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덤 KOREA]평화를 가르치는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학교를 넘어 제도와 시민으로 확장되는 핵 없는 세대의 조건

<Illustration by Jessica Kim 2009(김지우) >

[위즈덤 아고라 / 장수빈 기자] 핵을 둘러싼 공포와 이해, 청년 세대의 인식 변화, 그리고 학교 교육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핵 문제는 더 이상 과거의 위협이 아니라 오늘의 시민이 사고하고 토론해야 할 현실로 인식되고 있다. 교실에서 시작되는 평화 교육이 핵 없는 세대를 준비시키는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점 역시 분명해지고 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이러한 교육적 성과가 사회 안에서 어떻게 지속되고, 어떤 제도와 공론장 속에서 실제 시민의 행동과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이다. 평화 시민성이 학교의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반의 역량으로 확장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평화는 학교에서 시작되지만 학교만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교실에서 토론이 이루어지고 학생들이 갈등을 비폭력적으로 다루는 언어를 배운다 해도, 그것이 사회 전체의 구조와 연결되지 않는다면 평화 시민성은 쉽게 소진된다. 핵 없는 세대를 만든다는 목표 역시 마찬가지다. 교육은 분명 출발점이지만, 그 지속성과 실효성은 제도와 사회적 환경, 그리고 시민이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공적 공간이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최근 국제사회가 강조하는 ‘평화 시민성(peace citizenship)’ 개념은 개인의 도덕성이나 태도 변화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유엔, OECD, 유네스코가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방향은 평화 역량을 개인의 선의나 자발성에 맡기지 않고 사회가 구조적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는 2022년 「신평화의제(New Agenda for Peace)」에서 “평화는 조약과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으며, 갈등을 비폭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시민의 역량이 있을 때 지속된다”고 밝혔다. 이는 핵 문제를 포함한 현대적 갈등이 개인의 판단 오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조건과 정보 환경, 정치적 구조 속에서 발생한다는 국제사회의 인식 변화를 반영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교육 정책 분석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OECD는 2024년 「교육 2030 백서(Education 2030)」에서 평화·시민성 교육의 효과가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과 시민 참여 제도, 공론장 구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갈등 해결 역량을 학습한 학생이 성인이 되었을 때 이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교육 효과는 빠르게 약화된다고 지적한다. 핵 없는 세대를 만든다는 목표 역시 핵무기에 대한 가치 판단이나 찬반 논의를 넘어, 시민이 정책 결정 과정에 접근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에 기반해 판단할 수 있는 구조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교육과 제도의 결합이 핵심 조건으로 제시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언론과 공공 정보 환경의 역할은 학교 교육만큼 중요해진다. 핵과 안보 이슈는 여전히 위기와 공포, 대립의 언어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보도 환경 속에서는 시민이 숙의보다는 진영 논리에 따라 반응하기 쉽다. 핵 문제 역시 복합적 맥락을 잃은 채 극단적 선택지로 단순화되기 쉽다. 유네스코는 2020년 세계시민교육(Global Citizenship Education) 평가 보고서에서 ‘평화 문해력(peace literacy)’을 단지 학교 수업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갈등을 어떤 언어와 프레임으로 설명하느냐의 문제로 규정한 바 있다. 이는 시민의 판단 능력이 교실 안에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 담론의 질과 직결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일부 국가는 이러한 문제를 제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북유럽 국가들은 평화·갈등 이슈를 단순한 뉴스 소비 대상이 아니라 시민 숙의의 주제로 전환하기 위해 공영방송, 교육기관, 지방정부가 협력하는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에서 배운 토론 방식이 시민 포럼, 지방의회 청년 자문단, 정책 공청회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를 통해 평화 시민성을 ‘학습된 태도’가 아니라 ‘사회적 실천’으로 유지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연결 구조는 교육을 일회성 경험이 아니라 장기적인 시민 역량으로 정착시키는 역할을 한다.

한국 사회 역시 이 과제를 피할 수 없다. 청년들은 이미 핵 문제를 단순한 공포의 대상으로만 인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판단과 질문이 실제 정책 토론이나 공론장으로 이어질 통로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평화·통일교육이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그것이 지역사회와 미디어, 정치 참여 구조와 충분히 연결되지 못한다면 교육은 학교 내부에 머무는 경험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평화·갈등 교육 연구 역시 학습 경험이 사회적 참여 기회와 연결되지 않을 경우 시민성 역량의 지속성이 약화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핵 없는 세대를 만들겠다는 사회적 목표가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청년의 질문과 토론이 사회적으로 수용되고 검토될 수 있는 제도적 공간이 필수적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민에게 특정한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 태도다. 평화 시민성은 특정 입장을 강요하거나 합의를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문제를 다층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데 목적이 있다. 핵무기의 도덕성, 억지력의 현실성, 군축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검토할 수 있는 사고력은 교육과 사회가 함께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사고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핵 없는 미래에 대한 논의 역시 선언적 구호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결국 평화를 가르치는 사회란 학교에서 시작된 질문이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는 구조를 가진 사회다. 교실에서 배운 토론이 뉴스 해석으로 이어지고, 시민 참여와 정책 감시로 확장될 때 평화 시민성은 유지된다. 핵 없는 세대는 단순히 핵을 반대하는 세대가 아니라, 핵을 둘러싼 선택의 무게를 이해하고 그 선택에 책임질 수 있는 세대다.

교육은 그 세대를 준비시키는 출발선이고, 사회는 그 준비가 의미를 갖도록 만드는 무대다. 평화를 가르치는 학교가 핵 없는 세대를 만든다면, 평화를 받아들이는 사회는 그 세대를 현실로 만든다.

 [위즈덤 KOREA]한반도, 핵의 상처를 넘어 평화를 향해한국은 인류가 핵무기 앞에서 겪을 수 있는 참혹함을 직접적으로 목격한 나라입니다. 이번 칼럼 시리즈에서는 핵 문제와 관련된 역사적 피해를 알아보고 외교적 대응, 국제 협력 전략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한국이 미래 평화를 위해 나아갈 길을 탐구합니다. 또한, 청년과 시민이 국제무대에서 기여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모색합니다. 위즈덤 아고라 장수빈 기자의 ‘위즈덤 KOREA’에서 확인해 보세요.

Leave a Reply

Back To Top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