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전쟁이 바꾼 대통령의 무게
국민 코미디언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하늘에서 바다에서 끝까지 싸우겠다”
젤렌스키 대통령, 이제는 영웅으로
[위즈덤 아고라 / 손유진 기자] 2월 24일, 러시아는 미사일로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를 공습하고, 지상군을 투입하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의 무차별 폭격은 지금까지 이어져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부상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었고, 약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피난길에 올랐다.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보인 리더십과 책임감이 전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어떻게 지금의 자리로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일까?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처음부터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실 ‘국민 코미디언’으로 알려진 사람이었다. 젤렌스키는 1978년 우크라이나의 도시인 크리비리흐(Kryvyi Rih)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 때부터 예능에 재능을 보였고, 10대 후반부터 코미디언으로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이후 인기 개그 경연 프로그램에 나오며 국민적 인지도를 쌓기 시작했으며, 배우, 프로듀서, 시나리오 작가 등으로 활동 분야를 넓혀가며 나날이 성장해갔다. 동시에 그가 이끌던 개그팀 ‘95번 구역’ (‘Kvartal 95’, 크바르탈95)도 함께 성장하며 인기 연예 기획사가 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인생의 반환점은 TV 드라마 ‘국민의 종(인민의 종 / Servant of the People)’이 방영되면서부터였다. ‘국민의 종’은 젤렌스키의 연예 기획사 ‘95번 구역’이 제작한 시트콤으로, 2015년 10월부터 방영되었다. 이는 정치 시트콤인데, 평범한 고등학교 교사가 부패한 정부를 비판하는 영상이 퍼진 이후 인기를 얻어 대선에 출마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극 중에서 젤렌스키는 고등학교 교사에서 어느 날 대통령이 되는 주인공 바실 베트로비치 홀로보로티코를 연기했다. 이 TV 드라마는 전국적으로 엄청난 흥행을 하여 후속 시리즈는 물론, 영화까지 나왔다. 그리고 젤렌스키는 ‘국민의 종’을 통해 ‘국민 코미디언’과 ‘국민 배우’의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TV 드라마는 방영을 마쳤지만, 현실에서는 계속되었다. TV 드라마에서만 가능할 것 같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며 젤렌스키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신화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TV 드라마의 이름을 그대로 딴 ‘국민의 종’ 정당이 2018년 3월에 창당되었고 국민들의 응원에 힘입어 젤렌스키는 당에 합류하고 2018년 12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TV 드라마에 감명받았던 국민들은 젤렌스키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따라서, 3월 여론조사에서는 현직 대통령이던 페트로 포로셴코와 총리를 지냈던 율리아 티모셴코 등의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며 선두를 달렸다. 그리고 마지막 투표에서는 73% 이상의 득표율로 포로셴코를 이겼으며,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의 최연소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는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나는 평생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해 왔다. 그것이 나의 사명이었다. 이제 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최소한 울지 않도록 모든 것을 다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당선된 이유로는 대표적으로 과거 정부의 부패와 무능함이 꼽힌다.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패배했던 포로셴코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동안에 우크라이나의 경제 성장률은 -9%대를 기록했고, 부패지수는 180개국 중 120위에 달했다. 따라서 젤렌스키의 정치 경험이 아예 없다는 점이 국민들에게는 오히려 젤렌스키를 뽑아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과연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심을 품었던 것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배후에는 우크라이나의 부자 중 한 명인 콜로모이스키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원래 콜로모이스키의 소유였던 우크라이나 최대 은행 프리바트방크를 포로셴코 정부가 국유화했는데, 이 은행을 되찾기 위해 콜로모이스키가 젤렌스키 대통령을 조종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러한 의혹이 틀렸다고 증명하듯, 프리바트방크의 사유화를 반대했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가 가지고 있었던 나토 가입 문제와 러시아와의 관계 문제에 대해 과연 젤렌스키 대통령이 현명하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여전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우려의 목소리는 사그라들고, 이제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 세계적으로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다. 나라에서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도망가는 지도자들이 있는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군복을 입고, 국민들과 함께 우크라이나를 위해 싸운다. 그는 3월 4일 우크라이나가 침공을 당한 이후 첫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는 그에게 “죽음이 두렵지 않으냐”라고 질문했는데, 이에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맡지 않았다면, 다른 국민처럼 총을 들고 군에 합류했을 것이라면서 어떤 경우에도 위험에 처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8일 영국 하원에서 화상으로 연설을 진행했는데, 그는 “하늘에서, 바다에서 끝까지 싸우겠다”라며 굳은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셰익스피어 ‘햄릿’의 명대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에서 우크라이나는 “살기”로 결론지었다고 밝히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어느 때보다 위험한 상황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이 시점에 꼭 필요한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국민들의 웃음을 지켜줬고, 이제는 진정한 대통령의 표본을 보여주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리에 맞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