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김시헌 기자 본인 제공 >
[객원 에디터 10기 / 김시헌 기자] 2007년 뉴세븐원더스 재단(스위스)이 전 세계 투표로 선정한 현대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요르단의 페트라는 2014년 ‘미생’이라는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장식하면서 우리나라에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역사적 가치와 인류의 창의성을 상징하는 유산들로 선정된 현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페트라를 직접 방문해 보았다.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에서 약 3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페트라는 사해(Dead sea)와 홍해(Red sea)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방문하기 편한 곳은 아니지만, 페트라를 보기 위해 요르단을 찾는 관광객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이곳은 늘 붐빈다. 페트라는 기원전 4세기경부터 나바테아 인들에 의해 조성되어 번영했으며, 기원후 106년 로마 제국에 병합되었다. 이름의 뜻이 바위인 것처럼 암벽 위에 세워진 도시이다.

페트라 입구의 안내소에 가면 안내문을 받을 수 있는데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되어 있다. 안내문에 한국어도 포함되어 있어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나바테아 왕국의 수도로 들어갔다. “시크”라고 불리는 페트라 입구는 들어서면서부터 감탄을 자아낸다. 폭은 3m도 채 되지 않지만 거대한 자연 절벽이다. 이 협곡이 1km 이상 구불구불 이어진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사람들에게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3000년의 이상의 시간을 자랑하듯 협곡은 어마어마하다는 말로 밖에 표현이 되지 않았다.
그 협곡 끝에는 페트라의 2번째로 큰 건축물인 알카즈네가 나온다. ‘알카즈네’는 아랍어로 보물창고라는 뜻으로 바위를 깎아 만든 정교한 건축물로 페트라에서 가장 상징적인 건물로 불리고 있다. 알카즈네는 나바테아왕의 무덤 혹은 신전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많은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다음으로 계속해서 유일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로마 원형 극장이 나온다. 물론 로마 원형 극장들은 나바테아 인들이 만든 게 아니지만 로마 제국이 편입하고 나서 로마식 건축물들이 지어졌다. 약 6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극장은, 나바테아 왕국의 크기와 로마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또한 그 반대편에 있는 큰 건축물들은 왕가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는 우측 왕가 무덤군을 포함하여 약 500개의 무덤이 있고, 부자나 왕족일수록 바위 절벽 위쪽으로 무덤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페트라 안에서 가장 큰 건축물을 만나러 갔다. 이 거대하고 웅장한 건축물은 ‘지옥의 800 계단’이라고 불리는 계단을 올라야 도착할 수 있다. 이 건축물은 ‘알데이르’라고 불리는 것인데, 이 이름은 아랍어로 수도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로마제국을 통치를 받을 때부터 수도원으로 사용되었고, 장엄한 절벽 건축미와 함께 페트라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최고 전망 포인트로 꼽힌다.
페트라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것이암석 건축물이라는 점이다. 건물 대부분이 붉은 사암 절벽을 직접 파내어 건축된 것이 많은 관광객들을 놀라게 한다. 이 때문에 페트라는 빛에 따라 색감이 변해 장미빛 도시(Rose City)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그리고 페트라는 무역의 중심지로 발달했으며, 고대 실크로드와 아라비아, 지중해를 연결하는 중요한 상업 문화의 교차로 역할을 했다. 그리고 페트라의 특별한 정책이 무역과 연결 되어 있다. 나바테아 왕국은 페트라를 거쳐가는 모든 상인들에게 물건 총 양의 10%를 정부에 지불하게 규칙을 세우고 나바테아 왕국은 이 정책을 토대로 경제적으로 번성했다.
물론 페트라는 요르단이라는 독특한 나라에 위치한 위대한 건축물로, 198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페트라가 보여주고 있는 헬레니즘과 혼합된 독창적인 예술성을 바탕으로 오늘 날 전 세계 여행자들이 찾는 명소이다. 하지만 관광객 수요가 늘어남으로 환경 오염과 훼손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따라서 요르단 정부와 유네스코가 대대적인 보존 대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고 있다. 페트라는 네바테아 왕국의 수도로 많은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 시대의 가장 혁신적인 도시로 많은 기술적 가치도 가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