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직장의 부속품이 되느니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 소설 ‘바틀비’

Illustration by Jimin Lee

by Youjin Sohn 2007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의 51주기였다. 전태일 열사는 1965년 17세의 나이로 시장에서 학생복 제조 업체 보조원으로 취직하여 일하다가 열악한 노동 현실에 눈을 떠, 근로 기준법이 현실에서 적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결국 1970년 11월 13일에 시위를 하다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여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다. 그의 외침과 희생은 대한민국 노동 환경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전보다 훨씬 나아진 노동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한 사람의 저항과 희생이 큰 발전을 이루어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는 채무관계가 있는 갑과 을처럼 불공평하다. 하지만 노동자는 회사의 구성원이며 인간다운 노동환경과 노동의 보람을 느낄 권리가 있다. 소설 <필경사 바틀비>의 주인공인 바틀비도 19세기 말 미국의 자본주의의 모순에 저항하는 첫걸음을 이루어내려고 했다.

소설 [바틀비]는 19세기 말 미국 경제의 중심가인 월스트리트에 있는 한 변호사의 사무실을 배경으로 한다. 변호사는 돈 많은 자본가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며 이익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사무실에는 변호사 밑에서 일하는 부하 직원들이 있었는데, 변호사는 그들을 터키, 니퍼스, 건저너트라고 불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변호사는 직원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물건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이름은 각 사람의 고유한 정체성을 나타내지만, 변호사는 그 이름조차 알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부르기에 편리하도록 눈앞에 볼 수 있는 특징만 가지고 별명을 만들어 불렀다. 여기서부터 변호사는 직원들을 인간으로서 존중하지 않고 자신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변호사는 업무가 많아지자 새로운 필경사가 필요했고, 면접을 통해 바틀비를 고용한다. 당시에는 복사기가 없었기 때문에 서류를 그대로 베껴 쓰는 필경사가 필요했다. 변호사는 바틀비의 첫 모습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말은 별로 없지만 성실해 보여 일을 잘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틀비는 자신이 딱 필요했던, 사무실의 분위기를 잘 조절할 수 있는 사람 같아 보였다. 변호사는 자신에게 필요했던 물건을 쇼핑하듯이 바틀비를 고용했고, 필요한 물건의 위치를 정하듯 바틀비의 자리를 자신의 자리 옆 구석으로 정했다. 자신의 프라이버시가 걱정되어 커튼도 설치했다. 물론 바틀비에게는 의견을 물어보지 않았다. 바틀비는 필경사로 고용되고 나서 아주 열심히 일했다. 바틀비가 성실하게 업무를 하자 변호사도 기뻤다. 하지만 그는 바틀비에게 열심히 했으니 휴가를 주거나 급여를 올려주지도 않았으며, 대신 바틀비에게 더 많은 일을 시켰다. 자본주의가 막 경제 체제로 완벽하게 자리잡기 시작했던 그 당시 미국에는 노동자를 위한 보호나 복지가 부족했기에 바틀비는 그런 암담한 현실 속에서 변호사가 시키는 과도한 업무들을 거부하지 못하고 다 해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변호사는 바틀비에게 필경사의 업무가 아닌 문서 대조 작업까지 시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라며 대답했다. 변호사는 굉장히 어이없어했다. 자신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바틀비가 한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가 된다. 바틀비가 그냥 하지 않겠다고 한 게 아니라, 하지 않는걸 ‘선택’ 했기 때문이다. 선택이라는 것은 변호사 밑에서 일하면서 바틀비에게 단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던 권리다. 자리를 선정할 때도, 추가 업무를 받을 때도 변호사는 한 번도 바틀비에게 의견을 물어보거나 선택지를 주지 않았다. 항상 통보식으로 전했고, 변호사는 자신이 시킨 일을 바틀비가 군말 없이 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변호사의 사무실뿐만 아니라 19세기 말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갑이 시킨 일을 을이 거부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고, 을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하는 목소리는 필요 없었다. 그러므로, 바틀비가 했던 말은 사무실에서 처음으로 한 선택이었으며, 그동안 바틀비가 얼마나 선택과 의견을 표하는 것을 갈망했을지 보여준다.

