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잔혹한 여성인권 유린
여성을 향한 억압과 탄압을 멈추지 않은 탈레반
첫 집권 당시부터 심각했던 여성인권 유린… 여전히 지속되나
[객원에디터 2기 / 권도윤 기자] 탈레반은 본래 아프가니스탄 현지어로 ‘학생들’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이는 1994년에 만들어졌으며 이슬람의 한 성직자 무하마드 오마르가 이슬람 학교 학생들 50명을 소집하며 시작되었다. 그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였을 당시 이슬람 무장 투쟁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는 소련을 물리치고자 학생들을 소집하여 단체를 형성하였지만, 소련이 물러난 후에도 오마르는 계속하여 탈레반을 이용하여 타 세력들을 억압, 제압하였으며 점차 그의 세력은 막강해졌다. 그뿐 아니라 1996년에는 수도 ‘카불’까지 점령하며 결국 아프가니스탄의 정권까지 그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이슬람 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 일명 ‘샤리아 법’으로 나라를 통치하였다. 서양의 영화, 음악 등을 엄격하게 금지하였으며 여성의 인권 억압, 탄압에 있어서는 더 강력하게 대응하였다. 여성들은 당시 교육을 받을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며 직장 또한 구할 수 없었다. 모든 여성들은 집에 머물러야 했으며 여성을 고용한 고용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 경고하기도 하였다. 또한 여성들은 남성 의사에게 진찰을 받거나 남성이 포함된 의료팀에게는 수술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여성들이 직장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진찰 혹은 수술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의료 혜택을 받을 자격을 완전히 박탈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를 통해 그 당시 여성들은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그리고 정치적 권리가 완전히 박탈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사람’으로서 존중받지 못하였고 온전히 남성의 명령과 지배하에 두려운 마음을 지닌 채 살아가야만 했다. 그렇게 탈레반의 집권 시기 동안 여성인권 유린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2001년 미국은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테러단체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을 넘겨주라는 요구를 거부한 탈레반의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를 계기로 여성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다시 자유를 되찾는듯 싶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탈레반은 다시 정권을 되찾았다. 현재 그들은 여성의 권리를 보다 보호하고 더 개방적이며 포용적인 정부를 꾸리겠다고 말하였지만, 여전히 여성의 인권이 존중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과연 그들이 이 약속을 지킬 지는 미지수이다.
우리나라도 한 때, 여성은 약자로 취급받으며 인권과 권리가 한정적이고 제한적이며 억압되었던 시기가 존재했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여성인권은 과거보다 현저히 발전하였다. 한국인으로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모습은 마치 과거에 인권을 되찾고자 고군분투하던 대한민국의 여성들과 유사해 보인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독재정권의 정치하에 있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을 향한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을 이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