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알고리즘.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 선택하고 있을까?
[객원 에디터 9기 / 정한나 기자]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순간을 ‘선택’이 아닌 ‘추천’으로 채워가고 있다. 오늘 들은 음악, 어젯밤 본 영화, 방금 읽은 뉴스까지.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의지가 아니라 알고리즘의 제안이었을지도 모른다. 플랫폼은 내 취향을 분석하고, 습관을 예측하며, 가장 반응할 만한 콘텐츠를 눈앞에 내민다. 처음엔 ‘나’를 너무 잘 아는 듯한 이 시스템에 감탄하지만, 이내 그 익숙함 속에 스며든다. 어느새 우리는 콘텐츠를 고르기보다, 눈앞에 놓인 걸 그냥 재생한다.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지금 클릭한 이 콘텐츠, 과연 진짜 ‘내’가 선택한 것일까?
알고리즘이 우리의 취향을 분석하는 방식은 대체로 두 가지다. 첫째는 비슷한 사용자들의 행동을 분석해 추천하는 협업 필터링, 둘째는 콘텐츠 자체의 속성을 분석해 유사한 항목을 추천하는 콘텐츠 기반 필터링이다. 이 두 기술로 인공지능은 우리가 과거에 좋아했던 것뿐 아니라, 미래에 좋아할 가능성이 높은 것까지 예측할 수 있게 된다.
AI는 여러 방면에서 매우 매력적이다. 친구보다 더 정확하게 내 취향을 파악하고, 내가 검색하지 않아도 먼저 콘텐츠를 보여준다. 실제로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는 전체 사용자 중 80% 이상이 추천을 통해 콘텐츠를 소비한다고 밝혔다. 추천의 정확도는 계속 높아지고 있으며, 콘텐츠 접근성도 더욱 편리해지고 있다. 선택의 피로를 덜 수 있다는 점에서 인공지능 추천은 분명 사용자에게 이득이다. 그러나 이 편리함이 과연 대가 없는 선물일까?
선택은 본래 사고의 결과다. 우연한 발견과 호기심이 함께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하지만 AI의 추천은 우리에게 “이게 너에게 맞아”라고 확신하며 다가온다. 그것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말이다. 이 시스템은 시간과 노력을 절약해 주지만 동시에 선택한다는 행위 자체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 결국 내가 보고, 듣고, 소비하는 콘텐츠의 상당 부분이 알고리즘에 의해 결정되기 시작한다. 사용자들이 점점 더 외부 알고리즘에만 의존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AI가 나를 잘 안다는 것은, 결국 나의 데이터가 AI에 거의 모두 노출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무엇을 보고, 언제, 어디서, 얼마나 머물렀는지에 대한 정보가 AI의 학습 재료가 된다. 일부 기업은 위치 정보, 심박수, 날씨 같은 환경적 맥락까지 반영하여 맞춤형 추천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놀라운 기술 발전이지만, 동시에 사생활 보호에 대한 새로운 경계를 요구한다.
추천 시스템의 핵심은 개인의 과거 행동을 바탕으로 미래의 선택을 제안하는 데 있다. 이는 종종 사용자를 익숙한 세계에 가둬두는 결과를 낳는다. 미국 인터넷 활동가인 엘리 파리저가 지적한 ‘필터 버블’ 현상은 그. 부작용이다. 사용자는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익숙한 콘텐츠만 소비하게 되고, 점차 낯선 정보나 다른 관점을 접할 기회를 잃는다. 이 문제는 단순한 콘텐츠 소비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정치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정보까지 알고리즘이 필터링하기 시작하면, 개인은 자유로운 판단을 할 수 있는 토대 자체를 잃게 된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정보 다양성이 축소되고, 사고의 폭이 좁아질 위험이 커진다.
최근에는 알고리즘이 단순한 ‘사용자 맞춤’을 넘어, 시장 환경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이 알고리즘의 기준을 공개하지 않은 채, 자사 상품이나 콘텐츠를 의도적으로 상위에 배치하는 경우다. 이럴 경우 소비자는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받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특정 기업의 이익에 따라 편집된 정보만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마치 마트 진열대에 일부 상품만 올려놓고, 나머지는 창고에 감춰두는 것과 같은 구조이다. 사용자는 자신이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이미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알고리즘이 ‘영업비밀’에 해당하며, 자사 이익을 위한 콘텐츠 배치가 반드시 위법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알고리즘이 오히려 다양한 콘텐츠를 노출시키기도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추천 시스템이 의외의 선택지를 제안하거나 새로운 분야로의 확장을 유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튜브나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에서는 종종 사용자가 평소에 즐기지 않던 장르나 새로운 주제를 추천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경우가 있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는 사용자가 선호하지 않던 스타일의 음악을 포함시켜서 사용자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방식은 사용자가 기존 취향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관심 분야나 시각을 발견하도록 돕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 역시 알고리즘의 설계와 운영 방식에 달려 있으며, 사용자 입장에서 그 작동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거나 통제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반드시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방향대로만 콘텐츠를 소비할 필요는 없다. AI 추천 시스템은 분명 강력한 도구다. 그러나 우리는 이 도구를 어떻게 쓸지, 어디까지 받아들일지를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 모든 결정이 빠르게 자동화되고 선택이 최적화되는 시대일수록,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여유와 공간을 지키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우리는 알고리즘의 도움을 받되,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는 사용자로 남을 수 있다. 그럴 때 비로소, ‘진짜 나만의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