이후 바틀비는 변호사가 시키는 사소한 심부름까지도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거부했다. 변호사는 바틀비와 얘기를 나누어보려고 하며 사람처럼 대해주나 싶었지만, 결국 모두 다 변호사 혼자만의 죄책감을 덜고 바틀비가 다시 일을 하도록 만들려는 것이었다. 만약 바틀비를 정말로 인간으로 생각했다면 바틀비가 병 들어가며 업무를 거부했을 때 업무를 줄여주던가 휴가를 주었어야 한다. 결국 화가 치밀어 오른 변호사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하며 계속 그 안에서 생활하던 바틀비를 놔두고 사무실을 옮겼다. 그 사이 바틀비는 유치장에 잡혀 갔으며, 변호사가 마지막으로 바틀비를 찾아갔을 때 바틀비는 이미 식사를 거부해서 죽은 상태였다.

그 이후 변호사는 바틀비가 자신의 필경사로 일하기 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알게 된다. 바틀비는 우체국에서 배달 불능 우편물 취급 부서의 하급 직원으로 일하다가 운영 방침이 바뀌며 해고됐던 것이다. 바틀비는 전달되지 못한 편지들, 즉 dead letter을 취급하던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죽은 편지들은 바틀비의 삶을 잘 보여준다. 편지라는 것은 원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써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취인 불명 편지들은 한 사람이 전하고픈 말이 상대방에게 닿지 않고 폐기된 것으로, 단절된 마음을 의미한다. 바틀비의 목소리도 수취인 불명의 죽은 편지들처럼 변호사에게 전해지지 않는 죽은 편지들과 같았다. 어쩌면 그건 저 시대의 모든 을들의 상황과 같았을 것이다.

바틀비는 혹된 업무 환경에서 일하다가 처음으로 선택을 하며 업무를 거부했다. 아니, 거부했다기보다 삶의 주인공이 되어 일을 거부하는 것을 선택하고, 음식을 먹지 않을 것을 선택하고, 죽음을 선택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바틀비는 19세기 미국의 자본주의에 저항한 것이다. 비록 바틀비의 저항이 큰 변화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바틀비도 우리나라의 전태일 열사처럼 자신의 희생을 시작으로 노동 환경의 개선과 변화가 이루어지길 고대했을 것이다. 여전히 21세기 대한민국의 노동현실에서도 상사의 갑질로 목숨을 끊고 하루하루 회사의 부품처럼 취급받는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최근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해서도 직장 내 갑질이 이루어지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되며 ‘백신 휴가’ 제도도 도입됐는데, 의무가 아닌 권고인 제도라서 중소기업에서는 실행되지 않고 오히려 ‘백신 갑질’ 사례가 속출했다. 백신 휴가는커녕 연차도 못 쓰게 하고, 백신 휴가를 받아도 휴가 기간에 업무를 지시했다. 백신에 대한 두려움에 백신 접종을 꺼려하는 직원들을 괴롭히는 사례도 있었다. 이렇게 직장 내의 크고 작은 갑질과 괴롭힘을 오래전부터 계속 이어져왔고, 최근 근로자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봤을 때도 현 직장에서 괴롭힘 피해를 입었다는 근로자는 38%나 있었다. 또한 과거 직장에서 피해를 입었다는 근로자도 62%나 되었다. 하지만 괴롭힘 피해가 발생한 사업장들의 대부분은 행위자의 사과 정도로 조치를 끝냈고, 심지어 10곳 중 4~5 곳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나가야 할 과제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직장 내 괴롭힘을 멈추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바틀비처럼 상사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을 내기 쉽도록, 직원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이 보장되어야 한다. 직원들이 더 편하고 쉽게, 그리고 안정성과 익명성이 보장되게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는 플랫폼 또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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