은 남다른 기쁨이 되어 주었다. 기자도 그런 푸덕이( 푸바오 덕후) 중 한 사람이었다.
판다는 중국의 쓰촨성(四川省) 일대에 주로 서식하는 곰과 포유류 동물이다. 원래 명칭은 자이언트 판다, 대왕 판다이다. 한때 너구리(라쿤)과라고 알려졌었지만 최근 유전자 연구를 통해 곰과라는 것이 밝혀졌다. 지난 2010년 네이처(Nature)에 실린 리 루이창(Ruiqiang Li) 등의 “자이언트 판다의 게놈 서열 연구”에 따르면 판다는 T1R1 유전자의 기능 상실로 인해 감칠맛(Umami, 고기, 치즈, 국물, 육수 및 기타 단백질이 많은 식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 발생 아미노산인 글루탐산의 카르복실산 음이온의 검출을 통해 발생)을 느낄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T1R1 유전자의 기능 상실은 감칠맛 수용체의 발현을 막아 판다가 육식동물임에도 불구하고 대나무를 먹는 초식을 하는 이유를 부분적으로 설명했다. 북경올림픽 마스코트였던 암컷 자이언트 판다 징징(Jingjing)의 게놈 유전체의 염기서열 분석을 통해 판다는 육식동물의 소화에 필요한 모든 유전자를 전부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주식인 대나무의 소화에 필요한 셀룰라아제(분해효소)의 유전자가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소화는 주로 장내 미생물에 의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육식이었던 판다는 미각 유전자인 T1R1의 돌연변이로 인해 고기 특유의 감칠맛을 느낄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로 인해 굳이 힘들게 사냥을 해서 고기를 먹더라도 그 맛을 제대로 느낄수 없기 때문에 사냥을 하는 수고 대신, 주 서식지인 쓰촨성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대나무나 죽순을 먹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또한 성체가 된 판다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매일 약 30kg 가량의 대나무를 먹는데 보낸다. 하지만 판다의 대나무 체내 소화율이 17%밖에 되지 않는다(일반적인 초식동물의 경우 약 70% 이상). 그렇기 때문에 판다는 먹는 것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자는 것으로 보내면서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 한다. 그렇다고 판다가 에너지 손실을 줄이기 위해 동면을 하지 않다. 보통 곰과 동물은 겨울에 먹이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동면을 한다. 그리고 가을 동안 연어나 도토리, 꿀 등을 가리지 않고 많이 먹어 지방층을 불려 동면 동안 지방을 태우면서 생존을 한다. 하지만 판다는 주 서식지인 쓰촨성이 겨울철에도 주식인 대나무가 넘치는 환경 탓에 동면이 필요하지 않다. 중국 남부의 고산지대인 쓰촨성은 연평균 기온은 8 °C 이하로 눈 속에서도 대나무가 잘 자라기 때문에 겨울에도 쉽게 먹이를 구할수 있다. 그래서 굳이 지방을 비축하면서 동면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대나무는 지방도 거의 없다!).
