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현장까지, 실천으로 확장되는 평화 감수성
<Illustration by Jessica Kim 2009(김지우) >
[위즈덤 아고라 / 장수빈 기자] 핵무기를 둘러싸고 국제정세가 다시 불안정해지고 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전 세계 핵탄두 1만2241기 중 9614기가 군사적 운용이 가능한 상태이며, 미국·러시아의 전략 전력 현대화와 중국의 핵태세 강화로 ‘감축의 시대’에서 ‘재무장 경쟁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국제사회가 점점 더 무게를 두기 시작한 분야는 군사적 억제력보다 교육이다. 핵 위기를 관리할 능력은 결국 시민이 어떤 방식으로 갈등을 이해하고 대응하느냐에 좌우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는 2022년 ‘신평화의제(New Agenda for Peace)’에서 “평화는 제도나 조약의 문구가 아니라 시민의 역량에서 지속된다”고 주장했다. 전통적으로 군사·외교의 문제로 여겨졌던 핵 문제가 이제는 사회 전반의 사고방식과 시민 역량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이에 따라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는 ‘평화 시민성(peace citizenship)’을 새로운 핵위기 대응 전략으로 제시하고 있다.
평화 시민성 교육은 단순한 이상적 가치를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다. 유네스코가 2020년 세계시민교육(GCED) 평가에서 밝힌 것처럼 토론 기반 수업을 경험한 학생은 폭력을 지지할 가능성이 34% 낮고, 갈등의 초기 위험 신호를 감지하는 능력도 더 높다. OECD 역시 2024년 ‘교육2030 백서’에서 평화·인권 교육을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핵심 정책으로 규정하며, 갈등 중재와 공동체 참여에 미치는 장기적 효과를 강조했다. 이러한 분석들은 핵위험을 기술적·전략적 차원이 아니라 시민의 사고와 행동이라는 사회적 기반에서 다뤄야 한다는 국제적 합의가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각국의 교육정책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1년 개정된 「시민역량 프레임워크」에서 비폭력 갈등 해결을 학교 교육의 필수 역량으로 제시했고, 인도와 브라질 등 신흥국들도 유네스코와 협력해 평화·시민성 교육을 국가 교육과정에 단계적으로 편입하고 있다. 세계 어느 지역의 청년이든 핵 문제를 공포의 언어가 아닌 민주적 판단과 시민적 숙의의 영역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국제교육의 공통 방향이 된 것이다.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과 발을 맞추고 있다. 정부는 2023~2027년 ‘평화·통일교육 지원계획’을 추진하며 갈등 해결 시뮬레이션, 다각적 관점 분석, 사례 기반 토론을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했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2021년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생들은 비군사적 갈등 조정 방식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며, 상반된 관점을 공존 가능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여 평화 시민성의 기반이 교육을 통해 형성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실 밖에서도 변화는 이어지고 있다. 히로시마평화기념관의 체험형 워크숍에는 2022년 약 160만 명이 참여했고, 교육자들은 이러한 프로그램이 사회적 분열의 신호를 식별하는 감수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분석한다. 국제평화교육원(IIPE)은 난민지원·사회복지·지역협력 등 봉사 기반 활동에 참여한 청소년이 비폭력적 시민행동에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평화 시민성이 단순한 인식이 아닌 참여 경험에 의해 강화되는 역량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평화 시민성 교육이 일회성 행사나 특별활동에 머물지 않으려면, 교사 연수·정규 교과화·지역사회와의 연계 등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교육이 실제 행동 변화를 얼마나 이끌어내는지에 대한 장기적 연구가 각국에서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된다. 핵위험 대응의 시대적 과제가 ‘무기 감축’에서 ‘사회적 역량 구축’으로 이동하는 만큼, 평화 시민성 교육의 효과성을 입증하고 체계화를 강화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핵 없는 미래는 기술이나 군비가 아닌 시민의 사고방식과 사회적 역량에서 출발한다. 조약과 체제는 중요하지만, 그것을 유지할 힘은 결국 시민의 이해·숙의·참여에서 나온다. 교실에서의 토론, 지역사회의 실천, 국가의 제도적 뒷받침이 결합될 때 비로소 핵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마련된다. 따라서 평화를 가르치는 학교가 핵 없는 세대를 만든다는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것은 국제사회가 2020년대에 들어 새롭게 합의한 가장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핵위기 대응 전략이 되고 있다.
더 나아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허위정보 확산과 극단주의의 증가가 핵위기 관리 역량을 약화시키는 만큼 ‘디지털 시민성’ 역시 평화 시민성 교육의 필수 요소로 논의되고 있다.
[위즈덤 KOREA]한반도, 핵의 상처를 넘어 평화를 향해–한국은 인류가 핵무기 앞에서 겪을 수 있는 참혹함을 직접적으로 목격한 나라입니다. 이번 칼럼 시리즈에서는 핵 문제와 관련된 역사적 피해를 알아보고 외교적 대응, 국제 협력 전략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한국이 미래 평화를 위해 나아갈 길을 탐구합니다. 또한, 청년과 시민이 국제무대에서 기여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모색합니다. 위즈덤 아고라 장수빈 기자의 ‘위즈덤 KOREA’에서 확인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