유네스코 산하의 국제기구인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따르면 판다는 전세계적으로 최근 멸종위기종(Endangered,EN)에서 멸종취약종(Vulnerable,VU)으로 상황이 나아졌다(아래 그림 참고.그림출처 IUCN). 하지만 판다에 대한 보호가 시작된 것은 채 40년이 되지 않았다. 1869년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파리 국립 자연사박물관에 처음 전시된 이후로 1990년대 이전까지 판다는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그 인기 때문에 판다를 밀렵을 해도 중벌을 받지 않았고, 판다 모피는 해외 암시장에서 수억원에 거래되었다. 결국 국제적으로 야생 판다를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나서야 판다는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될수 있었다. 이후 1983년 중국이 워싱턴조약(CITES)에 가입하면서 판다를 위한 정책들이 나오면서 보호 받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판다의 거래는 불가능하고 중국이 친선과 개체 다양성을 위한 연구를 위해 임대해 주는 것만이 가능하다. 이러한 보호는 단순한 종의 보호 차원을 넘어 판다 번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판다는 번식이 매우 까다로운 동물로 가임기가 1년 중 고작 1-3일에 불과하다. 게다가 독립적 성향이 강한 판다의 습성 탓에 그 시기를 맞추는 것에 실패하여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오랫동안 중국에서는 자연 번식과 사육에 실패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와 관련된 많은 연구, 특히 암컷의 발정기와 인공 수정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미국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의 유전학자 조나단 발루(Jonathan Ballou)는 “판다는 사육 중인 동물 중 유전적으로 가장 다양한 동물 중 하나”라고 말하면서 중국인들이 판다 번식에 다양한 방법을 개발하였고, 그 결과로 새끼 판다들이 무더기로 태어날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판다는 보호받고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판다의 생존은 위협받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서식지의 평균 온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어 판다의 주식인 대나무 종이 사라지고 있다. 대나무는 종에 따라 15~20년에 한 번씩 꽃을 피우기 때문에 변화하는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할 뿐 아니라, 판다가 먹는 대나무는 겨우 25종에 불과하다. 판다와 같은 멸종위기종을 보호하는 이유는 판다 개체의 보호 뿐 아니라 결국 모두가 같이 살고 있는 생태계의 보호를 통해 인간에게 돌아오는 피해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지구 상의 다양한 생물들이 모두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의 생물 종이 멸종하면 연쇄적으로 그와 관련된 다른 생물 종의 생존도 위협을 받게 되면서 생태계 시스템의 균형이 무너지게 되어있다.
지난 2016년 3월 호주 머독대학의 트리시 플레밍(Trish Fleming)교수는 포유류연구 (Mammal Review)에 ‘못생긴(ugly)’ 동물은 연구와 지원에 있어서 덜 관심을 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사람의 편견이 동물의 보호에 잠재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인간의 노력은 동물의 외모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호주의 코알라와 캥거루를 예로 들면서 이 두 동물은 귀여운 외모로 많은 연구와 지원을 받지만, 박쥐와 같이 못생긴 동물을 지키려는 노력이나 지원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플레밍의 주장대로 하면 판다는 그 귀여운 ‘외모’와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인해 멸종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푸바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이는 마치 우리가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것과 더 관련이 있어 보인다. 개 식용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만, 두툼한 스테이크 맛집을 찾아가 줄을 서고 돼지고기 삼겹살 먹방은 좋아하는 문제 말이다. 개 식용 반대는 사회적인 이슈가 되지만, 소와 돼지 식용(과 채식)은 개인 취향의 문제가 된다. 왜 일까? 이는 인간의 동물에 대한 인식이 동물과 우리가 어떤 “관계”인가에 있음을 보여준다. 개는 대표적인 반려동물로서 인간이 특별한 애정을 갖는 관계에 있고, 소와 돼지는 식재료라는 인식 말이다. 동물원에는 많은 동물들이 있다. 판다는 단지 동물원에 사는 야생동물 중에 한 종 일 뿐이다. 하지만 태어나던 순간부터 흰 털이 솜뭉치같던 시기를 지나, 어느 순간 죽순 먹방을 선보이고 사육사를 졸졸졸 쫓아다니며 장난치던 귀여운 푸바오는 비록 우리가 만지고 쓰다듬을 수는 없었지만 우리와 특별한 관계가 되어 버린 “온라인” 반려동물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푸바오는 특별했다.
지난 5월 2일 중국에 도착한 지 4주째에 접어든 푸바오의 근황이 공개되었다. 중국 판다보호연구센터에 따르면 푸바오의 격리 검역 생활이 곧 만료되어 대중들과 만날 것이라는 것이다. 공개된 영상에서는 한국에서처럼 왕성한 식욕을 보이며 죽순과 평상시 좋아하던 사과, 당근, 워토우를 맛있게 먹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푸바오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그런지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어려움도 잘 이겨낸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푸바오는 아직도 그리운 우리의 아기 판다이면서 동시에 여전히 ‘못생긴’ 동물은 그 생존이 외면받고 있다는 현실 사이에, 우리에게 현대 사회에서의 동물의 생존이라는 큰 숙제를 남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